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에 관한 고찰과 발견
각 동네의 카페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지 꽤 된 것 같다. 우리 동네에도 많은 카페가 있지만 오늘은 그중에 두 개의 카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구분을 하자면 동네에 있는 스타벅스도 ‘동네 카페’라고 할 수 있지만 이 글에서는 동네 카페는 개인 창업을 기준으로 하겠다.
프랜차이즈 카페는 균일한 원재료와 레시피를 통해 맛을 균일하게 유지하며 어느 점포를 가더라도 그 맛이 균일하다. 패키지와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동네 카페는 프랜차이즈와 다르다. 규모나 목적, 운영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프랜차이즈에는 없는 게 동네 카페에는 있다. 가게 사장님의 취향에 따라 커피를 내리는 직원에 따라 그 맛이 달라질 수도 있다. 놓여있는 책과 가구, 책상과 의자의 높이 커피가 나오는 컵의 모양도 제각각일 수도 있다.
앞서 적어본 것들은 가게에서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만들어진 이후, 가게를 완성하는 건 그 공간을 채우는 사람들이다. 가게가 가진 취향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가게를 채워간다. 손님을 보면 가게가 보인다.
내 방에서 5분 거리에 두 카페의 이름은 '1330'과 'may & sugar' 다. 같은 업종임에도 두 카페는 같은 건물 일층에 나란히 붙어있다. 옆에는 편의점과 해물찜 가게, 그리고 애견카페가 있다. 아, 그리고 얼마 전에 1330의 분점이 같은 건물 1층에 생겼다.
이 건물은 오피스텔이다. 1층에는 헬스장과 편의점, 동네 청과점과 애견카페, 애견샵, 카센터, 비빔국수와 왕돈가스 가게, 추억의 가수 J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수제버거 가게가 있다. 이 건물은 '일산구'의 가장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건물 바깥쪽으로는 비닐하우스와 단독 주택, 그리고 작은 텃밭과 밭들이 띄엄띄엄 있는데 한 층 낮은 위치에 있어 카페에서 밖을 바라보면 탁 트인 풍경이 보인다.
그리고 카페 앞에는 일산의 랜드마크인 호수공원까지 이어지는 '호수로'가 바로 앞에 위치한다. 이 '호수로'는 '대화동'부터 이어지는데 호수로를 따라서 '킨텍스-현대박화점-한류월드-원마운트-호수공원-라페스타-웨스턴돔-샘터광장(일산의 스톤헨지)-증권박물관'이 이어진다. 내가 러닝 코스로 자주 이용하는 라인이다.
먼저 1330을 살펴보자,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코지한 분위기다. 약간 동네 카페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따뜻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소품과 가구는 약간 제각각인 것 같지만 아기자기한 느낌을 준다. 선반에 놓여있는 책들은 자기 개발서나 여행책, 철학책을 비롯한 베스트셀러, 요리책 등 취미 실용 서적을 중심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아주아주 대중적인 취향의 것들이다. 이곳은 빵을 직접 굽는다. 한편에 베이킹 설비들이 있다. 스콘이나 쿠키부터 타르트나 케이크까지 가정에서 만들어 먹는 듯한, 기본에 충실한, 심플한 형태와 맛의 케이크들이 대부분이다.
이 곳을 찾아오는 손님들은 보통 편안한 차림으로 편하게 이곳을 이용한다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연령대의 폭이 넓다. 가족단위부터 젊은 사람들부터 아버님, 어머님까지 다양하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간단한 뷔페식 식사를 판매한다. 메뉴 또한 아주 건강하고 일상적이다. 오이, 당근 등 채소 스틱과 각종 잼, 삶은 계란과 고구마, 호박, 기본적인 햄과 치즈, 요거트와 견과류 등이 있다.
커피를 한 잔 시켜놓고 자리를 이용하는 분들은 주로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한다. 아니면 지인들과 와서 이야기를 나눈다. 수다를 떤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에는 가게 이름 1330(일삼삼공)을 딴 삼공이라는 강아지 친구가 한편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름과 햇살, 나무와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다음으로 바로 옆 may & sugar를 보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도회적인 분위기? 다. 전체적으로 색상이 많지 않고 화이트와 블랙 위주의 구성이다. 가구와 의자도 형태나 마감, 질감, 색상, 높이 등이 통일성 있다. 선반에 놓인 책들은 커버 디자인이 유명한 펭귄북스의 책들이 일렬로 놓여 있고, 아파르토멘트, 매거진 B, 모노클, 유르겐 텔러, 디터람스, 바우하우스 등 디자인 서적이나 패션, 문화에서 아주 트렌디한 것들이 많다. 이곳도 마찬가지로 빵을 직접 굽지만 오븐은 커튼으로 가려진 주방 안 쪽에 있다. 그리고 케이크는 쑥인절미갸또, 얼그레이, 레드벨벳, 블루베리가 올라간 초코케익 등 주로 밖에서 사 먹을 법한 케이크들이 많고 무엇보다 케이크의 외형, 디자인이 섬세하고 예쁘다.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도 콜라주나 추상적인 것들이 많다.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노트북(주로 맥북이 90%)을 들고 온다. 개인 작업을 하거나 영화를 보기도 한다. 여럿이서 같이 오는 사람들은 연령차이가 적다. 친구나 연인끼리 오는 경우가 많고 간혹 가족들도 보이는데 자녀분들이 성인이거나 고등교육 과정 이상의 나이로 보인다. 해외여행 계획을 짜는 사람들도 보이고, 책을 읽는 사람들은 헤르만 헤세의 문학작품이나 철학책, 디자인 서적, 패션잡지 등을 들고 있다. 이곳에는 고양이가 있지는 않지만 있다면 잘 어울릴법한 공간이다. 가을, 바람, 달빛, 꽃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두 카페에서 사용하는 코스터와 컵, 접시와 메뉴판, 셀프 바의 물통 혹은 물주전자, 컵과 트레이 사장님의 옷차림과 헤어스타일 등을 보면 두 카페의 성격이 더 뚜렷하게 구분된다. 두 가게는 정말 바로 옆 가게다. 딱 붙어있다. 메이 앤 슈가는 최근 연남동에 케이크 샵을 오픈한다고 들었다. 그리고 1330은 같은 건물 1층에 베이킹 공간이 더 크게 만들어진 카페를 새로 열었다. 베이킹, 자수 같은 실용 취미의 원데이 클래스 수업도 만들었다.
동네 카페를 보면서 브랜딩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좋은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어려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많은 자본과 연구와 노력, 지식, 능력이 필요해서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뜻이다. 작지만 좋은 브랜드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좋은 브랜드라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행위와 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매개체가 어떤 제품, 서비스, 공간, 콘텐츠 일 뿐, 브랜드란 만든 사람이 주도적으로 끌고 나가지만 결국 완성되는 건 어떤 사람이 사용하면서부터이다.
나는 메이 앤 슈가를 자주 간다. 어떤 여름날에는 반팔티에 반바지, 슬리퍼를 신고 빙수를 먹고 싶을 때, 수박주스를 먹고 싶을 때, 삼공이가 보고 싶을 때 1330에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