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카 Aug 29. 2021

6. 앙드레 빤딸레옹이라는 사람

앙드레씨와 신비한 언어를 하는 사람들

6. 앙드레 빤딸레옹이라는 사람


같은 시간, 앙드레 빤딸레옹은 13구의 한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으로 쌀국수 한 그릇을 먹은 뒤 여유롭게 남은 국물을 마시고 있었다.

식당에는 앙드레처럼 늦은 점심을 먹던 손님 한 명이 더 있었는데, 그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국수를 다 건저 먹자마자 젓가락을 탁 내려놓고 바로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이 손님이 나가자마자 식당 주인과 그의 가족들은 아직 마지막 손님인 앙드레가 남아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식당 한편에 그들의 늦은 점심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가족들은 고된 노동 뒤 찾아온 휴식의 달콤함을 누리며 그들 나라의 언어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열심히 일한 뒤의 휴식은 구경하는 사람 눈에도 달콤해 보였다. 앙드레는 그들이 누리는 행복이 부러웠다. 그러나 그것은 오전 내내 뜨거운 국수를 삶고, 야채를 썰고, 쟁반을 나르고, 그릇을 씻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 후에나 맛볼 수 있는 노동의 대가였다. 하지만 앙드레 빤딸레옹은 땀 흘려 일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그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고정된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다. 20대에 간간히 파트타임 일을 하기도 했는데 그리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지는 않다.

대학생 때 여름방학 바캉스 클럽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서빙을 한 적도 있는데 느리다고 손님들이 불평하는 바람에 오래 일하지 못했다.

대형 햄버거 체인에서 햄버거를 구운 적도 있는데 그가 만든 햄버거에서 반찬고가 두 번 머리카락이 두 번 나온 이후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일도 했다. 강아지 몇 마리 데리고 공원 한 번 돌고 오면 돈을 준다니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 있을까!' 하고 일감을 덥석 받았는데 막상 해 보니 그것도 쉽지 않았다. 여러 마리의 개를 동시에 돌보는 것은 생각처럼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성격 난폭한 개들은 그를 보기만 해도 마구 짖어댔고 개들끼리 서로 싸우는 일도 많아서 말리다가 손을 물린 적도 있다.

영악한 개들은 의도적으로 그를 중심으로 빙빙 돌았다. 그렇게 개 끈에 다리가 묶여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결국 넘어지는 일도 허다했다. 무엇보다 집에만 있던 개들은 밖으로 나오는 순간 참았던 볼일을 보아 대기 시작했는데 이것을 일일이 비닐봉지에 주워 담아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도 그의 임무였다. 손에 비닐을 끼고 이제 막 길바닥에 떨어져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개똥을 집었을 때의 그 따끈함과 미끈함, 그리고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퀴퀴한 냄새가 매우 불쾌했다.


그나마 대형 슈퍼마켓 식품 코너에서 일했을 때가 가장 좋았다. 그 일은 제법 오래 했다. 진열대에 빈 상자가 생기면 새로 과일과 야채를 가져와 채우고 리스트를 정리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사람보다 과일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서 좋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커다란 오렌지 바구니를 나르고 있을 때 쪼글쪼글한 입술에 오렌지색 립스틱을 짙게 바른 할머니가 쓸데없는 질문을 해 왔다. 할머니들은 늘 심심하기 때문에 아무에게나 말을 잘 건다.  


"어머나, 오렌지가 탐스럽기도 해라. 그건 하나에 얼마씩이요?"


그가 가격표는 진열대에 붙어있으며 갯 수가 아닌 킬로그램으로 계산한다고 답을 하려고 할머니를 향해 몸을 트는 순간 제일 꼭대기에 있던 오렌지 몇 개가 또르르 굴러 땅에 떨어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또 다른 할머니 한 명이 지나가다가 그것을 밟고 미끄러진 것이다.

넘어진 할머니는 바닥에 누워 팔을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질렀고 그가 할머니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급하게 오렌지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으려고 했을 때 불행히도 바구니가 기울어지며 오렌지들이 넘어진 할머니의 얼굴 위로 우르르 쏟아져 내렸다. 할머니는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전투기 폭격이라도 받는 것처럼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 사단의 원인이 된 오렌지색 립스틱의 할머니 또한 마치 눈앞에서 2차 대전 당시의 폭격이라도 목격하듯 비명을 질렀는데 그 소리가 넘어진 할머니의 비명보다 훨씬 더 컸다.

할머니들의 비명을 듣고 급하게 달려오던 몇몇 사람이 바닥에 굴러다니는 오렌지에 발이 미끄러져 넘어졌고 그중 한 명은 이때 허리디스크가 생겼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넘어진 할머니는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나이가 많아 혹시 몸 어느 곳의 실핏줄이라도 터진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며 앰뷸런스를 불러달라고 했다.

오렌지색 립스틱의 할머니도 너무 놀라서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뛰고 있다며 함께 앰뷸런스를 타겠다고 우겼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에 심한 충격을 준 이 폭격 사건 때문에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마치 앙드레 빤딸레옹이 선량한 시민에게 무자비한 폭격을 가한 적군 전투기 조종사라도 되는  그를 노려보며 고함을 쳐 댔다.


딱히 할 일 없는 무료한 노년의 일상에서 무언가 트집 잡을 것을 찾아낸 할머니는 갑자기 몸에 활기가 돌며 회춘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녀는 신이 나서 매우 열정적으로 앙드레를 나무라기 시작했다.

만일 이 사건으로 그녀의 심장이 멎기라도 했다면 그것은 모두 앙드레의 책임이며 그녀 가족에게 상실의 슬픔을 제공할 뻔 했던 것도 앙드레의 책임이고 그녀가 앞으로 태어날 손주를 위해 지금 수놓고 있는 배냇 저고리를 영영 완성하지 못할 뻔 했던 것도 앙드레의 책임이었다. 그 외에도 앙드레의 책임이 될 뻔 했던 일들이 아주 많았다. 이 할멈이 얼마나 화를 내며 사람들 앞에서 그를 망신 주었던지 오히려 넘어졌던 할머니가 이제 그만 좀 하라며 말릴 정도였다.


것이 앙드레의 마지막 직업이었다. 그는 수도 없이 매장 매니저의 사무실로 불려 갔으며 여러 장의 사유서를 써야 했다. 몸 어느 곳의 실핏줄이 터졌을지도 모르는 할머니와 심장마비에 걸릴 번한 할머니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은 분명 앙드레였다. 그는 더 이상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도 앙드레는 일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편하게 살 수 있는 나라에 살고 있다. 이 ‘그럭저럭 편하게’의 기준은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앙드레처럼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사는데 불편함이 전혀 없다. 그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저소득자 보조금만으로 충분히 생활이 가능했다. 처음에는 다른 경제활동 없이 보조금만으로 사는 것이 조금 빠듯했으나 살면서 요령이 생기다 보니 그것만으로도 ‘그럭저럭 편하게’ 살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이다.


그는 여러 번의 시도 끝에 HLM (국가에서 저소득자에게 배당해 주는 아파트)의 원룸 하나를 배당받을 수 있었다. 일단 주거지 확보라는 큰 짐을 덜게 되니 한 숨 돌릴 수 있었다. 옷과 신발은 구호 센터에서 받아 입었다. 정말이지 멀쩡한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옷가지 외에도 가방, 허리띠, 수건, 이불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품목을 구할 수 있었는데 종종 상태가 지극히 양호한 명품도 섞여 있었다. 앙드레는 이렇게 멀쩡한 물건을 수두룩하게 내다 버리는 요즘 사람들의 정신머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식사는 학생식당에서 해결했다. 그는 장보고 요리하고 설거지 하는 일에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싫었다. 학생식당에 가면 아주 적은 비용으로 영양소 5군이 골고루 갖추어진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렇다. 그의 신분은 학생이다. 10년이 넘도록 박사과정을 밝고 있는 중이다. 한 학교에서 너무 오래 있을 수 없어서 중간에 학교를 바꿔야 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공부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지금 하고 있는 학문에 심취해 있었으며 완벽한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혼혈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은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논문 자료 수집을 위해 13구까지 취재를 나왔다. 이왕 차이나타운에 왔으니 점심은 쌀국수로 해결하기로 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5. 너무 바쁜 김석풍 작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