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사 Jul 10. 2015

나는 그저 좋은 습관을 갖고 싶었다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

2012년, 그해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다음해에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게 된다는 생각에 괜히 조급했다가 슬펐다가 괜찮았다가 그랬다. 열아홉의 나는 대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던 고등학생이었는데 스물아홉의 나는 그저, 회사와 집만 오가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친구들과 왁자지껄 만나고 돌아오는 밤들마다, 고단한 퇴근길 길 위에서, 헛헛한 마음이 들 때마다 지나온 나의 이십 대를 틈틈이 반추해보았다. 지방에서 올라와 시작한 서울에서의 대학 생활, 입사와 퇴사, 이직, 몇 번의 연애, 몇 번의 이별, 몇 번의 여행. 오직 서성이기만 한 시간들이었다. 몇 개의 단어로 표현되는 무난한 시간들. 이십 대의 끄트머리라고 별다를 건 없었다.


여전히 월화수목금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밤에는 퇴근해서 얕은 잠을 잤다. 매일 매일 같은 패턴의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문득 돌아보면 조금씩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은 나날들이었다. 이런 일상이 귀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마음이 성성해질 때도 있었다. 마음이 성길 때마다, 악기를 배우고, 누군가를 만나고, 영화를 보고, 길을 걷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까무룩 잠을 자고, 그리고. 아주 가끔 울고. 회사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내 20대의 마지막 봄이 언제 오나, 빼꼼 기다리던 시절이었다. 그랬다. 2012년, 그해 봄 나는 스물아홉이었다. 이렇게 20대가 가기 전에 뭔가 내 인생에 있어서 좋은 습관을 가지고 싶었다.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좋고도 건강한 습관.


퇴근길의 내가 매일 시선을 두고 매일 위로를 받던 풍경.

      

그해 봄, 한동안 안 가던 성당에 다시 나가기 시작했다. 기쁨이 충만할 때보다 어딘가 기대고 싶을 때 찾는 게 종교 아니던가. 딱히 힘든 일 없이 힘든 시간들이었다. 서울대교구에서 주최하는 <선택>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해서 2박 3일 피정을 다녀왔다. 며칠간 세상과 단절된 상태로 있으면 내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피정 장소가 있던 한남동에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니 눈썹달이 선명했다. 앞으로 이렇게 달이 열한 번 차고 기울면 해가 바뀌게 되겠지, 나는 서른이 되겠지, 생각했다.


피정 때 만난 사람 중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철인 3종도 여러 번 나간 사람이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해 보이는 밝고 활발한 사람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끼리 모여 부어라 마셔라 하는 게 아니라, 우리는 종교 모임에서 만났으니 좀 더 건강한 취미를 가져보자, 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 스포츠 브랜드에서 하는 마라톤 대회들이 있으니 같이 나가 보자고. 이름만 마라톤이지 5km, 10km 같은 짧은 코스도 있다고 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듣고 단체로 참가 신청을 했다.


한번도 제대로 달려보지 않은,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4월에 있을 아디다스 마라톤(5km)을 나가기 위해 한강 반포지구에 모였다. 동작에서 반포까지 4km를 달렸다. 처음 달리는 것 치고는 괜찮았다. 생각보다 긴 거리도 아니었다. 달리다 쉬지 않았고, 빨리 달리려 하지 않았다. 내가 편한 상태를 유지하며 한발 한발 내디뎠다. 그 사람이, 너는 달릴 때 팔꿈치를 좀 더 뒤로 빼고 발바닥 고르게 지면을 디디면 되겠다, 고 했다. 그리고 그는 너는 꽤 잘  달리는구나,라는 말을 덧붙였다.


내가 잘 달린다고? 고등학생 때 체력장 5급이었는데? 100m도 20초가 넘었는데? 내가? 어쩐지 열띤 얼굴로 반포치킨에서 다 같이 치킨과 맥주를 먹으면서도 생각했다. 혹시 내가 빨리 달리지는 못해도 오래 달릴 수 있는 사람 아닐까. 해가 저물고 집에 돌아오는 길. 있잖아, 나 오늘 한강에서 달렸어, 란 말에 네가 달리기를  한다고?라고 누군가 말했다. 응. 내가 오늘 달리기를 했어. 

                    


나의 첫 대회. 아디다스 마라톤 티셔츠와 배번호.


지금 생각하면 5km를 왜 돈 주고 나갔을까 싶긴 지만, 어쨌든 나의 첫 대회날. 같이 둥글게 모여 몸을 풀고 달리기 시작했다. 코스는 지금 생각하면 별 게 아닌데 그때는 5km를 사람이 어떻게 뛴 단  말이야?라고 생각했었다. 당시에는 앱으로 달리기 기록 같은 걸 할 생각을 하지 않았어서, 이렇게 오래, 계속 달릴 줄은 몰랐으니, 그냥 이어폰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물은 반짝였고 달리다 보니 더웠다. 반팔 안에 히트텍을 입고 치렝스를 입고 달렸으니. 어쨌든 모임 사람들 중 여자 3위로 들어왔다. 나의 5km 첫 비공식 기록은 31분. 나쁘지 않았다. 할만했다. 가뿐했다. 기분이 좋았다. 


생각보다 할만한 달리기. 어려서부터 체육 열등생이었던 나는 운동에 있어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대회를 계기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집 앞이 한강인데 한 번 달려볼까? 날마다 다른 지도를 그리는 마음으로. 혼자 달리는 것이니 누군가를 이길 필요도, 앞지를 필요도, 진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잖아. 그냥 내 속도에 맞춰 앞만 보고 달리면 되는 거잖아. 길과 운동화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달리기라는 운동. 그 다음 주부터 나는 한강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냥, 그렇게.



첫 메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