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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채 Oct 30. 2017

혼자가 더 편해요

 혼자 카페에 가는 걸 좋아합니다. 혼자 영화 보고, 혼자 여행 가고, 혼자 맥주도 먹습니다. 오로지 나의 입맛만 고려하면 되니 참으로 간단하고 만족스럽습니다. 외로운데 왜 혼자 다니냐는 질문을 받을 나이도 일찌감치 지났습니다. 어쩌다 친구들과 모이면 입을 모아 동의합니다. 혼자가 더 편하다는 것에 말입니다.


 올해가 끝나 갑니다. 한 살 더 먹기 전에 어서 소개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괜스레 모임에도 나가고, 거들떠도 안 봤던 동문회도 한 번쯤 가보고 싶어 집니다. 이번 주말에도 자취방에 누워 SNS 타임라인만 응시하는 건 싫기 때문입니다.

 검색창에 '친구 만드는 법'이라고 입력해 본 적도 있습니다. 살사 댄스 동호회에 가입하면 살도 빼고 친구도 많이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살사라니. 통성명만 해도 어색한데 처음 본 사람과 춤을 춘다는 상상만으로도 뒷목이 뻣뻣해집니다.


 때가 되면 모여 삼삼오오 술잔을 기울입니다. 그중엔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왠지 싫은 사람도 있습니다. 대답을 들을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안부를 묻습니다. 저번에도 했던 옛날이야기, 궁금하지도 않은 개인사, 누군 잘됐고 누군 잘 안됐다더라 하는 이야기까지 모두 알코올에 녹아 출렁거립니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집에 가고 싶다.


 왠지 모를 의무감에 참석한 모임이었습니다. 웃고 떠들고 마시는 나와 그런 나를 지켜보는 나. 그 감정의 결이 너무나 달라 마치 무성영화처럼 이질적이고 적막합니다. 아무도 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참석한 모임인데도 벌 받는 자리처럼 어색하고 불편합니다.

 즐거워야 하는데 즐겁지 않습니다. 내가 어딘가 잘못된 게 아닐까, 나는 남과 어울리지 못하도록 타고난 사람인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라면 사람과 어울리기를 원하고 즐거워해야 마땅한데 마치 외계인처럼 사람과 부대끼는 걸 못 견디는 내가 마음에 병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도망치듯 빠져나와 막차가 끊기기 전 서둘러 집으로 후퇴합니다. 도어록이 잠기는 소리를 신호탄으로 시끄럽던 마음에서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갑니다. 오로지 나 혼자만 있는 나의 집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낍니다. 차가운 맥주를 꺼내고 어제 보던 미드를 마저 틉니다. 사람들 속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충족감과 행복을 여기에선 느낄 수 있습니다. 바로 남편을 만나기 전의 제 모습이었습니다.


 혼자가 편하다는 말 앞머리에는 외롭지만 이라는 전제가 자주 붙습니다. 외롭지만 행복하고, 외롭지만 편하다고 말합니다. 마치 외로움이 편안한 독신생활의 필수재인 것처럼 말입니다.

 외롭지만 편하다고 말하는 사람의 심리는 타인의 의견에 나를 맞추고 이해할 수 없는 상대를 이해하려고 머리 뜯으며 고통받느니 외롭더라도 편안한 삶을 선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험을 불사하며 둘이 되느니 편안한 외로움을 선택한 것입니다.


 둘이 된다는 것은 행복도 두 배지만 불만도 두 배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연인 관계에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배우자, 친구, 자녀, 반려동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관계는 얻는 것만큼 잃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관계는 잃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행복을 얻기도 합니다. 반대로 불만과 불행은 두 배 이상 증폭했지만 행복과 자존감은 오히려 낮아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내 맘대로 편하게 사는 삶을 내려놓고 타인이 나의 생각과 생활에 영향을 끼치도록 허락하는 것은 이처럼 큰 각오가 필요합니다. 서로에 대한 존중이 없는 관계에 이 공식이 잘못 적용되면 어느 한쪽이 큰 상처를 입습니다. 물론 가해자도 행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는 더 큰 고통과 절망을 맛봅니다. 상처가 반복될수록 우리는 상처받지 않을 안전한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혼자가 되는 길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 두꺼워지는 외로움에 짓눌려 나는 원하지도 않은 모임에 참석했고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도 경청했습니다.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서라면 내가 즐겁지 않은 방식이라도 꾹 참고 수용하며 동화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서로 모양이 다른 퍼즐처럼 외로움과 소속감은 그 모양이 서로 달랐습니다. 외로움을 소속감으로 메꾸려는 시도는 동그라미 자리에 세모를 억지로 끼워 넣는 꼴이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외로움을 달래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훨씬 더 외로 졌습니다.


 사랑도 소속감도 외로움을 충족시킬 수 없습니다. 외로움은 블랙홀 같아서 메꾸려고 하면 할수록 더 커지면서 모든 것을 속수무책으로 빨아들입니다. 외로워서 모임에 나가고, 외로워서 연애를 하고, 외로워서 여행을 갔습니다. 하지만 모임이 끝나면, 연애가 끝이 나면, 여행이 끝나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면 기체 밑으로 두껍게 깔린 미세 먼지층처럼 전혀 개선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은, 오히려 더 두껍고 짙어진 외로움 속으로 착륙하게 됩니다.


 외로움은 둘이 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관계와 지금 나의 모습이 얼마나 다른지 목격할 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 큰 외로움이 나를 집어삼킵니다. 내가 꿈꾸던 대로 나를 만족시켜주지 않는 타인을 원망하는 것은 스스로를 자책하는 것보다 더 큰 독이 됩니다. 내 삶에서 외로움을 박멸하려 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관계의 연금술은 허구입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한다고 해서 나의 모든 것이 찬란한 황금으로 다시 태어날 순 없습니다. 나를 만지기만 해도 순금으로 변화시켜주는 시금석 같은 타인을 만나고야 말겠다는 희망을 버려야 합니다.

 돌은 스스로 검이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불꽃과 망치, 담금질을 견디며 끝없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 사람은 언젠가 드디어 빛나는 검이 될 수 있습니다. 나를 단련할 대장장이는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내 삶을 망치질할 권리는 오로지 나에게 있습니다. 관계는 주체가 아니라 객체입니다. 관계의 불꽃 속에서 나를 단련하면 거친 원석이었던 나의 진면목을 발견할 눈이 열립니다.


 외로움은 증기 같아서 평소엔 보이지 않지만 적절한 조건이 형성되면 안개처럼 나타나 마음의 눈을 가립니다. 눈 앞을 가리는 외로움이 두터울수록, 밀도 높은 외로움에 숨이 막힐수록 서두르지 말고 담담하게 외로움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합니다. 내가 외롭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외로움은 마치 쓴 약처럼 삼키긴 어렵지만 꼭 필요한,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어 줄 것입니다.



글 그림

무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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