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달린다는 것에 대하여
언젠가 읽은 잡지 타이틀 중 시선을 잡았던 문구가 있다. 지속의 힘이 행운을 몰고 온다.정말 그렇다.지속해나가는 힘, 이어나가는 힘, 어쨌든 끊어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이 매일매일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무언가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는데 있어서, 확고한 취향과 좋고 싫음을 가지는데 있어서 정말 중요하다.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무얼 싫어하는지, 내가 어떤 타입의 사람을 좋아하는지 또 싫어하는지 해봐야 알고, 겪어봐야 알 수 있다. 몸이든 마음이든 흔적과 생채기가 남아야 나를 더 잘 알 수 있는 것. 이어나가봐야지 알 수 있는 것.
이렇게 내게 어떤 삶의 태도를 갖게 해준 것이, 바로 달리기였다. 기쁜 날에도 슬픈 날에도 화가 나는 날에도 별일 없는 날에도 마냥 운동화를 신고 나가 달렸고, 내 페이스에 맞춰 달리다보면 몸과 마음이 하나처럼 느껴지는 농밀한 순간들을 만났다. 그럴 때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길게 오래 봐야지 일희일비 해봤자 인생사 새옹지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이 번뇌와 잡념도 다 지나가리라. 질곡들은 다 평평해지겠지. 나중엔 왜 구부러졌는지 모르겠지. 사실 그렇다. 나만큼 나 자신에 관심 있는 사람이 없고 사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오늘 내가 왜 평소보다 숨이 더 가빠오는지, 오늘따라 종아리가 왜 더 뻐근한지, 몸은 굉장히 정직해서 이유가 있는 결과들이다. 몸과 마음은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므로, 연결된 부분들을 떠올리며 가만가만 생각한다. 왜 내 몸이 어제보다 더 무거울까. 내 마음에 어떤 일이 있었던가. 그렇다면 그 일은 계속 담고 있을만큼 중요한 일인가. 후회한다고 해서 돌이켜질 수 있는 일인가. 대부분 일어날 일은 어떻게든 일어나므로, 결국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에 닿으면 그제야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타박타박 달렸다.
물론 달리기를 하기 전에도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는지, 왜 요동치는지, 왜 기쁘고 슬픈지 자주 들여다봤지만, 달리면서 보다 더 내 자신에 대해 많이 깊이 생각했다. 달리면서 할 수 있는 건 생각밖에 없어서 잡념들이 정리가 잘되니까 더 심플해졌다. 매주 그만두지 않고 달리는 그 꾸준함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운동이든 인생이든 밀고 나가는 힘, 꾸준한 힘이 중요하다. 역치를 뛰어넘고 또 뛰어넘고. 데드리프트의 중량을 올리고 또 올리고. 스쿼트를 맨몸으로 해보고 아령을 들고 해보고 백스쿼트도 해보고. 오늘은 이만큼 달렸으면 내일은 저만큼 달려보고. 멀리, 더 힘차게. 조금씩, 아주 더디더라도 조금씩 조금씩 밀고 나가고 이어나가는 힘.
몇년간 운동을 하면서 나름 깨닫게 된 탄력성과 지속성을 믿고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에게 매혹되는 건 사실이다. 점점 금방 시들고, 말만 앞서고, 모든 떠도는 말들에 날을 세우고, 상처받고 오그라드는 사람들은 싫었다. 부정적이고, 자존감도 낮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은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내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도 그런 사람들을 멀리하고 끊어냈다. 쉽게 그만두고, 말만 앞서고 금방 뒤엎어버리는 사람. 할 거다, 라는 말을 아주 쉽게 하고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1분 1초도 아까우니까.
산은 올라가면 내려가야 하는데 왜 올라가냐, 걸으면 되지 왜 달리냐, 라고 자신의 몸으로 시간을 들여 통과해보지도 않고 단언하는 사람들에게도 역시 그냥 웃고 만다. 과거를 긍정하고 미래를 부정하는 것보다 지금, 여기를 사는 것이 내겐 중요하니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도 모르지만, 꾸준히 운동하고 꾸준히 자기관리를 하는 사람들은 지금, 여기를 사는 에너지가 있는 사람들인 것은 사실. 나는 운동을 잘하는 사람은 아니다. 운동을 크게 사랑하는 사람도 아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거나 균형감각이 좋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래도 지구력이 있는 사람. 그저, 계속 하는 사람. 말보단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람.
마음이 편하지 않는 일들이 생기더라도 금방 금방 회복하고 또 평평해지고 휘어지고 펴지고 꺾이고 펴지고. 어쨌든, 펴지는 것. 중심을 잘 잡고 무탈하게 사는 것. 올해도, 앞으로도, 내게 바라는 것은 길이 어떻게든 계속 되듯이 나는 저 길 위를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계속 달리는 것. 이런 시기, 저런 시기, 그런 시기의 점들을 이어나가면 하나의 선이 될 것이므로. 그 선이 어떤 선이든 나는 여전히 나일 것이므로. 황홀한 일들이 많았으면. 크게 기뻐하고 되도록 적게 침울했으면. 한겹 한겹 색색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봄이 얼른 왔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