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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스웨덴 부부 Aug 14. 2018

학교 운동장이 비어있다.

당신에게 운동장은 어떤 의미인가요?



우리 학교 운동장은 텅 비어 있다. 점심시간에도 방과 후에도. 어쩌다 날이 좋을 때면 점심시간에 열명 남짓한 아이들이 밖에 나와 공놀이를 했는데 그것도 잠깐 동안이었다. 태양이 모든 걸 녹여버릴 것 같던 6월의 폭염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감히 운동장에 나와서 놀 생각을 못했다.


2시 반, 아이들의 학교 일과가 끝나는 시간이다. 6교시까진 그렇게나 맥없어 보이던 녀석들이 다시금 들썩인다. 뭐가 그리 신나는지 아이들은 종례가 끝나면 깔깔대며 교실을 빠져나간다. 방과 후에 삼삼오오 모여 축구도 하고 학교 놀이터에서 놀 법도 한데 아이들은 교실에도 운동장에도 없다. 그 많은 아이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운동장은 그렇게 다시금 고요해진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이해하려고 할 때, 종종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내가 저 나이 땐 어떤 생각을 했었지? 뭘 하고 놀았지? 어떤 고민들이 있었지?를 생각해보면서 지금 내 앞에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본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무척 다르지만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우리 반 아이들을 겹쳐보면서 13살, 초등학교 6학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미국 월드컵이 열렸던 94년, 우리 학교엔 축구 열풍이 불었다. 티브이에서 가을 야구 중계를 하면 친구들은 하나 둘 집에서 배트와 글러브를 챙겨 오기 시작했고, 4년마다 월드컵이 열리면 누구든 황선홍과 홍명보가 되고 싶어 했던 그런 초등학생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월드컵에서 예선 탈락했지만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축구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왔다. 중간놀이 시간, 점심시간, 방과 후. 친구들과의 축구 시합은 학교생활의 큰 낙이었다. 매일 점심시간엔 전국 체육 자랑이 열린 것처럼 운동장에 아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아직까지 기억나는 그때의 추억은 백 명은 될 것 같은 아이들이 일으키던 흙먼지와 수십 개의 공들. 내 편과 상대편이 누군지도 모를 혼란의 운동장... 지금 생각하면 제대로 된 경기나 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땐 축구에 빠져서 친구들과 참 재밌게 어울려 놀았다. 종종 수업 시작종을 놓치고 늦게 들어가서 선생님께 혼나기도 하고 벌을 서기도 했지만 나와 친구들은 다음날이면 또다시 운동장에 나갔다. 그래서인지 나는 '운동장' 하면 자연스레 북적이는 아이들과 떠들썩한 목소리, 흙먼지가 생각난다.


Photo by Robert Collins on Unsplash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학교 운동장은 조용하다.


점심시간이나 중간놀이 시간에 밖에 나와서 노는 아이들은 몇이나 될까? 우리 반 많은 아이들은 점심을 먹고도 교실에 남아서 논다. 친구들끼리 수다를 떤다거나 보드게임을 하면서. 간혹 몇몇 아이들이 몸 장난을 치다가 내게 주의를 받기도 한다. 사실 점심을 먹고 나면 점심시간이 별로 안 남기도 하고 밖에 나가기엔 안 좋은 날씨- 4월의 미세먼지와 5월부터 시작된 더위- 가 반복되어 아이들이 결국 나가서 노는 걸 포기한 것 같다. 사춘기 에너지를 발산하지 못한 아이들의 엉덩이는 들썩들썩, 교실은 시끌벅적 하기에 밥 먹었으면 나가서 놀라고, 공 가지고 나가서 뛰어놀다 오라고, 친구랑 밖에서 바람 좀 쐬고 오라고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도통 운동장에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6교시 수업이 끝나고 방과 후에도 운동장은 텅 비어있다. '오늘은 학원 다 돌면 8시에 집에 들어가요', '방과 후 갔다가 논술 학원 가야 돼요.' 아이들은 저마다의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하교 후엔 뿔뿔이 흩어진다. 교문 앞에 있는 학원차를 타거나 방과 후 교실에 가거나 근처 학원으로 직행하면서.


아이들은 운동장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고 뛰어노는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 아이들은 점점 운동장에 나오지 않는다. 텅 비어있는 학교 운동장을 바라보면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는다. 예전엔 같은 공간에서 수많은 아이들이 북새통을 이루며 놀았을 텐데 시대가 변해버린 까닭일까? 지금도 학교나 동네에서 친구들과 같이 뛰어노는 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재미라면 좋을 텐데, 상황은 점점 어려워져만 간다. 따스한 바람이 살랑 불어 밖에서 뛰어 놀기 정말 좋았던 봄날엔 미세먼지 탓에 교실 창문조차 마음대로 열어둘 수 없었고 때 이른 무더위가 시작된 여름엔 교실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도 버거웠다. 그리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는 아이들은 촘촘하게 짜여진 책무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요즘 아이들은 운동을 영 안 좋아해', '운동을 안 하니까 아이들 체력이 점점 떨어진다.'라며 너무도 쉽게 아이들 탓을 할 순 없다. 그렇게 말해서도 안 되고. 아이들은 여전히 체육 시간을 가장 기다리고 시간이 있다면 언제든 뛰노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매일 같이 이어지던 나쁜 날씨, 바쁜 일상 속에도 아이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아이들 특유의 탄력성이랄까? 아이들은 미안하게도 주어진 환경 안에서 여러 형태로 잘 적응해 살아간다.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재미를 만들어내고 그걸 누리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낸다. 운동장이 떠난 자리는 스마트폰, 수다와 핸드폰 게임, 주말에 친구와 함께 가는 코인 노래방이 채운다.





안녕하세요:-) 스웨덴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전직 PD, 현직 교사 부부 조수영, 이성원입니다. 스웨덴에서 현지 교사들을 만나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오고 스웨덴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부부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시각으로 한국 교육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얼마 전 스웨덴 생활기와 스웨덴 사회에 대한 관찰을 담은 책 <헤이 스웨덴>을 출간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찾은 우리만의 삶의 속도로 한국에서 새로운 일상을 꾸려나가고자 합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3748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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