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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모비딕 May 03. 2019

떠나는 자와 남는 자

퇴사 날짜가 확정되고 시간이 흐르면서 회식자리와 티타임이 많아졌다. 기존에 서로 바쁜 일상으로 소홀히 했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 자리는 떠나는 자와 남는 자로 구분되고 서로간에 공감되는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우선, 떠나는 자의 거취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의 경우는 이직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뚜렷하게 일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말레이시아에 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선배를 통해 홈쇼핑 상품의 해외 수출 업무를 배우고 홈쇼핑 상품을 기획하여 방송을 진행해 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시작하는 일이다. 당장에 돈이 되는 일들이 아니고 결과물을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것이라 주위 동료들의 응원과 격려가 많은 힘이 되었다. 떠나는 자는 이렇듯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는 시간들로 사람들과 함께한다. 지금까지 이직하는 후배들을 보내는 경우엔 직급이 어떻게 되는지 연봉은 어떻게 되는지 등 어떤 인센티브를 받고 직장을 옮기게 되는 지가 주된 이야깃거리였다. 당장은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회사를 벗어난다는 것에 대한 약간의 부러움이 남는 자들로부터 느껴진다. 어쨌든 퇴사가 결정되고 이뤄지는 자리들이라 대체로 긍정적인 이야기들로 채워지는 것 같다.


이후 남는 자들의 해우소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많은 팀장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공통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모두들 팀원들과 직장 상사, 업무로부터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평소에 나만 가지고 있다고 느꼈던 견디기 힘들 정도의 압박감들을 강도는 다르지만 그들 모두 느끼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라는 게 다들 비슷비슷하다는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밤에 잠이 들지 않을 때가 많아. 잠이 들면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겨서..”, “나를 싫어 하는 것 같아. 무슨 이야기를 해도 믿어 주지 않아.”, “자기가 모든 걸 결정할 거면 왜 나를 팀장을 시켰는지 몰라.”, “일요일 저녁만 되면 긴장되고 안절부절 못하는 것 같아. 어깨와 등쪽이 너무 결려.”


다들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 같다.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다른 말은 견디지 못한 자와 견디고 있는 자로 해석해도 되지 않을까. 퇴사가 단순히 견디지 못한 결과라 하기에는 서글픈 해석이지만 견딘다는 의미는 즐긴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회사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들을 찾고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나의 ‘퇴사’로 잠시나마 서로간 뭉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떠나는 자에게는 기대와 희망을, 남는 자에게는 지금까지 치열하게 살아 온 회사생활에 대한 위로와 격려를 통해 각자 다시 살아가는 힘을 얻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내 삶의 방향은 그들과 다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었다.


퇴사 이후 매일매일 일이 있던 18년 직장인으로서 생활의 습성이 나의 심리적인 불안요소로 작용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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