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이는 내밀한 힘'
오래 전부터 계속 주머니에 넣었다 꺼냈다 보고 또 보고 곱씹어보는 프로그램이다. 좋아하는 곡들로 짰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려움이 앞선다. 너무 좋아하는 곡들이어서 그런가... 너무 좋아하니 꼭 어디선가 어긋날 것만 같다.
베토벤 소나타, ... ("전원")
모차르트 소나타, ...K. 333
정대석, ... "달무리" (구ㅇㅇ 편곡)
"전원"은 평화로와 보이지만 그 속에 참 많은 걸 담고 있다. 그 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이렇게 담담하고 무심하게 풀어내는지 모르겠다. 시골풍경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참 닮았다. 원인 없이 생겨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저 호수도, 나무도, 새도, 밭도, 집도,......하나하나의 이야기는 오랜 시간을 통해 완결된다. 아는 사람에겐 보이지만 모르는 사람에게도 너그럽다. 그저 무심하고 평화롭게 보인다.
모차르트를 발판삼아 절정으로 치닫는다? 무모하다. 누가 보아도 무모하다. 그런데 한번은 해 보고 싶다. 투명함 속에 내재한 열정, 활활 타오르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는 불, 빛이면서 동시에 그림자인 그것을 꼭 한번 꺼내 보고 싶다.
그리고 달무리...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 것도 모르니까" 무작정 찾아갔던 동아리, 아무 것도 모르니까 심장이 마구마구 뛰고, 아무 것도 모르니까 무작정 좋았던 우리 장단... 그러고도 이십년이 훌쩍 넘어 이제야 마음이 나는 걸 보면 나도 어지간히 완고하고 소심한가 보다.
이렇게 서로 닮지 않은 세 개의 곡을 하나로 묶는다... 서로 닮은 곡들은 닮았기에 다른 이야기를, 서로 닮지 않은 곡들은 닮지 않았기에 하나로 묶어야 한다. 그게 연주의 맛이다.
끙끙거리는 중에 같이 참여하는 판화작가님이랑 도자작가님 들의 작품들이 속속 도착한다. 회의를 거쳐 작품들이 신중하게 하나씩 자리를 잡아간다. 작품 하나하나를 만드는 공도 나같은 문외한은 상상할 수가 없는데 작품을 배치하는 것도, 전시하는 것도 다른 차원에서 또 하나의 작품이 되는구나... 그 모습이 아름답다. 방해가 될까 최대한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데 어느 순간 발이 땅에 붙어버린다.
아...
우리는 수백년에 걸쳐 쌓인 문헌을 보고 또 보고, 듣고 또 듣고, 연주하고 또 연주한다. 그 문헌들이 나를 오랫동안 알아온 사람처럼, 혹은 나를 옆에서 직접 보고 있는 것처럼, 자연을 꿰뚫는 현인의 통찰력을 가지고 '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주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검증된 보편성이다. 시간과 공간이란 개념이 무의미해지는 현재성이다.
그 이야기가 여기 있다. 자연의 모습이 아닌데도 자연이 느껴지고 시간의 모습이 아닌데도 시간이 느껴진다. 빛을 들이마시고 빛을 내쉬며 이 공간과 함께 숨을 쉰다. '세계를 움직이는 내밀한 힘'이다. 소리에서 찾으려 했던 그 힘이 여기 판화에, 도자에, 그릇에, 이 공간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이 내밀한 힘은
차디찬 겨울 꽁꽁 언 몸을 녹여 줄 장작을 패는
가장의 몸짓에 녹아있고
완고한 겨울의 끝자락
바람이 가벼워지고
물이 흐르고
흙이 부드러워지는
봄의 손끝에 녹아있으며
경쟁이 경쟁을 부르는
끝없이 헛된 소용돌이에서
문득 나를 돌아보게 해 준다.
이 내밀한 힘은
나를 깎고 나를 버리고 나를 비우고 또 비워 드러나는 '나'이며
시간도 공간도
나와 너란 구분도 의미를 잃고
모두가 평등하기에 평등하다는 것도
모두가 다르기에 다르다는 것도 의미를 잃고
모두가 하나 되는
바로 그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