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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카 Jul 27. 2021

4. 행인 두 명이 오영광의 교회를 방문하다

앙드레 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4. 행인 두 명이 오영광의 교회를 방문하다.



세시 정각에 소극장에 도착한 오영광은 들고 있던 갈색 서류가방을 열어 두껍게 코팅된 A4 용지 한 장을 꺼냈다. 그에게는 갈색과 검은색 두 개의 서류가방이 있는데 검정 구두를 신는 날은 검정 서류가방을, 갈색 구두를 신는 날은 갈색 서류가방을 들었다. 그는 이 규칙에서 벗어나는 일이 결코 없었다. 한 번은 검정 구두를 신은 날, 심부름했던 용민 형제가 실수로 갈색 가방을 가져다주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스타일을 구긴 적이 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그것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언짢았다. 오영광은 표 나지 않게 멋 부릴 줄 아는 진정한 멋쟁이였던 것이다. 영광교회의 멋쟁이 목사는 코팅된 A4용지를 소극장 문 앞에 꾹 눌러 붙였다.


                            

빠리 영광교회 주일 예배

오후 3시부터 5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glise évangelique de la Gloire 

De 15H à 17H

Vous êsts bien venus!



그에게는 이 표지판을 붙여 놓음으로써 지나가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들어 올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아쉽게도 지금까지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길가던 행인이 교회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딱 두 번이었다.


한 번은 머리가 끈적끈적하고 누더기 옷에서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걸인이 뚜벅뚜벅 걸어 들어와 설교를 하던 오영광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배가 고프니 빵을 살 돈을 달라고 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이 걸인은 도저히 냄새 때문에 교회에 머물게 할 수가 없었다. 오영광은 그를 돌려보낼 목적으로 얼른 주머니에서 동전 몇 개를 꺼내어 주었고 걸인은 오영광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있을 거라고 덕담을 한 후 예배당을 나갔다. 그가 나간 후에도 꼬릿 꼬릿 한 냄새가 한 동안 예배당에 진동했다.


다른 한 번은 차림새가 말끔한 노부인이었다. 그녀가 예배당 문을 살포시 열고 얼굴을 빼꼼히 내밀어 예배 풍경을 주시했을 때 오영 광은 신도가 한 명 더 는다는 기쁨에 하던 설교를 멈추고


"환영합니다. 자매님. 어서 들어와 앉으시지요."


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그러자 한 손에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에는 비록 낡았지만 전혀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손가방을 든 노부인이 예배당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빈자리를 찾아 앉을 생각은 않고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노부인이 착석하기를 기다리던 오영광은 빈자리를 향해 손짓을 하며 다시 재촉했다. 사실 거의 모든 좌석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팔을 어느 방향으로 뻗던 빈자리로 안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환영합니다. 자매님,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 함께 예배를 드립시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노부인이 세상에 종말이 오고 있다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오영광과 그의 신도들은 이 돌발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노부인은 자신이 만들어 낸 종말론을 황설 수설 떠들다가 갑자지 깔깔깔 웃더니 다시 흐느껴 울었다.

이 갑작스러운 반응에 오영광은 뭘 해야 할지 몰라 말뚝처럼 서있기만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저 망령난 할멈을 어떻게 쫓아내야 할지 막 고민하기 시작했을 때 노부인은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코를 팽 풀고는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교인들을 향해 곡선 그리듯 우아하게 팔을 뻗으며


"의 은혜가 항상 여러분과 함께 하시길!"


하고 축사를 해 준 후 천천히 돌아 나갔다.


이 두 사건 이후 오영광은 소극장 문 앞에 표지판을 붙일 때마다 제발 걸인이나 광인이 아닌 멀쩡한 사람이 예배당 안으로 들어와 주길 간절히 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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