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적은 사람, 그게 접니다. 어릴 때는 사람보다 책장을 파고들었고, 커서는 타지 생활을 하느라 그랬다고 변명해 봅니다. 책 속의 영웅들은 함께 할 동료를 잘도 모으던데 왜인지 저는 편하게 만날 친구 하나 갖는 것도 잘 안됐습니다. 같이 목숨 걸고 지구를 지키자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영혼을 알아보는 친구를 원했습니다. 빨강머리 앤의 친구 다이애너처럼 말입니다. 내 성격이 모가 나서, 내가 재미가 없어서 친구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오해를 했습니다. 모두에게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저는 상대가 좋아할 만한 사람을 연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연극이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금방 모임의 중심에서 이목을 끌 수 있었습니다. 바라던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으로 들떴지만 곧 어딘가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즐거워야 하는데 저는 "좋은 친구" 흉내를 내느라 바빠서 즐거움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우정을 원했지만 제가 얻은 것은 피로감뿐이었습니다.
빨리 친해지려 애를 쓰다 지쳐버리기도 했습니다. 갑자기 로그아웃이라도 한 듯 관계가 단절되기도 했습니다. 친구는 더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데 제가 싫어서 도망칠 때도 많았습니다. 알면 알수록 실망스러운 점이 늘어나고, 내 생각과는 너무도 다른 이 관계가 갑자기 짐짝처럼 느껴집니다. 망가진 우정을 반추하다 보면 자존감이 썰물처럼 씻겨나갔습니다.
꾸며낸 내 모습은 진짜 내가 아니고, 가면을 쓴 나와 그 가면에 호감을 느낀 사람 역시 진짜 친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관계가 오래갈 리가 없다는 사실도요.
국영수만큼 꼭 배워야 할 것이 관계의 기술입니다. 집단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친구는 가족, 직업처럼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학교에서 수학과 체육은 배웠지만 타인과 잘 지내는 법은 천성적으로 타고나거나 알아서 배우도록 방치됐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동급생을 따돌리고, 다르면 공격하고, 나만 잘나면 된다고 믿는 인간으로 자랐습니다. 졸업하면, 취직을 하면, 결혼을 하면 어른이 될 것이고 철이 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청소년기에 잘못된 관계를 학습한 사람은 어른이 된 후 나아지는 커녕 더 심각해질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이런 사람은 남을 괴롭히거나 억압하는 방식으로만 타인과 교감합니다. 잘못된 관계로 인해 대인관계에서 고립되고, 고립될수록 더 남과 잘 지내지 못합니다. 대표적으로 법인마다 하나씩 꼭 있다는 사내 미친놈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공장에서 k마크를 달고 나온 상품처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명확하게 구분해주는 증명서 같은 것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입이 무겁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며 식성도 비슷함' 같은 식으로 말입니다. 이런 보증서가 있는 사람과는 마음 놓고 우정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상상은 인간의 특성을 모르고 하는 행동입니다. 마치 물처럼 얼었다 녹았다 증발했다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모습이 다 달라도 그 모든 것을 통틀어 물이라고 하는 것처럼 마음도 그렇습니다.
방정식 이후로 포기해버린 수학처럼 우정의 공식은 난해하기만 했습니다. 속마음 다 털어놨더니 절친이 아니라 확성기였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면서 가장 적극적으로 나를 욕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제발 나를 배신하지 말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처음엔 배신감에 속이 쓰려 다시는 누구도 믿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했지만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그 사람들은 친구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속은 혼란과 분노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자신의 광기를 타인에게 쏟아붓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빨리 알아보지 못하면 치유하기 어려운 내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나의 호의를 공짜 급식처럼 퍼 먹기만 하는 사람, 모든 것을 너의 탓으로 돌리기 바쁜 사람을 피해야 합니다.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줄 안다면 나에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부정적인 관계도 단호하게 끊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외로움 때문에 나를 좀먹는 나쁜 관계를 놓지 못하는 것은 더 큰 외로움을 만들어내는 지름길입니다. 고통스러울 바에는 외로운 게 낫습니다.
만나면 즐겁고 이야기도 잘 통해서 밥 먹고 술 먹고 놀러도 가고 하다 보면 그게 친구입니다. 연애를 시작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 사람하고 연애를 해야지. 어떻게 연애를 시작할까. 오늘 사귀자고 말할까?' 하는 초조함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과 자연스럽게 애정을 키워나갈 사람은 없습니다. 우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매력으로 똘똘 뭉친 연예인 조차 호불호가 있는데 평범한 사람인 내가 만인의 애정을 얻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친구가 무조건 많아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함께 있으면 호흡하는 것처럼 편안한 사람 한 두 명이면 이미 멋진 우정을 시작한 것입니다. 사실 친구는 적을수록 더 멋진 우정을 만들기에 유리합니다. 그럴수록 더욱 상대에게 집중할 수 있고 그만큼 더 깊은 사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우정의 개수를 늘리기보다 이미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행복한 관계의 지름길입니다. 오래되어서 당연한 듯 아무렇지 않았던 친구에게도 알고 보면 내가 몰랐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를 찬찬히 바라보는 것으로도 산뜻한 기분 전환이 되며 새로운 매력을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연인, 가족, 친구는 부르는 이름이 조금 다를 뿐 그 본질은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엄마가 최고의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눈빛만 봐도 마음이 통하던 친구가 배우자가 되기도 합니다. 완벽한 부모가 아니어도 존경하고, 백 점짜리 남편이 아니어도 사랑하는 것처럼, 어딘지 조금 모자라는 부분까지 덮어주고 싶고 채워 주고 싶어 지는 것이 사랑입니다. 사랑의 또 다른 얼굴, 우정입니다.
글 그림
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