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시계 이야기
나의 스마트 와치 역사가 시작된 지점은 15년 4월이었다.
손목시계로서의 기능보다 활동 로그를 기록해준다는 지점에 마음에 들어서 꾸준히 사용하다가.. 19년 10월에 애플 워치 5로 넘어왔다.
스마트 워치라고 해도 뭐 특별나게 하는 건 없고…
활동 로그 기록해주고, 배터리 라이프 길어져서 운동 로그 쭉 보는 맛에 쓰고 그랬는데,
애플 워치 설정을 보니 정각 알림 기능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애플 워치 5의 정각 알리미(차임) 은 두 종류 음색을 선택할 수 있다.
종소리인 거야.. 뭐 ‘차임’이라는 거 자체가 종소리를 말하는 거니 그러려니 하는데,
새소리 옵션이 있네.
별생각 없이 종소리보다는 그래도 새소리가 더 귀엽고 좋지, 하고 이것을 선택했다.
매 시간마다 손목 위에 가볍게 진동 오면서 ‘삐약’ 하는 소리 나는 거 참 귀엽고 좋았다.
왜 하필 새소리였을까? 하고 생각해보니…
어린 시절 친구 집에 놀러 가 봤던 뻐꾸기시계 생각이 났다.
정각마다 고개를 빼꼼 내밀고 새가 나와서 뻐꾹뻐꾹 시간을 알려주는 거 재밌기도 하고,
고급지기도 하고 그랬는데..
손목시계(애플 워치)에다 하고 많은 효과 음중에 새소리 집어넣은 거는, 어쩌면 뻐꾸기시계를 사용해왔던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기 위함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뻐꾸기시계(Cuckoo clock)는 독일 바이에른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1730년대에 프란츠 안톤 케틀러를 통해 개발된 독일제 뻐꾸기시계는 이내 전 세계에 하면 알아주는 관광기념품이 되었고, 유명한 시계 장인들과 함께 형태와 기술을 발전시키고 진화시켜서 시대적 유행에 발맞추어 21세기까지 살아남았다.
애플 워치 새소리 차임.. 뭔가 집중하고 있을 때 시간 알림으로 삐약, 하는 게 귀찮기도 했다만..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싶어서 일부러 끄지 않고 켜놓고 산다.
중세시대부터 시간을 알리는 활동은 무척 중요한 이벤트였다.
중세 유럽 교회 종탑에 정각마다 수도사가 종을 울려 몇 시인지 알려주고 그랬으니까.
아마 고전적인 차임벨의 기원은 거기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시간을 알고자 했던 인간의 욕구는 정각 알림을 통해 ‘생활’이라는 걸 만들어 냈던 것 같다.
정각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을 켜고 보니, 예전에 한창 유행했던 ‘정각 알림이’가 생각났다.
피쳐폰 시기 삼성 전화기에는 ‘정각 알림이’라는 기능이 내장되어 있었다.
정각마다 차임벨을 울려주거나, 시간을 말해주는.. 뭐 그런 기능이었는데,
처음 그 기능이 내장된 휴대전화가 보급되었을 때 사무실에선 매 시간마다 정각 알림이 울렸고, 초창기에는 무척 귀엽고, 쓸모 있는 기능이라고 생각했던 게, 안 그래도 짧은 하루를 더 조급하게 살게 만든다는 부담감 때문이었나, 많은 사람들이 그 기능을 어느 순간부터 끄고 살게 되었다.
열네 살, 우리 반에 걸려 있었던 시계는 멜로디 시계였다. 당시 흔하지 않은 물건이긴 했는데… 정각마다 새소리+멜로디 소리가 나는 시계였고, 반 친구들 모두가 애정 하며 좋아했었다.
수업 중에 정각 타임만 되면 새소리가 울렸고… 교과 담당 선생님들은 수업의 맥을 끊는다고 약간 불편해하셨으나…. 당시 우리 반 애들 중에 시계 멜로디를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우리 반은 ‘정각마다 시계에서 노래 나오는 반’ 이 되었다.
집들이할 때 선물 받은 시계는 mdf판에 초침이 없는 무음 무브먼트 시계였다.
핸드폰 시계가 흔해져서 굳이? 벽시계가 필요할까, 하는 마음에 구매조차 안 하고 있었는데 선물해준 친구 덕에 얼떨결에 벽에 걸어놓게 되었다.
그런데 싸구려 무브먼트를 사용했던 시계인가,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장이 나게 되었고….
생각보다 자주 핸드폰 시계보다 거실 벽시계를 자주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시계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벽시계를 오픈마켓에서 검색하다가 어릴 때 멜로디 시계가 줬던 좋은 추억이 생각나서
정각에 귀여운 멜로디가 흐르는 시계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일차적으로 물망에 올랐던 건 정각마다 새소리가 나는 시계였다.
뻐꾸기시계는 너무 고전적인 물건이고… 매 정시마다 뻐꾸기 우는 횟수로 시간을 알아차리는 건 21세기에 약간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고, 감염병 위기로 집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자연의 새소리를 정각마다 들을 수 있다면 외출이 어려운 상황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하여…
그렇게 열심히 검색해본 결과, 대다수의 멜로디 시계는 어린이 교육용으로 나오는 저렴한 물건들밖에 없었다. 새소리가 귀엽고 아름답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녹음 품질도 그렇고… 멜로디 시계, 하면 어린이용 디지털 손목시계가 많이 나오는 것 같았다.
그래서 외국의 쇼핑몰을 뒤지다 정각마다 다양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시계를 발견했다. (비쌈) 새소리 녹음된 거야 그러려니 하는데, 저렇게까지 비쌀일인가? 했다가.. 한국에서는 그런 멜로디 벽시계가 이렇게도 전무한가 싶어서 애통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에서 검색되는 시계들은 하나같이 무음 무브먼트 시계들이 대부분이었다. 초침 째깍거리는 소리가 잠잘 때 거슬려서 수면에 방해된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그래서… 정각마다 멜로디가 나오는 시계를 열심히 찾다가 모션 클락 이라는 걸 발견했다.
움직이는 시계? 이건 또 뭐래…
일본에는 ‘가라쿠리 벽시계' 라는 상품 카테고리가 아예 따로 있다.
일반 벽시계란 뭐가 다른가? 하여 이것저것을 찾아봤다.
1974년, 노무라 공업사는 홋카이도 오타루 역 앞에 ‘가라쿠리 물시계’라는 것을 설치했다.
카라쿠리 물시계, 이게 뭐냐면, 정각을 알릴 때 다양한 시각+청각 효과를 추가해서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는 물건인데, 당연히 이 시계 보려고 나오는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걸 본 상업공간 관계자들은 사람들이 몰리는 공간에 이런 시계를 설치하면 손님들이 많이 오겠구나, 하는 가능성을 점치게 되었다.
움직이는 물시계? 하면 자연스럽게 자격루가 떠오를 것이다.
자격루에는 저 가라쿠리 물시계처럼 시보 기능이 있었다. 1434년 8월 ㅋ. 뭐 이런식으로 시보 기능이 있는 시계의 탄생은 아시아였고, 발전 시킨거도 아시아긴 함.
하여튼 다시 카라쿠리 시계로 돌아와서...
1984년 세이코 사에서 도쿄 유라쿠쵸에 마리온 시계라고 불리는 카라쿠리 시계를 설치한 뒤로 대형 가라쿠리 시계 붐이 일어 전국의 쇼핑몰이나 랜드마크등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정각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대형 외벽 시계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현재까지도 정각마다 이 움직이는 시계를 보려고 관광객들이 몰린다고 한다.
가라쿠리란 기계나 사물이 어떤 동력에 따라 움직이는 메커니즘을 말하는 것이다.
영어로 오토마톤, 오토마타,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일본에선 다다미방에 차를 갖다 주는 인형을 시작으로 나름 전통예술의 한 자락으로 지금까지 발전시켜오고 있다고 한다.
야외용 가라쿠리 시계는 일본 전역 상업시설 메인 스트리트에 거의 하나씩 다 생겨있다.
글 초입에 언급했던 1974년 오타루에 생겼던 노무라 공업의 가라쿠리 물시계 이후, 웬만한 가라쿠리 시계들은 대다수 일본 독자기술로 만들어서 전국에 뿌리내렸는데, 이건 93년 레이몬드 샌더스란 캐나다 사람이 디자인해서 설치한 시계라고 한다. (2018년 10월을 이후로 고장이 잦아져서 정지중)
그런데 뭐 이거 말고도 오타루에는 야외용 가라쿠리 시계들이 참 많았다. 정각 때마다 오르골 음색이 들리는 시계들이 보이기도 하고, 움직이는 시계들이 굉장히 많은데, 그때는 그저 화려한 시계라고만 생각했던 게 이제야 알게 되니 새삼 신선하게 느껴지고… 그렇다.
1988년, 세이코에서는 유라쿠 조 마리온 클락의 즐거움을 가정으로도 전한다, 는 슬로건 하에 가정용 가라쿠리 시계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한다. 80년 대면 그래도 일본 버블로 나름 잘 나가던 시기였고…. 그럭저럭 팔려나갔던지 1988년부터 2018년까지 30년째 가라쿠리 시계를 만들어 팔고 있다.
요즘 한국 쇼핑몰에서 벽시계 하나 사는데 가격 싼 거면 1만 원대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세이코를 비롯해서 다양한 메이커에서 출시된 가정용 가라쿠리 시계들은 한화로 6~70만 원은 훌쩍 넘어간다.
물론 가라쿠리 시계를 세이코에서만 만드는 건 아니고, 가정용 카라쿠리 시계를 최초로 생산했던 나라 답게다양한 메이커에서, 다양한 디자인 콘셉트로 모션 클락 판매 중에 있다.
사진의 저 모델은 불꽃놀이를 테마로 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내수용 제품은 재생 가능한 멜로디가 다양하고(38곡?) 약 60만 원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는데, 수출용 벌크 제품의 경우, 재생할 수 있는 멜로디는 총 18곡, 태국이랑 일본에서 생산되고 있는 듯하다.
https://www.seiko-clock.co.jp/product-personal/amuse/re601b.html
수록 멜로디 목록 보고도 터졌다 ㅋㅋ
총 멜로디 세트는 3종류로 나누어져 있고,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랑,
피아노 명곡집에 들어갔을법한 노래들을 오르골 편곡(?)으로 멜로디 수록하고 있잖아 ㅋㅋ.
누가 시계를 이렇게 까지 만들어… ㅋㅋㅋ 미쳤구나, 싶기도 했는데
이런 걸 사는 고객이 있고, 그분들의 취향에 맞춰 만든 거 아녀….
시계는 시간만 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계 하나에다 이렇게 공력을 갈아 넣은 게 장인정신 같아서 흥미로웠다.
우주비행사들이 될 후보생들은, 시간의 감각을 차단하고 생활하게 만드는 훈련을 받는다고 한다. 지하 벙커 같은데로 들어가서 시간 감각을 잊어버리고 일정 기간 살아가게 만드는 건데, 이런 환경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생체리듬이 사라져 일상생활의 다양한 부분에서 문제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아마 저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정각 알림에 중요한 의미를 뒀던 거 같다. 막연하게 때 되면 눈 떠지고, 때 되면 잠자고.. 밥때 되면 밥 먹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이런 생활들에 리듬을 만들고, 정해진 시간마다 해야 될 매일의 과업들을 꾸준히 지속하는 게 삶을 유지해 나가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언뜻 ‘필요할 때’ 하면 되지,라고 생각해서 어떤 일을 미루다 보면, 그게 어떤 일이든 간에 부하가 많이 걸려서 몇 배 힘들고, 균형도 깨지게 되는 거 같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균형이 깨지게 놔두는 게 결코 건강에 이롭다는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만큼 시간 감각이 중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