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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피 Oct 23. 2020

그 모든 소금

안녕, 지중해 음식은 처음이지?

입김이 터져 나오던 멜버른 겨울에 내가 셰프로 일하는 곳으로 친구 A를 불렀다. 이스라엘 음식을 먹어 본 적이 만무했던 한국인 친구가 가게 안을 호기심 가득하게 둘러보았다. 화덕에서 갓구워낸 황금빛 콜리플라워들이 쉴 새 없이 김을 뿜어낸다. 가지각색의 와인병들이 선반에 진열되어 있었고 튀김기에는 니콜라 감자와 문어가 시끄럽게 튀겨졌다. 


“나 저거 먹어볼래.”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들이 얼어붙은 그의 코를 자극했는지, 주저하지 않고 통째로 구운 콜리플라워를 주문했다. 콜리플라워는 그대로 베이킹 종이에 둘러싸여 꽃다발처럼 손님에게 전해진다. 나가기 전엔 중동식 올리브유를 둘려 윤기를 더하고 마지막으로 지중해 바다 소금을 떨어뜨려 맛을 조절한다.


A가 음식을 받을 때 마치 무대를 마친 연극배우가 꽃다발을 전해 받는 것처럼 좋아했다. “이거 어떻게 먹는 거니?” 나는 작은 접시에 담긴 타히니 (중동식 통깨소스)와 소금 그리고 잘린 피타 (터키식 빵) 조각을 건네주었다. 포크로 그냥 찍어 올리면 바싹 구워진 콜리플라워가 찢어지듯 가볍게 떨어져. 그걸 타히니에 찍어 먹어도 되고 그냥 소금에 찍어 먹어도 돼. A는 금방 이해했다. 나이프로 조금씩 콜리플라워를 적당한 크기로 썰어 내더니 타히니에 야무지게 찍어 먹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맥주 샤피로로 마무리까지 하는 그는, 참 알찬 한국인 친구였다.


“너 먹는 게, 꼭 회 먹는 것 같네.” 

“회는 초장 맛이잖아. 이것도 그런 거니?”


구운 콜리플라워와 타히니. 한국으로 치면 회와 초장 같은 위치일까. 난 구워진 콜리플라워 자체로도 맛있는데 그 맛이 심심하여 타히니가 꼭 필요한 걸까. 서로가 그 자체로는 불완전하여 어쩔 수 없이 저절로 맺어지게 되는 콤비 같은 것. 이를테면 스시와 와사비라거나 라면과 김치라거나, 그런 명콤비들.


난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어쩐지 프로페셔널해 보이지 않는 나의 태도가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한국인이고 그건 모르는 영역이었다. 나는 미지의 영역을 잘 침범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그렇다고 대답했다가 애정하는 콜리플라워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타히니 하나로 차단되는 것 같아서 선뜻 그렇다고 하지 못했다. 나를 보러 추운 겨울에 와준 A에게 선심을 다해 대접해주고 싶어서 여러 가지들을 꺼내왔다. 고추와 고수를 넣고 갈아 만든 올리브유와 잘게 썰린 토마토와 화이트 식초를 버무린 살사, 절인 양배추와 함께 먹어보기를 권했다. 그가 여러 방법으로 콜리플라워를 먹더니 다시 타히니로 돌아왔다. “이거네, 타히니. 얘가 초장이구만.”


가볍게 식사를 끝낸 A는 웨이터에게 빌을 받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국적인 가게 모습에 정신이 팔렸다가 그제야 콜리플라워의 가격을 안 것이다. 그가 나지막하게, 이게 16불이냐고 탄성했다. 나는 이 가게에 일하면서 손님이 가격에 놀라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A의 반응이 난데없이 튀는 불똥처럼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콜리플라워의 이파리까지 먹을 수 있는 거냐고 싹 잘라 먹었던 그의 모습이 선명한데, 계산대 앞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는 옅게 미소짓고 있었지만 어쩐지 A의 표정에서 16불이면 사 먹을 수 있는 맵싸하고 양이 많은 다른 음식들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런 마음인 줄 알았다면 이곳에 부르지 않았을 텐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펼쳐지자 키친에서 나는 무력하게 서 있었다. 그를 즐겁게 하고자 했던 모든 나의 선심이 16불에 증발하는 듯했다. A가 잘 먹었다고 하며 인사를 했다. 그날따라 유난히 ‘잘 먹었다’라는 인사말이 신경이 쓰였다. 잘 먹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다음날 A를 친구들 사이에서 만났다. A가 너스레 미즈논 콜리플라워의 맛을 이렇게 평가했다. 


“담백하고 맛있었어. 그런데 그런거 알지? 약간, 이 돈 주고 먹기는 부담스러운.” 


알지. 가성비 엄청 떨어지는 음식. 그 음식 자체로 그냥 사치인 맛. 나는 한편으로 수긍했다. 베이킹 콜리플라워엔 특별한 쿠킹 메소드가 없다. 

Baby cauliflower by Miznon Melboourne 이미지 출처 Broadsheet
지중해 소금을 푼 물에 삶아내고 10분간 말린다. 어느 정도 물기가 제거된 콜리플라워의 이파리들 똬리를 틀어 고정하고 올리브유를 바른다. 그 후 270도 화덕에 보기 좋은 골든 컬러가 될 때까지 구워내면 끝이다. 


‘이 돈을 주고는 절대 안 사 먹지’하는 음식이 미즈논 (Miznon)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많이 팔리는 아이템이다. 집에 300도까지 치솟는 오븐이 있다면 누구나 해 먹을 수 있는 간편 요리인데 사람들은 왜 찾는 것일까.


요리에 요리사의 삶이 깃든다고 한다면, 주문한 음식에는 주문한 사람의 삶 역시 깃든다. 메뉴에서 최소한의 자본을 투자하여 최대한의 만족을 끌어내기 위해 삶에 축적된 데이터들이 총동원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문한 음식이 앞에 놓일 때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의 지혜 또한 살짝 투영되는 것이기도 하다. A는 인생에서 매 순간, 매번 푸짐한 양과 자극적인 맛의 음식을 선택해왔다. 그에게 음식이 안겨주는 최대 만족은 즐겁게 허기를 채우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독 한국 사람들이 음식 앞에서 가성비를 엄격하게 논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 만큼의 재화를 투입해 얻어내야 할 서비스에는 ‘비상식적으로 많은 양’과 다채로운 향신료들을 느끼기 힘든 ‘원앤온리의 자극적인 맛’이다. 


하지만 미즈논이 손님들에게 제공하는 요리의 가치는, 찾아 주는 이에게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 일종의 ‘환영(Welcome)’에 가깝다. 

꽃다발 같은 음식들을 내려 놓을 때 사람들이 짓는 환희의 표정으로 이곳 음식들의 가치를 유추한다. 그래서 나는, 16불의 가치는 그곳에 있다고 믿는다. 가게를 찾아주는 이들을 반갑게 맞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정갈한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 소금물을 준비하고 270도가 넘는 화덕에 팔을 기꺼이 넣어 예쁜 콜리플라워를 굽겠다는 마음에. 따지고 보면 지중해 바닷소금만이 아닌 그 모든 소금, 노동이 들어간 셈이다.


기껏 내놓은 음식이 이 돈 주고 사서 먹기 부담스러운 경험이라는 평가를 받고 셰프로서 약간의 수치심을 느꼈지만 항변하지 않기로 한다. 그 모든 소금의 맛을 알아가는 건 A의 세계에 존재하는 모르는 영역이다. 나는 그 미지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 이렇게 대답했다. 


“다음엔 마라탕을 먹자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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