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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카 Aug 15. 2021

5. 너무 바쁜 김석풍 작가

앙드레 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5. 너무 바쁜 김석풍 작가



지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김석풍 집사는 부지런히 예배당을 향해 걸었다. 입구에 다다르니 문에 A4 용지를 붙이고 있는 오목사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이고, 목사님 오셨습니까?"


그가 다정하고 공손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를 향해 뒤돌아 보는 오목사의 얼굴에 반가운 기색이 돌았다. 마치 전장에서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김석풍은 요즘 세상에 찾아보기 힘들 만큼 공손하며 성실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영광교회 교인으로 등록했을 때 오목사는 이것이야말로 주께서 영광교회를 사랑하시는 증거라고 선포했다. 김석풍은 오영광보다 나이가 한참 많았지만 늘 공손하게 목사님을 대했다. 

무엇보다도 그가 꼬박꼬박 헌납하는 십일조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교회 살림에 무척 요긴하게 쓰였다. 


"아! 김집사님 오셨습니까?"


김석풍은 오목사의 표정에서 자신이 이 작은 개척교회에 꼭 필요한 존재이며 큰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이제 막 시작한 교회의 주춧돌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많은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다. 전에 다니던 교회를 떠나 영광교회에 출석하면서부터 그 자신을 위해 쓸 시간이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집단에서 꼭 필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 그리고 그 집단의 핵심 인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는다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김석풍은 자신의 시간을 교회에 빼앗기는 것에 전혀 불만이 없었으며 입으로는 바쁘다고 불평하면서도 늘 기쁜 마음으로 봉사했다. 

사실 김석풍은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어떤 이는 그가 무료함을 달래려고 교회 일에 매달린다고 억측을 하기도 했는데 그건 정말 터무니없는 소리였다. 그는 무척 바쁜 사람이었고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직업이 있는 사람보다 두 배는 더 바쁜 삶을 살았다. 


그는 매일 아침 ‘김석풍의 아침 명상’이라는 수필을 썼는데 이 작품은 어느 날 빛을 보게 되면 세계적인 고전으로 자리 잡을 명작이었다. 지난 몇 년간 영감이 떠오르는 아침이면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앞에 놓고 삶과 세상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하얀 종이 위로 꼬박꼬박 써내려 갔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면 자신의 철학을 이해할 역량이 되는 유일한 사람이자 그가 선생님으로 모시는 지인을 만나 다시 삶과 세상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선생님을 만나지 않는 날은 도서관에서 신문을 읽거나 글을 쓴 후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지어먹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아침에 만났던 선생님을 또 만나 다시 삶과 세상에 대한 고찰을 나누었다. 선생님이 다른 일로 바쁠 때는 혼자 동네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 한 잔과 물 한 컵을 주문하고 오후 내내 글을 쓰거나 신문을 읽었다. 

그가 가는 동네 카페는 손님이 별로 많지 않아서 오래도록 앉아 있어도 주인이 눈치 주지 않아 좋았다. 물론 김석풍이 앞으로 유명해질 사상가라는 것을 주인이 미리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간판 옆에 ‘작가 김석풍이 자주 오던 카페’라는 문구를 달면 관광객들이 벌 때처럼 몰려올 것이고 주인장의 집안은 대대손손 장사가 보장된 카페를 운영하며 쉽게 돈을 벌게 되는 것이다. 김석풍은 배불뚝이 카페 주인이 그래도 사람 보는 눈은 있다고 생각했다. 


저녁이 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후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함께 놀아 주었다. 아내는 야근을 자주 해서 아이들을 씻기고 저녁을 지어 먹이는 것도 그의 부담 중 하나였다. 

이렇게 바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몸이 몹시 피곤했다. 이제 50줄에 들어선 나이라 운동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선생님 댁, 도서관, 동네 카페, 아이들 학교로 이어지는 동선을 바쁘게 그리다 보면 체력 관리할 시간은커녕 '김석풍의 아침 명상'을 탈고할 시간조차 부족했다. 

그런 와중에 금쪽같은 시간을 할애하여 교회에 봉사하고 있건만 속사정 모르는 사람들이 그를 백수 취급하는 것이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김석풍에게는 큰 상처였다. 사실 그것이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나온 이유기도 했다. 이 작은 개척 교회에서는 아무도 그를 노는 사람이라고 수군거리지 않아 좋았다. 게다가 오영광 목사는 그를 가리켜 ‘하나님이 보낸 축복’이라고 하며 추켜세웠고 교인들은 모두 ‘아멘’을 외치며 목사의 말에 동의했다. 김석풍은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다. 


"김집사님 혼자 오셨네요. 허집사님은 오늘도 일하시나 보지요?" 오영광이 김집사가 먼저 들어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며 물었다. 


"아이고, 집사람은 일이 많아서요. 오늘도 주말특근입니다." 김석풍이 대답했다. 


그는 어떤 말을 시작하기 전에 앞에 ‘아이고’라는 감탄사로 운을 떼는 습관이 있었다. 그는 약간의 경상도 사투리를 썼는데 이 ‘아이고’는 그의 부드러운 억양과 매우 잘 어우러지며 자연스럽고 편하게 들렸다. 

오영광 역시 약간의 사투리를 썼다. 그의 말을 듣고 있으면 분명 경상도 사람인 것은 알겠는데 도무지 어느 도시 출신인지 감을 잡지 못했다. 어릴 적 부모님이 이 도시 저 도시로 이사를 많이 다닌 까닭에 어느 한 곳으로 특정하기 어려운 억양을 가지게 되었단다. 같은 경상도라도 오영광의 사투리는 김석풍과는 많이 달라서 매우 날카롭고 고저가 심했다. 


오영광과 김집사는 어둡고 눅눅한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 조명을 켰다. 다행히 오늘은 불빛에 놀란 바퀴벌레들이 빈 틈새로 재빠르게 숨어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김석풍은 이 칙칙한 장소에 그나마 쥐가 들끓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부지런히 의자를 배열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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