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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쨍쨍 May 25. 2019

(5/60권) 안나 카레니나, 레프 톨스토이

인간의 삶에 대한 핸드북, 살다가 또 들춰보러 올 소설


#1.
삶과 사랑 그리고 사회에 대한 보편적이기도 하고 드라마틱하기도 한 이야기.  
실제 나의 삶에서는 스쳐지나갔을 찰나의 순간들을 세밀한 묘사로 붙잡아내 보여준다.
그래서 삶의 모든 순간순간 사람들과의 대화들, 그 모든대화들을 만들어내는 인간의 대소사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힘이 있는 소설.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해서만 얘기하지 않고 돈이라던지, 사회적 관계라던지 200여년이 지난 지금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통용되는 사회의 요소들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살다가 가끔 이럴 때 이들은 어떻게 생각했었나 떠올리며 다시 이 책을 뒤져봐도 괜찮겠다 싶을 만큼 삶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 소설

끌림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고, 환희의 감정을 맛보고 절망하고 질투하고 의심하고
구애를 하고 청혼을 고민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또 낳고 늙어가는 그 모든 과정들에서 겪는 사람의 행복과 비애가 모두 여기에 있다.


#2.
레빈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사상과 신앙에 대해 고민을 한다. 사랑에 빠지고 절망하고 환희를 맛보기도 한다. 직업적으로는 노동에 대한 몰입의 육체적 정신적 즐거움과 자본주의의 초기 단계 지주로써의 흥미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브론스키는 자신에게 충실하다. 본능적으로 격렬한 구애를 하고 가질 수 없는 존재였던 한 여자를 결국 쟁취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열정은 의무와 사회적 시선에 짓눌려 사그라든다. 하지만 그것이 사그라들었다는 것이 그가 끝까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고도 말할 수 없다. 변하는 사랑에 대한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누구보다 매력적인 사람으로 묘사되었던 안나.
안나는 이전까지 자신이 믿어왔던 사랑은 거짓이었다는 걸 알게해줄 만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용인 되지 못하는 관계는 그녀에게 끊임없는 정신적 압박을 가한다. 내면적으로 강하고 아름다웠던 안나는 조용히 무너져간다. 엄마로써 아이를 버린 자신에 대한 괴로움 때문에, 사랑만으로 이루어진 관계 위에 사랑에 대한 의심 때문에, 정신적으로 불안해지고 붕괴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누구나 살다가 그런 불안상태에 빠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되는 복잡한 여자.

돌리는 현실적인 결혼생활에 대한 비애를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 낳고 낳고 기르고 교육하고 그 곳에서 자신의 존재의미와 행복을 찾고 한편,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사람. 남편은 바람을 피고 돈을 낭비하지만 그녀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돈을 절약하고 옷을 기워입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류 사회 여인으로써 품위를 유지하려하는 정 많고 고민많고 인간적인 캐릭터
 
키티. 어찌보면 사실상 내가 가장 몰입하기 쉬운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되돌아보니 그녀가 가장 일반적이고 평면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다. 사교계 생활을 하고 청혼을 기다리기도 하고 거절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남자의 청혼에 대해 대처하는 법에 대해서만 고민하도록 되어있기에 자신의 마음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고민해볼 기회가 없는 수동적이지만 아직까지 일반적인 미혼여성의 고민을 보여준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마치 성모마리아처럼 완벽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조금 아쉽다.

#3.
이상하게도 3권의 긴긴 소설을 읽으면서 빨려들어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하고 지루해서 어거지로 책장을 붙잡고 있기도 하던 와중에, 술기운 때문인지 새벽이란 시간 때문인지 미칠듯이 감정적으로 몰입했던
안나와 세료쥐아의 재회장면은 나에게 이상하고 소름돋는 여운을 남기고 갔다.

#4.
그건 마치 뭐랄까, 나에게 아이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으면서도
어머니라는 존재가 자신의 아이에게 느낄 수 있는 한없는 애정, 사랑, 가슴 아픈 것들을 내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진심으로 가슴 아파하는 와중에 한편으로는 선뜩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경험해보지 않은 모성애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그다지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은 모성애라는 것을 나는 도대체 어떻게 알고 눈물을 그칠 수 없었던 것일까? 안나와 세료쥐아의 만남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적 동요는 ‘학습된 모성애’로 부터 기인한 만들어진 공감이었을까?
막 깨어나려 하는 술 기운의 불쾌한 느낌 덕분일까 이 소설 전체에서 공감하고 감정이입해왔다고 생각한 다른 인물들의 많은 장면을 단숨에 뛰어넘어, 이해할 수 없게도 공감해보지도 경험해보지도 못한 장면에 이렇게도 슬픈 감정을 느낀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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