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을 위한 설계? 계획된 쇼룸?
에이스 호텔의 첫인상은 '호텔 같지 않은 호텔'이었고, 그곳 사람들의 자유로움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객실은 어떨까? 이번 2편에서는 에이스호텔에서만 겪었던 경험에 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하려고 한다.
꽤 많은 LP판이 있었다. 올드팝 위주였고, 영국가수들이려나 기대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방의 선택은 여행의 즐거움을 한껏 올리기 위한 비치보이스였다.
(후에 다른 유형의 객실에 머물렀던 이한테 물어보니, 모든 객실에 레코드 플레이어가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사실 레코드 플레이어를 가동하기 위해 20분은 쩔쩔맸다. 생소한 기계였고, 요새 기계와 같이 버튼만 누른다고 움직이는 기계가 아니었다. 바늘을 올리기는 올려야 하는데 영화에서 본 것처럼 손으로 올리는 건 아니고, 잘못하면 망가뜨려 물어줘야 될 것 같고 내가 듣고 싶은 트랙은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겠고 여러 번 LP판을 끼웠다가 뒤집어 끼웠다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럼에도 좋았다. 생소함이, 빈티지스러움이, 내가 해볼 수 있다는 경험이.
요새는 많은 호텔에서 레코드 플레이어를 찾아볼 수 있다. 아래 2017년 뉴욕타임스 기사에서도 객실에 레코드 플레이어가 있는 호텔들을 미국 위주로 살펴볼 수 있다.
https://www.nytimes.com/2017/11/21/travel/hotels-record-players-vinyl.html
에이스 호텔을 다녀왔다고 친구한테 말하니, "거기 냉장고에 엄청 뭐가 많다며!"가 첫마디였다.
"응. 그리고 똑같이 비싸."라고 대답해줬고, 친구는 곧 "공짜가 아니었어?!"라는 놀랐다.
에이스 호텔한테 기대하는 바가 얼마나 특별한 호텔인지 새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호텔은 호텔. 그것도 다른 호텔보다 아주 가격표가 많은 호텔이었다.
화장실에서도 방심은 금물이다. 어메니티겠지라고 마음대로 뜯었다가는 집으로 날아온 카드 명세서를 보고 놀랄 수 있다. 에이스호텔이 공수해놓은 욕실상품들이 한 바구니에 모여있다.
물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샴푸, 컨디셔너, 바디워시, 비누도 있다. 하지만 이렇게 객실을 쇼룸으로 활용하는 일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호텔에 처음 들어가면 짐 풀기 전에 이곳저곳을 둘러보곤 한다. 방 순회를 하며 여기저기 있는 가격표들을 보고 나니 평범해 보였던 방이 하나의 쇼룸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한번 사용해보고 마음에 들면 살 수 있어!"라는 의도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객실 전체가 광고판이고 판매대다. 견물생심이다. 보고 만지고 체험할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쇼룸이 없다. 실제로 팔콘 법랑 컵은 우리 일행들 사이에 인기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에이스호텔이 지역의 브랜드, 아티스트들과 협업한다는 말은 많이 들어봤지만, 그 협업을 이처럼 노골적으로 상품 판매로서 머무는 공간 안에서 드러낼 줄은 몰랐다. 신선하고 재미있기도 했지만 순간순간 당혹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
다른 호텔에는 없으나 에이스 호텔에서는 경험할 수 있는 것. 그렇게까지만 말할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그 물품들은 투숙객의 직접적인 어메니티 향상보다는 판매를 위한 것이었고, (에이스호텔이 앞으로도 고민할 지점은 아닌 듯했지만) 일행들의 의견을 모아보니 간혹 이러한 판매행위에 투숙객은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 홈페이지는 "ACE HOTEL SHOP"으로 에이스호텔에 비치되어있는 웬만한 물품들을 다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다
처음에 침대에 앉았는데 침대 협탁이 너무 좁아 핸드폰을 바닥에 놔야 하나 고민했다.
웬걸 침대에 리모컨 주머니가 있어 거기에 쏙 넣어 보관할 수 있었다.
결국 좁은 협탁을 비집고 휴대폰을 놓거나 침대 위에 놓는 바람에 저 주머니를 직접 사용은 안 했지만, 그래도 아예 휴대폰 놓을 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위안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 가죽함은 뭐에 쓰는 물건이고 했다. 이건 정말 투숙객의 사소한 경험을 놓치지 않은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체인지 트레이(change tray)로, 거스름돈 등을 보관하는 상자다(물론 에이스호텔 샵에서 구매가능하다). 여행하고 호텔로 돌아오면 맨 먼저 주머니에 들어있던 현지 동전들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게 된다. 이것저것 구매도 많이 하고, 현지 화폐에 익숙하지 않으니 동전들을 쉽게 사용은 못 하고 계속 거스름돈으로 받기만 해서 동전 주머니가 금세 무거워져 얼른 덜어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정리하지 않고 잠들기 일쑤다. 어질러지는 동전들을 지정된 곳에 보관할 수 있어 편했다.
개인적으로 동전보관함과 연결되어있다고 생각하는데 바로 '메이드 팁'봉투다. 아주 정확하게 지정되어있어 굳이 베개 위에 팁을 올리지 않아도 저 봉투 안에 팁을 넣어 테이블 위건 협탁 위건 어디든 놓으면 된다.
호텔에 머문다면 늘 하는 행위들ㅡ동전 꺼내놓기, 메이드 팁 놓기ㅡ인데 지금까지 별다른 방법의 전환 없이 암묵적인 룰에 따라왔구나 싶었다. 에이스호텔에서 새로운 도구, 방법을 보고 나서야 그것의 문제의식을 역으로 가질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에이스호텔 노트와 에이스호텔 연필이 있었는데, 그 바로 위에는 연필 깎기가 벽에 붙박이로 있다. 이런 식으로 필요한 것을 필요한 곳에 있는 게 에이스호텔만의 묘라고 느꼈다.
자유로워보이나 당연하게도 모든 게 계획된 객실. 계획이 너무 지나치면 그 안의 사람을 불편하게도, 새로운 편리함을 누릴 수도 있다. 적당함은 늘 어렵고 어느 누구 하나한테만 맞출 수도 없다. 적어도 나한테는 나쁘지 않았던 경험이었다. 이어지는 3편에서는 쇼디치 지역과 어우러지는 에이스호텔과 20대에서 60대까지의 에이스호텔 감상기를 풀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