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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Dec 04. 2021

김장을 하다.

고되고 즐거운 숙제

김장철이 왔다. 일 년 동안 먹을 김치를 담그는 집안의 거대 행사가 온 것이다. 식구 수에 따라  김장의 규모가 달라지는데 세식구가 전부인 우리집은 올해 50포기의 김치를 담궜다. 지난 여름 우리집 텃밭에 심은 배추와 무를 수확하고 모자란 배추는 이웃에게 구매를 했다.  소박한 우리 텃밭에서 여름 햇살을 온 몸으로 받아낸 고추는 빨간 껍질이 투명해질때까지 가을 햇살에 곱게 말려 방앗간에서 또 곱게 빻았다. 오일장에서 젓갈을 구매하고, 마늘과 생강은 이웃들에게 선물받았다.

배추를 소금물에 절이고, 배추가 절여지는 동안 양념을 준비한다. 죽을 쑤고, 각종 재료들을 쉴새없이 갈아댄다. 어린이 하나가 목욕을 할 수 있을만큼 거대한 대야에 젓갈, 채썬 무, 고춧가루, 믹서기로 간 생강과 마늘, 청각,죽등을 넣고 흥부의 뺨을 때렸을 법한 기다란 주걱으로 힘차게 양념을 저어준다. 성인 둘이서 들기에도 벅찰만큼 대야는 무거워졌다. 부엌은 이미 난장판이다. 김장날 아침, 이웃들이 모여든다. 각자 고무장갑을 손에 끼고, 각자의 역할을 분담한다. 소금에 절인 배추를 깨끗하게 씻어서 가지런하게 쌓는다. 이때부터 에고에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나온다. 소금물을 먹고 숨이 죽은 배추잎 사이사이 양념을 채워 김치냉장고 플라스틱 통에 차곡차곡 넣는다. 아이고, 허리야. 하지만 멈출 수 없다. 동네 여인들의 수다가 노동요가 되어 온 집안이 시끌벅적하다. 수육 삶는 냄새가 고단한 노동에 박차를 가한다. 배추 김치 치대기가 끝이 나면 이제 깍두기 차례다. 깍둑 썬 무와 소금에 절인 고추를 대야에 넣고 양념을 넣어 비벼준다. 수육이 완성되고, 집 주인은 고기를 썬다. 마지막 배추를 신나게 찢어서 그릇에 담고, 각자의 잔은 막걸리로 채워진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막 담근 김치와, 따끈한 수육, 그리고 막걸리, 절로 신이 난다. 집주인은 드디어 김장을 끝냈다는 안도감에 피곤함도 잊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아랫집은 그제 끝냈고, 이제 윗집이 남았다. 여인들은 김치 한포씩 받아 들고 모레 윗집에서 만날 것을 약속한다. 고무장갑이 김치 양념에 빨갛게 물들었다. 여인들은 빨개진 고무장갑을 깨끗이 씻어 모레 윗집에서 김치를 치댈 때 다시 쓸 것이다. 이틀 밤이 지나고, 윗집에서 수육냄새가 내려온다. 여인들의 웃음소리도 함께. 김장이 끝나면 시골의 겨울은 본격적으로 고요해진다. 고요한 휴식의 시간동안 김치는 익어간다.


엄마는 김장을 끝내놓고, 아직도 수확을 하지 않은 배추밭을 볼때마다 아이고, 저 집 사람들은 기분이 얼마나 심란할까. 하고 말한다. 주부들에게 김장은 큰 숙제다. 이 엄청난 노동과 시간은 물론이고 김장을 할만한 공간의 문제 때문에 김치를 사 먹는 집들이 많은데 믿을 수 있는 식재료인가에 대한 불안, 만만치 않은 가격, 그리고 맛 때문에 특히 어렵다. 감사하게도 우리집은 지금까지 김장김치를 사 먹은 적이 없다. 외할머니께서 매년 김장김치를 보내주셨고,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맛있게 받아 먹었다. 그때는 김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인지 몰랐다. 할머니의 건강이 나빠지고서는 김장날이면 엄마가 시골에 내려가 김장을 도왔는데 그 돕는다는게 김치에 양념을 치대고, 동네 어르신들 대접하는게 전부였다. 배추 농사에서부터 김치 절이기, 양념, 치대기, 일가친척들에게 택배보내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한 것은 엄마도 올해가 처음이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절인배추씻기, 양념재료 손질(믹서기가 내 담당이었다), 양념 치대기와 심부름을 맡아서 했는데 이것만해도 (엄살이 아니라 정말)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나왔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김장 김치를 선물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를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 안다. 김치가 얼마나 좋은 음식이고, 김장이 얼마나 대단한 문화인지에 대해선 아직 모르겠지만 그 정성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선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살림을 꾸린다는 것이 그런 거겠지. 함께 먹고, 나누는 즐거운 순간들, 건강과 안녕을 위해 정성을 다 하는 일 말이다.


일가 친척들에게 김치를 보냈다는 통화를 하면서 (스피커 폰으로)  별로 한 일도 없는 나는 낯간지러운 생색을 냈다. 수십년을 홀로 그 일을 해낸 할머니가 보셨다면 허허, 하고 웃으셨겠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일이지 않은가!

밭에서 꽃처럼 피어나던 배추잎이 크고 단단하게 자라는 걸 보면서 햇살과 빗물, 그리고 흙의 위대함을 배운다. 고된 노동을 함께 하는 이웃들의 온정과 가족을 위하는 정성은 또 어떻고.  


여름부터 시작된 김장이 끝이 났다. 일단 맛이 매우 좋아서 신이 난다. 올해 김장 김치는 익어가면서 어떤 맛을 낼까?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으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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