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성근 Jun 18. 2021

만남

커플-로맨틱 필로소피

[이 글은 대화문으로 이루어진 초단편소설입니다. <커플-로맨스 필로소피>라는 제목으로, 철학적 개념과 연인들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글에 나온 사연, 고백, 이야기들은 실제와 허구가 뒤섞여 있으며 일부 에피소드는 인터뷰에 기초하였음을 밝혀 둡니다.]



어쩌다 만났제. 그이허고 만난 뒤로는 죄다 날 그년이라 불러. 됫바가지 만한 네 년 엉덩이 두 짝이 우리 집 살림 다 말아 처먹었다고, 형님댁이 내 머릴 붙잡고 이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할 적에도 나는 그이 큼직한 두손만 생각허고서, 둘째 뱄을 적에 그이가 내 배를 쓰다듬고선 임자 안 만났으면 어쩔 뻔 했어, 하는 소리에 난 또 을메나 좋던지……. 그 냥반 오는 날꺼정 장바닥에 무시래기 주워 삶아 먹으면서도 그리 좋더라고. 만났다 허면 육자배기 노래를 불르면서 임자, 임자 하믄서 날 요리 돌리고 저리 돌리고 밤을 꼴딱 세웠지. 남이사 썅년이라 하든 말든, 그이는 날 임자, 임자, 내 꺼, 내 것인겨 하는기라.


어쩌다 만났제, 어쩌다. 그래 해가지고 열 두해 보고 갈 사람이었는디……. 애들한테 미안키로 말로 다 할까. 한번은 둘째가 쌍년 어메 뒀다고 어데 가서 돌 맞고 왔어. 피를 칠칠 흘리믄서도 암말도 않고 울지도 않아. 아가, 오메 내 새끼 하믄서 내가 바들바들 떨고 우는데, 우리 첫째가 내 손을 꼬옥 잡아. 그 손이 꼭 그이 손 같아. 훤칠허니 떡대 좋게 생긴 그이 같이, 첫째가 꼿꼿이 서서는 날 꼭 끌어 안는겨. 


갸가, 울 첫째가 엊그제 색시 데리고 왔당께로. 회사 출퇴근하다 우연히 만났다 하대. 피부가 하얗게 곱살맞게 생겨가지고 요기조기 올록볼록 한 것이 꼭 내 처녀적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첫째 갸가 말이 좀 무뚝뚝허니 지 애빌 닮아서 그렇지, 말도 마. 그이처럼 지 각시 손을 꼭 잡고 걸어가는 폼이 섬뜩하더랑께. 어데서 그렇게 실한 것을 만났는지, 어쩜 그리 내 소싯적 모습을 빼다 박은 애를 만났는지…….



만남은 하나의 존재가 스스로의 의미를 드러내는 순간이나 현상이다. 우리는 아침에 우유 한 잔을 ‘만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치솔과 양치컵을 만나지 않는다. 사람도 똑같다. 하루 동안 마주치는 숱한 사람들을 모두 ‘만나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기능적 관계를 배제할 때, 오직 순수한 관심과 배려로써 대할 때 만남은 시작된다. 무수한 사람 중에서 당신은 어떻게 그/그녀와 만나게 됐을까? 유독 내게만 차갑거나 따뜻하게 대하는 제스처로, 이때 그/그녀는 하나의 의미로, 하나의 존재로, 나의 옆과 앞 혹은 뒤에서 나타난다. 진정한 만남은 늘 하나의 수수께끼로 다가온다. 


작가의 이전글 카프카를 읽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