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카스트 제도를 아시나요?
예전 직장에서 조교로 근무하던 시절 이야기다. 한 사내 부부가 크게 싸웠다. 두 사람은 계약직 교직원으로 만나 연애를 했고 결혼을 했다. 남편은 전환에 성공해서 정규직이 되었지만 아내는 전환에 실패해서 2년 일하고 6개월을 쉬면서 커리어를 이었다.
40대 부부의 싸움은 유별났다. 사원들끼리 편을 갈라 부부의 싸움을 각각 편을 들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싸움의 원인이 집안일이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보수 차이였기 때문이었다. 정규직은 연봉이 오르지만 비정규직은 연봉이 오르지 않은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업무 분장으로 싸움이 발생한 것이다.
“왜? 너도 정규직이라고 그쪽 편드는 거냐?!”
“그게 아니라. 교무회의에서 결정 난 걸 나보고 어쩌라고!”
“그래서 편도 못 들어주겠다는 거네? ”
싸움의 결과는 아내 직원의 화가 풀리면서 끝났다만 그 이야기가 처장 선까지 올라가면서 기획처장이 직접 회의 때 언급까지 할 정도로 공론화가 되었다. 신이 숨겨놓은 마지막 일자리라는 대학교 교직원은 이런 곳이었다. 어딜 가도 똑같겠지만 신의 직장이라는 말은 정규직에게만 해당되는 곳이었다.
대부분 대학이 아마 똑같은 처지일 것이다. 한 해에 대학교 정직원은 1명~2명밖에 뽑지 않는다. 그 외에는 10년 가까이 비정규직으로 2년 일하고 6개월 쉬길 반복하거나 다른 대학으로 계속 옮겨 다닌다. 이유는 등록금과 학생 정원 때문이다. 어쨌거나 교비의 재원은 등록금에서 나온다. 그런데 학생은 줄어들고 등록금은 10년 가까이 동결되면서 정규직을 거의 뽑지 않고 있다. 부피를 키웠다가 재정이 어려워지면 자르기가 힘들기 때문에 대학교는 비정규직 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 지침은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교원, 교직원의 정원은 맞추고 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산학협력단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산학협력단이란 학교 소속 교원의 연구 과제를 관리하는 곳으로 그 대가로 연구비의 15% 정도를 수익으로 받는 곳이다. 대학은 등록금 외에 직접적으로 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산학협력단은 법인이 대학과는 구분된 엄연히 독립된 기관이다. 그래서 산학협력단 직원은 교직원과는 구분되는 일반 사기업 직원이라 대학 안에 회사가 있을 뿐, 대학의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산단 직원이 교직원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차별받는 이유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왜냐하면 서로 법인이 다른 곳이니까.
그런데 산학협력단 내에 정규직은 한 명도 없다. 세상에 정규직이 한 명도 없이 굴러가는 회사가 있다니... 산학협력단의 관리자는 모두 대학에서 산단으로 파견을 보내는 형태로 된 ‘대학’ 정규직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정규직들은 몇 년이 지나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굳이 산학협력단을 위해 힘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대학과 싸워서 산학협력단의 이익을 위해 힘을 쓰면 대학 교직원 사회에서 찍히게 된다. 그들은 어차피 본부로 돌아갈 거니까 연구과제 프로세스를 알 필요도 없다 말하는 사람들이다. 산학협력단에 정규직이 없는 이유는 연구자가 연구를 적게 받아오면 산학협력단의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 역시 언제 규모를 줄일지 모른다는 리스크 때문에 정규직을 뽑지 않는다.
산학협력단 예산에는 ‘전출금’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산학협력단이 대학에 돈을 ‘빌려주는’ 항목이다. 그런데 대학이 나중에 “잘 썼습니다~!” 하고 돈을 돌려주겠는가? 거친 말로 표현하자면 삥 뜯는 것이다. 전출금은 산단의 수익에서 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엄밀하게 말하면 전출금을 주지 않고 그 돈으로 산단 직원들의 연봉을 올려주거나 복지에 힘을 쓸 수 있다. 하지만 대학에서 그걸 허락할 리가 없다. 그리고 나중에는 대학으로 돌아갈 관리자가 그 전출금을 가지고 싸울 이유가 없다. 오히려 더욱 더 많이 전출금을 상납 해야 칭찬 받는다. 정리하자면 산단의 수익에 대해선 대학이 ‘같은’ 회사라고 가지고 가지만 산단의 이익에 대해선 대학이 ‘다른’ 회사라고 차별을 두고 있다. 대학은 바로 이 정규직들이라는 천룡인과 이들을 받치는 계약직들로 구성되어 있다.
“한영 쌤, 비밀인데 얼마 전에 회의에서 한영 쌤 일한다는 얘기 나왔어요. 계속 이렇게 해서 무기 계약직 받아오도록 해봐요.”
얼마 전에 다른 사람을 통해 천룡인들께서 내가 일을 잘한다고 평가했다는 말을 들었다. 더 열심히 해서 천룡인들께 좋은 모습 보이면 무기계약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며 응원을 했다. 또 다른 분은 이런 말도 했다.
“앞으로 대학이 등록금으로 돈을 벌 순 없어요. 연구사업 위주로 갈 거니까 한영 쌤도 본부로 돌아갈 기회 있으면 그냥 가지 말고 여기서 경력 쌓아요. 일 많은 만큼 승진 빠를 거니까.”
내가 대학 파견직이라고 착각하고 한 말이었다. 박사학위가 있으니까 대부분 천룡인들은 나도 본인들과 같은 천룡인이라고 착각을 한다. 이 두 가지 얘기를 듣고 나는 교직원이 정말 선택받은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실제로 산학협력단에서 일을 하는 실무자들은 평생 일을 해도 무기 계약직이 끝이고 결코 관리자 직급으로 올라갈 수 없지만 관리자로 파견된 대학 정규직들은 여기에서 관리자라는 명분으로 앉아 있으면서 커리어를 쌓고 있었다. 심지어는 연봉 테이블도 다르다.
사나이 자존심이 있지 여기 열심히 해서 무기 계약직으로 만족하고 싶겠는가. 한 정규직에게 몇 년 일해서 정규직이 되었냐고 물어보았다.
“대학교는 여기가 처음이에요. 저희 동기를 모두 다 다른 일하다 넘어온 사람들이에요. 실례되는 말이긴 한데 교직원 계약직 열심히 해서 정규직 전환을 얼마나 해줄까요... 저도 그렇지만 어떤 분은 전 직장에서 연봉 절반을 깎고 대학에 오셨대요. 그 사람의 실력은 연봉이 증명하는 거지 경력이 아니에요.”
역시 천룡인은 달랐다. 진짜 여기서 퇴사해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