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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한 은하수 May 17. 2023

우주의 개미구멍#16

나이가 들수록 좋은 사람은 점점 줄어요.

오늘의 글은 인터넷의 한 밈을 우선 인용하고 시작해야 한다.


 “반박 시 네 말이 다 맞음.”


 사람이 살아온 환경이 다 제각각인데, 어떻게 내 생각과 경험이 일반화 될 수 있겠는가. 


 내겐 “솔로 탈출하면 나가는 방”이라는 카톡 모임이있다. 40살 공무원, 38살 유튜버. 그리고 36살 나. 이렇게 셋이 모인 방으로, 우리는 쿠팡 상하차에서 약 1년간 함께 일한 사이였다. 우리 셋은 솔로를 탈출하고 궁극적으로 결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목표의식으로 똘똘 뭉친 남자들이었지만 항상 정기 모임은 셋이서 환상종인 여자들 이야기로 시작하고 끝날 뿐이다. 


 참으로 건방지게도 사실 나는 35살까지 비혼주의자였다. 1부1처제의 결혼제도는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개인의 감정을 왜 국가가 통제하려 하냐는 아주 급진적인 생각으로 똘똘 뭉쳤다 게다가 한 유부남이 결혼은 10년 채우면 혼인무효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전 여친이 나와 헤어지자마자 6개월 만에 결혼을 한 것에 반해, 나는 1년 넘게 여자 손도 못 잡아보았다. 누구는 한창일 나이에 왜 여자를 안 만나느냐고 되물었지만 이건 ‘안’이 아니라 ‘못’인 상황이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내가 지난 3년간의 연애를 못 잊어서 연애를 쉬고 있는 거냐고 추측까지 했다. 


 이대로 안 되겠구나. 노총방 맴버들과 서로 으쌰으쌰 하며 적극적으로 소개팅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우리 셋 그 누구로 소개팅을 성공한 이가 없었다. 우선 40살 공무원 형은 38살에 늦게 공무원이 되었고, 상남자는 꾸미는 게 아니라며 평소 송강호처럼 다니는 사람이었다. 다음 38살 형은 월 1000만원을 넘게 버는 유튜버지만 의외로 여자들이 유튜버를 싫어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음... 여자들이 거절한 이유를 종합해보면 ‘안정적인’ 직업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소모임을 가입해보았다. 음... 없었다. 게다가 오래된 고인물들은 회식자리에서 남녀가 가족처럼 지내고 있었는데 정말 처음 간 나조차도 이들이 서로 이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간혹 예쁜 여성회원이 들어오게 되면 일단 연차가 오래된 40대 형님들부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마다 이성을 만나고 싶은 동기로 가입했겠지만 애초에 잘난 사람이라면 내가 자급자족을 할 필요 없이 이성이 많을 것이니 굳이 올 이유가 없을 것이다. 덕분에 나 역시도 사심을 비우고 아주 건전한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신입 남자직원과 친목을 위해 술자리를 가졌다. 그는 술이 거나하게 취해서 만난 지 3일 된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부럽습니다. 여초 직장이라 썸도 많지 않았습니까? 저는 남중남고공대 나와서 여자와 썸도 못 타봤습니다.”  


 순간 얘가 대단한 기대로 입사를 했겠구나 싶었다. 서둘러 이 기대를 깨뜨려 줘야겠다 싶었다. 


 “OO 씨, 미안한데 그런 거 절대로 기대하지 말아요. 괜찮은 사람은 결혼했거나 애인이 있고요, 혼자이신 분들을 왜 그들이 저 나이까지 혼자인지 그 이유를 알게 되니까요.”
 “아... 그러네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러면 선생님은 여자 친구가 있으십니까?”
 “나? 나는 여기서 200만원 벌고 있는데 어떤 여자가 나를 만나요. 나도 똑같이 결함이 있어요.”


 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구애활동으로 느낀 점을 그에게 가르쳐주었다. 물론 나이가 많다고 해서 결혼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나 여자나 똑같이 상대가 나이가 많으면 같은 질문을 던졌다. 


 “왜 저 사람은 저 나이까지 혼자인 걸까?”


 그리고 그 이유를 듣고 내가 감싸줄 수 있는 정도라면 만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나아가 내가 먼저 뜨겁게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굳이 그 이유를 극복해보려는 노력도 없다. 

 나로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여자는 내 연봉을 듣자마자 거절했고, 두 번째 여자는 시간강사 같은 거 아닌 안정적인 직업을 원했고, 세 번째 여자는 자동차가 없어서 거절했다. 물론 소개팅은 철저하게 시장거래니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바다. 

 반대로 내가 거절한 케이스도 이야기 해보자. 내게 관심을 보인 여성 2명이 있었다. 한 사람은 42살이었는데 젊었을 때 인기가 꽤 있었을 것 같은 외모와 몸매의 여성이었지만 성격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피해망상이 강했던 사람이었을까, 말투가 공격적이었고 늘 신경질적이었다. 그런 사람이 내게 관심이 있었다고 전해 들으니 황당할 따름이었다. 두 번째 여성은 44살이었는데 나잇살이라고 넘기기엔 너무 자기관리가 안 되어 있었다. 나도 나를 거절한 여성들과 똑같이 ‘왜 그 사람이 저 나이까지 혼자일까?’라는 질문에 내가 판단한 기준으로 답을 내리고 거절했다. 


 요즘은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주제를 모르고 눈이 높은 걸까? 그 자아비판에 지지 않기 위해 적극적으로 몸을 만들고 더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퇴근 후 공부를 시작했다. 그래, 예전에 속물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이해되는 남자가 바로 전문직 남성이다. 연애프로그램에 나와서 예쁘고 어린 여자만 찾는 바로 그 남자들, 다들 나처럼 똑같은 자아비판을 견디고 성공했으니 그에 따른 보상심리가 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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