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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피 Nov 12. 2020

옥수수는 나를 닮아 불행하고

어느 불화한 가족의 에피소드

가마솥이 따로 없는 한국의 여름이었다. 아침부터 숨이 막히는 더위에 겨우 눈을 떴더니 방 안에 불쾌한 습도가 온몸을 휘감았다. 목 주변은 벌써 땀으로 진득했고 배게며 이불이며 침대 시트 모두 습기를 머금어 마치 옷을 입고 물에서 막 빠져나온 듯,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내 몸에 착 달라붙었다. 출근시간이 거의 다 된 걸 보고, 정말 인생이 싫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일어나 휘청휘청 문을 열자 동시에 훅, 끼치는 구수한 단내. 부엌에는 압력솥이 규칙적으로 칙칙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냈고 그 덕분에 온 집안이 증기로 자욱했다. 바로 그 아래에 엄마는 소리도 없이 자그만 돌덩이처럼 앉아 마늘을 까고 있었다. 내가 마늘인 양, 온몸이 축 늘어져 서있는 나를 보는 대신 손에 쥔 마늘을 보며 엄마가 말했다.


“빨리 씻어. 학교 가게.”

“뭐 삶아?”

“옥수수.”


엄마는 이렇게 더운 아침부터 옥수수를 찔 생각을 대체 어떻게 했을까. 


“안 더워? 이렇게 더운 날에 무슨 옥수수를 쪄?”

“싸잖아. 제철이라.”


더운 것과 싼 것은 무슨 연관이 있나. 갑자기 옥수수가 먹고 싶어서 먹는 것도 아니고 싸서 왕창 사온 옥수수를 한 여름에 찌는 이유가 궁금했다. 사실 알면서도 궁금한 마음이었다. 시장에서 우연히 값싼 옥수수들을 발견하고 양 손 가득 검은 봉지들을 쥐고 돌아오는 엄마의 일상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면, 혹은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인생을 좀 더 잘 살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인생에서 축적된 나름의 지혜들이 부지런히 긁어모아 온 산물들을 보면서 삶을 좀 더 즐거워할 수 있는 걸까. 지독하게 덥건 춥건 아랑곳하지 않고 값싼 것들을 삶아서 입으로 마구 넣고 싶은 마음. 기회비용을 최대치로 활용하는 게 몸에 베인 그런 태도들. 


부엌 구석엔 시장에서 마구 사온 옥수수들이 잔뜩 쌓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순식간에 쏟아져 나오는 증오감에 나는 저항할 힘도 여유도 없었고 내가 더위에 지친 건지 인생에 지친 건지 알 수 조차 없어 어지러웠다. 앞으로 엄마는 이 더운 여름 달에 쉴 새 없이 저 많은 옥수수들을 쪄 댈 것이고 먹고 싶은 마음도 없는 익은 옥수수를 엄마는 쟁반에 담아 내 방으로 욱여넣는 내일들이, 콸콸 끓는 냄비의 뚜껑을 열 때 얼굴에 솟구치는 연기처럼 나를 덮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압력솥은 김을 쉭쉭 뿌려대고, 그 와중에 이미 너덜 해진 육신을 달랠 방법이 없다는 걸 깨닫자 나도 모르게 한숨이 터졌다.


“진짜 짜증나, 엄마…”

“할 일이 그렇게 없냐? 별거에 다 짜증을 내네.”

“학교 가기 싫어.”

“그럼 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냐.”


차라리 내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산산이 흩어졌으면 좋았을걸. 땅으로 꺼지라면 조용히 꺼질 자신이 있었고 내 앞에 차려진 밥상을 누군가가 ‘넌 먹을 자격 없어’라고 치운다면 얌전히 뺏길 용의가 있었다. 저절로 솟아날 리가 없는 밥줄과 나의 연결 고리를 끊어 낼 수 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고 싶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싹 마른, 불행한 영혼이 팔리기는 할까. 찬 물로 샤워를 하면서도 불행으로 뜨거워진 몸과 마음은 좀처럼 식을 줄 몰랐다. 여전히 더웠고, 욕실의 알 수 없는 수증기는 나를 더욱 지치게 했다. 물이 뚝뚝 흐르는 거울을 보며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이 어렵다, 어려워.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엄마가 차린 조그만 밥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치, 젓갈, 삶은 양배추, 계란 프라이, 흑미를 섞어 보랏빛이 된 쌀밥 같은 것들. 저것들을 먹으면 오늘을 견딜 수 있을까. 밥상 앞을 차갑게 지나고 나서 옷을 주섬주섬 꺼내 입었다. 오늘은 무엇을 입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누군가 나를 예쁘게 여겨 주길 바란지 오래고 옷을 잘 차려입는 마음은 '이 사회에 융합할 의지'가 있다는 또 다른 반증이었다. 늘 입던 걸로.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걸로, 흰 셔츠에 회색 슬랙스 바지에 몸을 욱여넣고 집을 나섰다. 현관문 잠금이 열리는 자동음이 괴성을 지르자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 이거라도 들고 가, 그러면서 방금 압력솥에서 꺼낸 옥수수가 담긴 봉지를 손에 쥐어 주었다. 나는 잘 다녀오겠다는 말도 없이 돌아섰다. 다시 돌아온다는 말에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봉지를 손에 쥐고서 한참을 걸었다. 


밖의 여름은 덥지 않았다. 이른 아침은 걸을 만했고, 청량감마저 느껴졌다. 집의 안과 밖은 왜 이토록 다른가. 살면서, 이 더위를 견뎌가며 옥수수를 찔 일이 없는 나의 삶과 더워도 악착같이 옥수수를 쪄 먹어야 하는 엄마의 인생관의 충돌 때문에 마음이 몹시 어지러웠다. 비단 찐 옥수수 때문이겠는가. 매사의 모든 일에 서로를 혐오했다. 엄마는 내가 더 독하게 돈을 벌지 못하는 경제적 유약함을 비난했고 나는 엄마의 교양없을음 미워했다. 동시에 드는 우리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우울한 예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마음이 있다. 이를테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적당히 더울 때 열린 장미가 혹독한 여름날을 맞이하고선 하루아침에 후드득 녹아 떨어지는, 예쁜 장미를 오래오래 붙잡아 두고 싶은 내 마음과 무관하게 찾아오는 어쩔 수 없는 변화들. 


나와 엄마, 그리고 가족과 이별할 수 있을까. 봉지에서 옥수수를 꺼내 들어 촘촘하고 빈틈없이 꽉 찬 노란 옥수수 알갱이들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빠졌다. 알갱이 하나가 툭 빠지면 그 빈자리가 큰 균열을 일으키는 가만한 패턴들이 보였다. 본디 그 알갱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더없이 한치도 다름없는 평범하게 존재하기에 감히 던질 수 있는 ‘틈’ 같은 것들. 스스로 사라짐을 선택함으로써 비로소 남길 수 있는 외마디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하면서 온전한 ‘나’ 일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이토록 빈곤하여 함께 갈 수 없는 운명일지도. 그걸 알면서 다 각기 다른 운명의 존재들을 24평 아파트 안에 욱여넣어 하루하루를 비극으로 맞이하는 우리가 아니겠냐며.


옥수수 알갱이는 틈도 없이 나란히 붙어 앉아 서로가 불우하고, 그 우울을 닮아 알이 꽉 찬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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