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맥집, 칵테일바, 그리고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하기
저는 알콜을 사랑합니다. 맥주, 소주, 와인, 사케, 위스키, 주종 가리지 않고 모두 사랑해 마지않아요.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술집'에서 일했던 경험은 제가 했던 모든 투잡 중에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일입니다! 다른 일이랑 결정적인 차이가, 알콜 알바(?)는 일하는 거 같지가 않았어요! 술 따르고, 안주 만들고, 주문받고, 서빙하는 과정이 놀이 같다고 할까...?
사실 대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통역, 과외 이런 알바만 해봤어서, 술집에서 일하는 건 상상도 안 해봤었어요. 그러다가 대학원을 다니면서,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학교 근처의 피자&맥주집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학교 졸업생 분이 하시는 가게라 신뢰도 갔고, 맥주에 대해서 알려주시고, 양조장 투어도 간다는 등등 구인공고를 매력적으로 써주셔서, '내가? 술집에서...? 경험도 없는데 가능할까?'라는 고민도 잠시, 홀린 듯이 지원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갔던 면접! 평일 저녁에 가게에 도착했는데요, 사장님은 바 테이블에 앉아계셨고, 제가 도착하자마자 원하는 맥주를 하나 고르게 하셨고, 맥주를 마시면서 편안한 분위기에서 면접을 봤어요. 당시 저는 핸드앤몰트 사의 허니브라운을 골랐던 거 같은데, 맛 설명해보라고 하셔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제가 느낀 그대로 설명을 했습니다. 맥주, 그것도 엄청 맛있는 맥주를 마시면서 면접이라니! 면접을 보고 나니 왜인지 더 하고 싶어 져서 엄청 조급해졌어요.
그리고 킬링 포인트(?)는 집에 가는 길에, 제가 서점에 들러서 <맥주의 모든 것>이었나, 비슷한 이름의 책을 사서, 사장님에게 저 진짜 너무 하고 싶어서 오늘부터 맥주에 대해서 공부할 거라고 구매 인증 문자를 보냈어요...! 간절함이 통했는지, 다음날 바로 합격 연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예!
나중에 사장님 말에 따르면, 원래는 매니저 1명을 채용하는 자리라, 재고 관리도 해야 하고, 엄청 무거운 맥주 케그도 정리해야 하는 일이 있기 때문에, 남자를 뽑을 예정이었지만, 제가 마음에 들어서 조금 무리해서 추가 채용을 했다고 해요! 덕분에 저는 생애 첫 알콜 관련 알바를 할 수 있었어요!
서로 친구이신 사장님 두 분이 부업으로 운영하고 계신 가게라, 사장님들을 가게에 없었고, 크지 않은 매장이라 매니저 1, 알바 1 이렇게 운영되었습니다. 저는 로마니아에서 온 대학원생, Vlad라는 친구랑 한 조로 주 2일 같이 일하게 되었어요! 로마니아 사람은 태어나서 처음 만나서 엄청 반갑기도 했고, 서로 말도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어요! 그리고 더 대박인 건, 직원 복지가 하루 맥주 1잔, 피자 1판이라서 일하는 게 너무너무 즐거웠어요! (Vlad의 주도 아래 한 잔 넘게 마신 건 함정이지만... 사랑해요 사장님...!)
인스타에 가서 추억 여행을 조금 하고 왔어요...!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행복했던 알바. 4시쯤에 가서 혼자 음악 틀고 청소하면서 오픈 준비하는 것도 좋았고, 피자를 만드는 것도 재밌었고, 탭에서 맥주를 거품 없이 따르고, 마지막에 손잡이 반대로 해서 거품을 올리는 손맛도 너무 좋고... 정말 모든 게 행복했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한 손님이 (아마도 취하셔서) '이렇게 아름다우신 알바분이 있는 걸 알았다면, 조금 신경 써서 입고 왔을 텐데...'라고 해주신 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안 좋은 기억보다 좋은 기억을 훨씬 오래오래 선명하게 간직하는 편인 거 같아요! ㅋㅋ 제 행복의 비결....! ;)
여기까지는 그래도 대학원을 다니면서 했던 알바였는데요! 이로부터 3년이 지나, 두 번째 직장을 다니면서, 저는 칵테일 집 아르바이트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첫 직장을 다닐 때는, 직장 자체가 야근도 많고 힘들기도 했고, 앞서 5번 글에서 언급한 재택 뉴스 스크랩 작업을 매일 아침 업무 시간 전에 하고 있어서, 돈도 많이 벌고 있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가 '꿈'을 찾아 두 번째 직장으로 이직했는데, 월급도 전 직장의 65% 밖에 되지 않았고, 뉴스 스크랩 알바도 끊기게 되면서,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쉬는 걸 세상에서 제일 못견디는 저는 자연스럽게 투잡으로 할 일을 찾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당시 제가 파주에서 출퇴근했기 때문에, 집에 도착하면 7시~7시 반 정도였어요. 그래서 알바 사이트에 저녁 8시 이후부터 하는 알바를 찾다 보니, 자연스럽게 맥주집, 칵테일바, 치킨집, 포차 정도의 선택지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과외를 해볼까도 생각했었는데, 앞서 언급한 맥주집에서의 알바 경험이 너무 좋았어서 (과외는 솔직히 가기 전에 가기 싫다고 생각하는 날이 많았지만, 맥주집으로 출근할 때는 출근길이 즐거웠어요!),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어요.
저의 첫 선택은 집 근처의 한 칵테일 바! 위치가 위치인지라 젊은 느낌은 아니었고, 칵테일바는 맞는데, 가게 분위기는 올드한 느낌의 주점...?이었어요. 손님이 정말 없어서 저도 뻘쭘해서, 사장님이랑 컨셉, 인테리어 리뉴얼하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한 거 같아요! 실내에 있던 유리에 흰색 마카로 그림 그릴 수 있는 간판도 제가 다시 그려드리기도 했고, 테이블에 세워두는 미니 배너들도 제가 리뉴얼해드렸습니다.
여기서 일할 때는 기본적으로 손님이 많이 없었던 덕분에, 일한 다음날 출근하는 것도 체력적으로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건, 사장님 어깨너머로 다양한 칵테일 제조를 배울 수 있다는 거였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레시피는 블랙러시안인데, 보드카에 커피 리큐어를 넣고, 원두 두 알 띄우면 끝! 순수하게 '술+술' 조합의 칵테일이고 (칵테일도 도수 높은 걸 좋아합니다 ㅎㅎㅎㅎ 도수 낮은 거 마실 거면 에이드가 낫다는 마인드!), 만들기 쉬워서 한동안 저의 최애 칵테일이었어요. 그리고 손님 잔에 따르고 쉐이커에 조금 남은 칵테일들 호로록 마시는 재미도 빠질 수 없죠!
정말 오래오래 하고 싶은 일이었는데, 어떤 사건으로 사장님과 단둘이 있는 게 부담스러워져서 두 달 정도 하고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게 된 저의 세 번째 술집은, 역시 집 근처의 봉구비어예요! 여기서는 목금토 이렇게 3일 알바를 하게 되었어요. 봉구비어에서의 알바는, 제가 해본 일 중에, 몸이 가장 힘든 일이었어요. 전에 일했던 피맥집은 기본적으로 테이블 수도 많지 않았고, 손님도 많은 편이 아니었고, 제 기본자세(?)는 바에 앉아있는 거였어요. 반면 봉구비어는 역시 매장이 넓지는 않았지만, 테이블 구성이 거의 간격 없이 따닥따닥 붙어 있었고, 가게가 full인 경우도 아주 많을 정도로 장사가 잘 되었고, 메뉴도 종류가 훨씬 많았어요. 가장 많이 시키시는 감자튀김 같은 경우도, 소스를 기본으로 두 가지 고를 수 있어서, 손님이 주문한 소스 기억하는 것도 일이에요. (바빠서 주문 적을 시간이 없습니다 ㅠㅠ)
치우고, 주문받고, 손님 오면 자리 안내하고, 맥주 따르고, 안주 만들고, 설거지하고, 기본적으로 두 명이 일했고, 바쁠 때는 사장님이 오셔서 도와주셨지만, 밤 8시에 출근해서 한바탕 손님과의 전쟁을 치르고, 정신 차리면 11시, 12시가 되곤 했어요. 그리고 12시 반부터는 손님 상황 봐서 조금씩 마감 준비하고, 청소하고, 정산하고, 쓰레기 버리고 다하면 정말 어느새 퇴근 시간 2시! 목요일 같은 경우에만 다음날 출근이라 조금 피곤하긴 했지만 그래도 금요일이니깐 괜찮았어요!
몸은 힘들었지만,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정말 너무 좋았고, 특히 사장님이 너무 재밌고 유쾌하신 분이라 좋았습니다! 덕분에 분위기는 항상 화기애애했고, 가게에 종종 전 알바 분들도 놀러 오고 최고였어요. 그리고 밤 11시 반~12시 사이는 공식적으로 저녁시간인데, 요리 좋아하는 사장님이 종종 스텝밀로 특식을 만들어 주셨어요!
이렇게 봉구비어에서는 5개월 정도 일하고, 결혼 준비로 바빠져서 그만두게 되었어요. 근무 시간에 술을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라서 많이 아쉽긴 했지만, 돌아보면 제가 알바 중에 가장 나이 많아서 (27살 ㅎㅎ) 언니, 누나 노릇하는 것도 뿌듯했고, 야무지고 예의 바르고 열심히 사는 친구들에게 자극도 많이 받고 행복했습니다...! 맥주 따르기 달인이 되기도 했구요! ㅋㅋ (한 번에 3잔씩 들고 서빙하는 건 기본!)
뭐든 처음이 어렵지, 한번 시도하고 나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고 좋은 거 같아요! 첫 '술집' 알바 지원에는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사장님들을 보면서 회사 말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삶을 엿볼 수 있었고, 제가 몸을 쓰는 일, 술과 관련된 일,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꽤 좋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사실 아직도 와인바, 칵테일바, 이런 공간을 오픈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공간에 묶여 있는 게 두려워서 선뜻 용기를 못 내고 있습니다. 다만 취미로만 가지고 있었던 술 관련 일을 조금 더 발전시켜보고 싶어서, 올해부터 블로그에 매주 마신 술을 기록하려고 하고, 이번에 조주기능사 자격증도 따려고 우선 필기 접수 완료했습니다! ㅎㅎ
혹시 블로그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저랑 이웃해요 ><
https://blog.naver.com/euneun-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