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18년, 팀장으로는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슴으로 품고 살던 ‘퇴사’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갑작스러운 결심은 아니다. 몇 년간 팀장으로서의 의무와 책임감에 지쳐 퇴근 한 후엔 늘 아내와 퇴사에 대해 얘기 하곤 했다. 매일매일이 힘들고 어려웠던 건 아니다. 하지만 풀어내지 못한 스트레스가 켜켜이 쌓여갔고 50대 이후의 비전에 의문이 들었다. 그 때도 지금의 회사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지속할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일까? 가족의 생계가 걸린 문제인데 왠 사치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그 만큼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였고 오직 아내만이 공감하는 아픔이었다. 그렇게 아내는 퇴사를 결심한 나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아내에겐 고맙기도 하지만 너무 미안하다. 나의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함께 받고 있었으니까.
그 날 아침은 특별한 것이 없었다. 언제나처럼 이른 아침에 출근하여 업무를 보며 결연한 표정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상사에게 퇴사를 이야기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고민되고 힘들다. 퇴사까지 스트레스다. 넘어야 될 산들이 첩첩이 쌓여있다. ‘먼저 어떤 말로 시작할까?’, ‘뭐라고 말씀하실까?’, ‘화를 내실까?’ 등. 하지만 무수한 사념들이 뭉쳐 있다가 입 밖으로 분출되게 되면 무척이나 단순해지고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된다. 그냥 내가 퇴사를 결심했다는 단순한 사실만 남게 된다.
상사의 반응은 처음엔 그냥 무덤덤하게 무시하고 다음은 이야기를 들으며 설득 하다 주위 동료들을 이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마흔 중반을 넘겨 스스로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중년 팀장의 결심을 쉽게 말릴 수 없음을 다들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본인들의 직장생활도 지치고 힘들어 적극적으로 말릴 수 있는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여러 임원들, 주변팀장들, 동료들과의 면담을 거치고 인사팀과 최종적으로 퇴사 날짜를 조율하였다.
퇴사까지의 날짜는 한달 정도가 걸렸다. 중간중간 퇴사에 대한 소문이 나기 이전엔 많은 갈등이 있었다. 갈등이라기 보다는 망설임이었다. 중학교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의 두 아들이 특히 마음에 걸려 늦은 밤 잠 들어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들여다 보곤 했다. 그럴 때 마다 가슴 먹먹함은 어쩔 수 없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리라. 그런 나를 보면서 아내가 얘기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인생이 있대. 너무 걱정하지마. 어떤 환경에서도 믿어주고 지켜 보는 게 부모의 역할이야.”라며 흔들리는 날 잡아 주며 온전히 나만을 위로해 주었다.
퇴사 전까지는 수 없이 많이 흔들린다. 난 이번이 두번째 퇴사 결심이었고 나름의 각오가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8년 동안 직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 받으며 내적으로 편하고 연약하게 키워져 온 습성과 경제적 안정감에 자연스럽게 약해 질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상황에서는 갈등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퇴사를 결심한 직장인들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물어 보고 또 물어 보라. 퇴사 이후의 삶이 안정된 삶이냐는 질문이 아니다. 퇴사 이후 생계를위한 준비가 되어 있냐의 질문이 아니다. 본인의 선택에 후회가 있을지에 대한 물음이다. 선택한다는 것은 삶의 방향이 바뀌는 것이다. 어떤 길이든 본인이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곧게 뻗은 길, 막혀있는 길, 꼬불꼬불한 길, 갈림길 등 무수히 많은 길을 걸어야 하고 매 순간 선택이 기다리고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본인의 삶임을 먼저 받아 들여야 한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다. 퇴사를 선택하든 다시 번복하든 본인의 인생이다. 어떤 선택이든 떳떳하고 당당해라. 온전히 본인의 삶을 사랑하고 살아가기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