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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 석 Feb 08. 2024

엄마는 내 옷을 30여년간 장롱 속에 보관했다.

부적

예전에 아이가 태어나면 입혔던 옷을 장롱 밑 깊숙한 곳에 보관하던 풍습이 있었다.

그 아이가 겪을 시련들을 막아주는 부적이랄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 진짜 있었다.

내 엉뚱한 요청에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작은 아기 옷과 함께 방으로 들어오는 주름살의 60대 여인.

색이 바랬긴 하지만 원형 그대로 였고, 아기 옷이라 그런지 섬유가 부드러웠다.


30여년 전. 30여년이나 지난 그때의 내가 입었던 옷이라니.

그 시절 세종대왕 곤룡포를 입고 마룻바닥을 기어다니던 갓난 아기 시절의 나.

쇼파에서 기다가 떨어졌는데 울지도 않고 손가락만 쪽쪽 빨던 갓난 아기 시절의 나.

사진 속,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그 갓난 아기 시절의 내가 정말 존재했다니.

그렇게 옷을 들고 깔깔 거리다가 사진을 한 방 남겼다.


삶이란 뭘까.


살은 좀 찌긴 했지만 지금까지 사고 안 치고 잘 살아와서 다행인건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제멋대로 하고 싶은거 하고 살아와서 행복한 걸까.

어쩌면 30여년간 어둡고 답답한 장롱 밑바닥에서 묵묵히 시간을 버텨준

저 작은 옷 한 벌이 내가 겪었어야 할 악행들을 막아준 걸까.


얼마나 흘렀을까.


저 옷이 장롱으로 들어간지 30여년이 지난 설날이 다가왔다.

30여년 전 저 옷을 입었던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글로 쓸 만큼 변했지만

명절이라 분주한 주름살의 여인은 30여년간 부엌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그래서 설겆이를 더 많이 하기로, 더 한결 같아지기로 결심한다.


나 또한 누군가의 부적이 되어주기로.

나 또한 누군가를 위해 묵묵히 긴 시간을 버텨주기로.


30년간 장롱 바닥을 지킨 저 작은 옷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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