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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준수 Apr 13. 2022

당신의 ○번째 봄

당신의 삶에 남은 봄을 돌아보길 바라며


봄의 단상 Ⅰ. 봄날의 라디오


일하다가 이동 중에 라디오를 들었다. 강릉에서는 주파수 89.1 채널을 주로 듣고 있다. 수도권에서는 KBS cool FM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여기서는 클래식 채널이 나온다. 언젠가 다시 서울에 돌아가겠다는 쓸데없는 아집과 '어차피 서울 왔다 갔다 하는데 뭘'이라는 귀찮음이 발동한 탓인지 항상 자동차의 라디오는 수도권 주파수로 맞춰져 있다. 


시동을 켜고 출발하려던 때, 클래식 FM을 진행하는 한 아나운서가 사연을 읽으며 이런 말을 했다. 


"어쩌면 이번 봄은 우리에게 남은 얼마 되지 않은 봄일지 모릅니다. 해가 갈수록 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줄어드니까요."


내 수명을 알 수 없으니 남은 봄이 얼마나 있는지 알 길이 없지만 확실한 건 오늘 내가 느끼는 이 봄이 내가 가장 젊은 시절, 선명하게 봄꽃을 담을 수 있는 시절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이번 봄이 달리 느껴졌다. 조금 더 특별하고 명료하게, 그리고 찬란하게 말이다. 




봄의 단상Ⅱ. 길가에 앉아서


예전에는 부모님이나 나이 드신 어른들이 예쁘지도 않은 꽃을 사진에 담아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 전, 집 근처 하천 산책길에서도 걷다 말고 길가의 꽃을 보고 핸드폰을 들이미는 어른들을 봤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흘겨본 뒤,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 세웠던 목표가 있었고, 아직 그 목표를 달성하기엔 반환점도 돌지 않은 상태였기에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이내 뛰기 시작했다. 한 30분 정도 뛰고 반환점을 돌아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가던 도중 꽃을 찍던 어르신을 다시 만났다. 사진을 다 찍었는지 정자에 앉아 지인과 함께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근처에 운동기구가 있어서 잠시 숨을 고를 겸 기구에 올라섰다. 두 사람은 이내 이야기를 나눴다.


"꽃이 그리 좋으면 꺾어가지 그래?"

"나만 보는 게 아니잖아. 나야 사진을 찍어서 쳐다보면 되지 뭐. 젊은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시간 되면 보는 게 더 좋지 않겠어?"

"그것도 그렇네."


'가장 소중한 것은 쉽게 여기지 않는다'라는 길거리 철학자의 말처럼 그는 이 계절, 이 순간 마음에 깊이 스며든 꽃향기를 눈을 감고 즐길 뿐이었다. 




봄의 단상Ⅲ.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니까


나이가 들수록 문득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친했던 친구, 부모님의 안부, 눈에 밟히는 조카 녀석들, 결혼을 했다는 옛 연인의 소식 등. 굳이 안 들어도 그만이지만 언제부턴가 꼭 듣고 싶은 것들이 되어버렸다. 항상 곁에 있다고 여기는 것일수록 더 궁금해진다. 눈 깜짝하면 순식간에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길 반복하지만, 그 모습은 아주 조금씩, 변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천천히 바뀌어간다.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보내는 봄'도 삶에서 몇 안 되는 순간일 테니 즐겨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지난주 금요일 퇴근 후에 홀로 이곳의 벚꽃 명소인 한 공원을 찾아갔다. 


역시 사람들이 많았다. 죄다 연인들이었다. 가족단위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저마다 케이크 위에 흩뿌려지는 설탕가루처럼 희고 아름다운 벚꽃잎 아래에서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정처 없이 걷다가 고개를 드니 내 머리 위에도 하얀 벚꽃이 있었다. 한참을 쳐다보며 걷다 보니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기분이 든다. 연인의 사진을 찍어주던 남자 친구의 프레임 속에 들어간 것이었다. 흠칫 놀라며 걸음을 멈추고 촬영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냥 지나갈 수도 있지만, 수백 장 중 최고의 한 컷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 친구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껴서 그랬는지 여자 친구분이 "오빠 잘 나온 거 같아"라고 말하자 안심이 됐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일행과 함께 꽃구경을 왔다. 남자 혼자 덩그러니 공원을 두리번거리는 건 나뿐이었다. 지나가던 가족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스쳐 지나가는 와중에 유치원생 정도로 보이는 아이가 어머니께 묻는 걸 들었다.


"엄마, 저 아저씨는 왜 혼자 왔을까?"

"운동 왔을 수도 있고, 집에 가는 길에 지나갔을 수도 있지"

"저 아저씨도 두리번거리는 던데 우리처럼 꽃구경 왔나 봐"

"꽃구경도 좋지. 우리 ○○이가 꽃을 보는 것처럼 저 아저씨도 봄꽃을 즐길 수 있는 거니까"


그렇다. 봄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한결같이 찾아온다. 추운 계절이 지나 따스함과 함께 찾아온 봄. 봄은 누구에게나 봄이다. 너에게도 나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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