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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은하수 Sep 19. 2022

우주의 개미구멍#8

괴물의 아이는 인간이 되길 꿈꾼다.

 하필 코로나를 걸려도 연휴 전날 걸렸다. 덕분에 연휴 내내 혼자 집에 있었고 그 다음 주도 재택근무로 돌려 집에만 있었다. 8일부터 18일까지 10일 동안 아무것도 만나지 않고 먹고 영화보고 자기만 했다. 연휴동안 준비하고 있던 글이 많았는데 끝없이 굴러 떨어지듯 사회적 존재로서 모든 행위를 포기하고 먹고 자고 싸는 무인도 생활을 했다. 아, 이것이 관성의 법칙이란 거구나.


 그러던 중 하루는 어릴 때 기억이 꿈에 나왔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아파트 1층이었는데 베란다로 헛기침이 들리면 그 소리는 항상 아빠였다. 그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거실 불을 끄고 방에 들어가서 자는 척을 했다. 그러면 아빠는 굳이 나와 동생을 깨워 인사를 하셨다. 그런데 아빠는 항상 술과 담배 냄새에 찌들어 사시는 분이었다. 취할 수밖에 없는 아빠의 삶을 이해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는 아빠를 더럽다고 생각했다. 쓸쓸한 마음으로 자식을 깨웠겠지만 둘 사이에 좋은 대화가 이어질리 없었고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 자는 척 할 정도로 우리 부자 사이는 좋지 않았다. 

 아빠가 꿈에 나오다니. 처음이었다. 16년 째 연을 끊고 살았고 한 번도 꿈에 나온 적은 없는 분이었다. 그런 아빠를 꿈에서 만나고 잠에서 깨자마자 비로소 내가 아빠에게 느끼는 딱 하나의 단어가 정제되었다. 그것은 ‘혐오’였다. 


 “그래도 부모인데.....”


 도리 때문에 십 수 년 동안 아빠를 피했다. 아빠를 비난하지도 옹호하지도 않고 그냥 내 기억에서 싹 도려내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유전자의 반을 잘라내고 싶을 정도였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 없는 아들로 살았다. 친척들 조사 때마다 아빠를 만나면 무덤덤했었는데 그건 정말로 아빠를 만나도 괜찮은 게 아니라 그의 유전자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나도 아빠처럼 오염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대한 방어기제였다.  


 초등학교 2학년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아빠는 엄마와 이혼을 하고 또 술을 드신 후에 어떻게 살아야 되냐며 하염없이 우셨다. 가장이 무너진다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그때 알게 되었다. 그 기억이 너무 커서 나는 한 번도 아빠를 비난한 적이 없다. 엄마가 하자고 한 이혼이었고 아빠는 그 이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부부사이에 많은 이유가 있었겠지만 공식적으로 두 분의 이혼은 “성격차이”였다. 

 21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목표 없이 사는 아빠가 한심스러웠다고 했다. 아빠는 미술을 전공했는데 29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직업도 없었다. 그러다 엄마를 만나 덜컥 애가 생겼고 급하게 결혼하면서 해남에서 밭 일구는 본가에서 대부분의 지원을 받았다. 집은 처가에서 해주었다. 그러다 엄마가 도저히 살 수 없다며 나와 동생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 그래, 우리 남매를 버린 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였다. 우리 가정이 파탄 난 이유는 엄마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외려 그런 아빠가 참 한심했다. 자기 여자를 지키지도 못할 만큼 무능력한 남자를 보며 머리로는 동정했지만 그의 몸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술과 담배 냄새는 너무나 직관적으로 불쾌감을 주었다. 아빠는 늘 취해 있었고 가끔 말 안 듣는다고 혼내면 쇠파이프로 엉덩이를 때렸다. 


 “저러니까 엄마가 버렸지.”


 2차 성징이 시작되면서 외모가 점점 아빠를 닮아가며 망가졌다. 잘 생기고 예쁜 외가에 비해 친가는 무쌍꺼풀에 코도 낮았다. 외탁이었던 얼굴은 점점 친탁이 되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아빠랑 똑 닮았다는 소리를 했다. 몇 번을 들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빠를 닮은 것이 내 잘못이 아닌데 왜 사람들은 아빠를 닮았다고 나를 비난하는 걸까. 코를 높여보겠다며 주먹으로 세게 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유전자라는 게 주홍글씨처럼 내가 좋던 싫던 박혀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건 도저히 노력해서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오이디푸스는 결코 라이오스 왕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같은 핏줄이라도 다른 운명을 살고 싶었다. 


 “아들, 아빠처럼 어영부영 살지 말고 늘 뭐라도 찾아서 해.”


 엄마는 늘 ‘아빠처럼’ 살지 말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아빠처럼 사는 것이 뭔지 정확히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나쁜 행동=아빠’ 라는 등식이 인이 박혔다. 그 뒤로 나의 역사는 아버지를 이기는 것을 숙원으로 삼고 말았다. 그리고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나름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35살의 나는 35살의 아빠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는 부모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나이다.

 아빠가 꿈에 나온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보통은 자식의 그림자인 아버지가 태양으로부터 자식을 지켜주어야겠지만 아빠는 언제나 나를 잡아먹을 궁리만 하고 있다. 결국 나를 굴복시키고 자기 주제를 알라고. 내겐 멈추면 나를 잡아먹는 괴물이 있습니다. 그 괴물은 아버지 입니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너는 내 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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