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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jwk Feb 03. 2023

나는 폐경을 기다린다.

그 날이 오면 내 몸과 마음은 온갖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어야 할 정도로 아픈 건 아닌데 무엇을 하든, 매 순간, 그 무엇에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통증 덩어리가 아랫배에서부터 사지로 뻗어 나간다. 어떤 날은 진통제를 먹어도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 정도로 통증의 세기가 강하고, 어떤 날은 아랫배에 묵직한 느낌만 있을 뿐, 진통제 없이도 견딜 만 하다. 그리고 진통의 크기와는 상관없이 몸과 마음이 버겁고, 별거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난다. 그러면 나는 대부분의 여성이 한 달에 한 번 겪는 이 일에 유난 떨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백수인 너는 그래도 집에 있잖아. 진통제 먹고 침대에 누워 쉬어도 되고, 직접 구운 브라우니를 먹으면서 하루 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있어도 뭐라 그럴 사람 아무도 없잖아. 두 팔로 아랫배를 감싸고 몸을 동그랗게 말아 누워 있으면서 나는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을 생각한다. 육신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해나가는 그들에게 끝없는 애정과 무한한 존경을 느낀다. 그럼에도 나는 그 날만 오면 내가 여자인 것이 원망스럽고, 내가 여자인 것이 억울하다. 여자의 숙명을 받아들였다가도(달리 방법이 없긴 하지.) 정녕 이것이 진화된 인간의 몸이 맞나, 생명을 잉태하는 신성한 몸이고 뭣이고 간에 여자이고 싶지가 않다. 생리를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잔잔하게 밀려오는 아랫배의 시큼한 통증도 싫고, 예정일이 임박해 속옷에 혈이 묻지는 않을까 신경 쓰는 것도 싫고, 첫째 날에서 둘째 날 넘어가는 그 밤, 진통제의 약발이 떨어져 잠에서 깨는 것도 싫고, 혈 덩어리가 쑥~하고 나오는 그 느낌도 싫고, 의자에 앉을 때, 앉았다가 일어날 때, 혹시라도 옷에 묻지는 않았는지 전전긍긍하는 것도 싫고, 턱에 딱딱한 여드름이 뜨겁게 올라오는 것도 싫고, 생리가 끝나갈 때쯤 입 안이 허는 것도 싫고, 대낮부터 몽롱한 피로가 머리에 가득한 것도 싫고, 생리인걸 티내기도 싫고, 생리인걸 티 안 내는 것도 싫고, 생리를 핑계 삼아 단 걸 잔뜩 먹는 것도 싫고, 생리 중에 몸무게가 오르는 것도 싫고, 샤워를 하고 나서 수건으로 몸을 닦는 그 순간에 허벅지에 생리 혈이 흘러내리는 것도 싫고, 하얀 바지를 입고 신나게 달려가는 생리대 광고 모델도 싫고, 00을 쓰고 인생이 바뀌었다, 하면서 생리컵이고, 탐폰이고, 생리팬티고 뭣이고 간에 생리용품 광고하는 것도 싫고, 저번 달 보다 오른 생리대 가격도 싫고, 소녀가 첫 생리를 시작하면 진짜 여자가 되었다며 축하파티를 하는 것도 싫고, 폐경이 오면 여자로서의 가치가 모두 끝난 것처럼 불안감을 조성하는 건강식품 광고도 싫다. 


나는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고 싶다. 


나는 폐경을 기다린다. 


생리를 시작하면서 내 몸에 대한 수치심도 시작되었다. 그것은 내 자신이 인지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내 몸을 보는 나의 시선, 표정, 자세, 내 몸과 마음을 지배해왔다. 내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것을 세상 모든 사람이 알아버릴까 두려워했다. 나는 수치심을, 두려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고, 어떻게 극복해야하는지 모르는 채 40대를 맞이했다. 한 달에 6일. 1년이면 72일. 13살에 생리를 시작했으니 지금까지 대략 2000일,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패드를 붙이고 오직 생리가 끝나는 날만 기다리던 걸 생각하니 끔찍하다. 아직도 내게는 수년의 시간이 남아있다. 그리고 매 달 그날이 오면 그 모든 싫은 것들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저번 달과 똑같은 불평을 할 테지. 그때 나를 불만의 늪에서 끌어내 주는 것은 흡수력 좋은 생리대도 아니고, 달달한 쿠키도 아니고, 멈출 수 없는 미드도 아닐 것이다. 생리가 몰고 오는 몸과 감정의 위태로움을 나는 다른 여성들, 감히 동지라 말하고 싶은 그들을 생각하며 이겨낸다. 오직 그들만이 나의 억울함을, 불만을 달래줄 수 있다.


최근, 폐경을 기다리는 나의 마음을 응원하는 멋진 글을 보았다. 영국의 다재다능한 작가이자 제작자이면서 연기도 하는 피비 월러 브리지가 만든 [플리백]이라는 드라마에서 성공한 경영인을 연기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의 대사인데, 가볍게, 유머를 섞어 말하지만 이 장면에서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고, 공감과 감동으로 박수를, 진짜 박수를 쳤다. 


한껏 차려입고, 매력적인 타인의 시선을 느끼면서 어쩌면 일어날지도 모르는 짜릿한 시간에 대한 환상. 나이가 들면 그 환상들과 멀어지고, 몸의 모든 기능은 약해지겠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그 육신이 겪는 그 과정, 앞으로 내게 올 그 순간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기다린다. 그 날이 오면 그동안 수고 많았다고, 진짜 축하 파티를, 내 몸을 위한 진짜 파티를 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RZrnHnASRV8&t=12s

“여자들은 고통을 몸속에 내장한 채 태어나죠. 우리 몸이 겪어야 할 운명이예요. 생리통, 유방통, 출산, 잘 알잖아요. 평생 그걸 안고 살아가는 거예요. 남자들은 그렇지 않죠. 나가서 찾아야해요. 그래서 신이며 악마 같은 걸 만들어내는 거예요. 죄책감을 느끼려고요. 근데 우린 스스로 그걸 정말 잘 하고 있거든요. 남자들은 전쟁을 일으켜 느끼고 서로 접촉하려하죠. 전쟁일 일으킬 수 없을 땐 럭비를 하고요. 근데 우린 이 안(배를 가리키며)에 다 있단 말이예요. 오랜 세월에 걸쳐 고통을 주기적으로 느끼죠. 그러다가 드디어 그 모든 고통과 화해할 때쯤 어떻게 되죠? 폐경기가 시작 되요. 망할 폐경이 온다니까요. 폐경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거예요. 골반 전체가 무너지고 몸에선 열이 나지만 아무도 신경 안 쓰죠. 하지만 그러다가 자유가 되요. 더는 노예가 아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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