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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지 Oct 16. 2020

희망과 두려움의 진자운동 속에서

나를 마주하는 데도 지난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최근 즐겁게 감상한 일드 《중쇄를 찍자!》. 평소 일본 만화를 즐겨 보기에, ‘일본 주간 코믹지 편집부에 편집자로 취직한 주인공이 만화 제작 전반을 배워나간다’는 단순한 작품개요에 매혹되어 킬링타임용으로 선택한 드라마다.

하지만 7화는 맥주 한 캔에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15초 건너뛰기를 마냥 연타할 수 없었던 에피소드였다. 작중 인물 ‘누마타’가 내 아픈 손가락 같아서였을까.


‘누마타’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20살에 신인상을 받고 창창한 만화가의 길을 꿈꾸던 그. 불혹의 나이까지 만화 일도(一道)로 스무 해를 더 버텨낸다. 프로 만화가가 아닌, 어느 유명 만화가의 어시스턴트로.

심혈을 기울여 그려낸 작품 하나가 어느 편집자의 조소로 그대로 서랍행이 되어 버린 후, 누마타는 ‘꿈을 포기하지 않는 나’라는 예쁜 포장지를 방패 삼아 현실을 부정한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프로로 등단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아침에 눈 뜨고 저녁에 잠들 때까지 선생이 다 그려 놓은 콘티 위에 먹칠을 하고 톤을 붙이고 펜터치를 돕는다.

하지만 어디선가 혜성처럼 등장한 괴짜가 금세 등단해버리고, 결코 길지 않은 세월 동안 한 우물만 판 누마타는 재능 많은 후배의 그림자에 또다시 가리어진다. 덤으로 얹어진 시기와 질투에 괴로워하다 그는 결국 용기를 낸다. 꿈속의 내일을 사는 것이 아닌, 매일의 오늘을 살기로. 인생의 반과 청춘의 전부를 단 하나의 기약 없는 꿈에 헌사해 온 스스로를 진단하고 현실을 처방하기로.

《중쇄를 찍자!》 Ep.7 중
누마타 :
저도 이제 마흔입니다.
스무 살부터 시작해 딱 그만큼 지났네요.
그 기나긴 시간 동안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언젠가는 이해해주겠지,
언젠가는 좋은 편집자를 만나겠지,
언젠가는 인정받는 날이 오겠지,
계속 그렇게...
제대로 부딪혀 보지도 못하고 여기까지 왔네요.
그런 주제에 동창 놈한테는 큰소리 땅땅 쳤어요
창작하는 사람은 이래야 한다!
크리에이터라는 것은 바로 이래야 하는 거다!
꿈을 향해 가고 있는 난 다른 이들과 다르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어요.
만화가를 꿈꾸는 동안은 특별할 수 있었죠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습니다.
 
류 : 자신과 마주한 게지.
 
누마타 :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류 : 결정은 이미 한 건가?
 
누마타 : 예.


누마타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 가업을 물려받는다. ‘꿈을 좇는 나’라는 안온함에 안주하고 있을 뿐, 무거운 한 발짝이라도 채 내딛지 않아 족적 하나 남기지 못했다는 냉철한 자가평가가 있었기에 포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낸 것이다. 이번엔 지극히 평범한 가게의 지극히 평범한 점장으로서, 그는 보다 실현 가능한 작은 것들부터 꿈꾸기 시작한다.


‘언젠가(Someday)’라는 단어는 달콤하다. 언젠가는 승진하겠지, 언젠가는 파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할 수 있을 거야, 언젠가는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꿈은 설탕 발려 실에 매달린 도넛 같다. ‘언젠가’의 미명 아래 종종 쭈그려 앉아 머리 위 도넛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할 때가 있다. 저 놈 저거 언제 떨어지나, 바람이 휙 불어서, 실이 뚝 끊어져서 요행으로 한 입 맛볼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하지만 아쉽게도 누가 먼저 머리 위 도넛을 먹느냐의 경쟁에서 승자는 대개 비교적 높이 뛸 수 있는 재능이나 요령의 차이로 판가름된다.

꿈을 꾸는 것은 쉽지만 실현하는 것은 어렵다. 더욱이 오랜 꿈을 포기하는 것은 무척이나 괴롭다. 꿈에는 비상에 대한 희망과 추락에 대한 두려움이 마구잡이로 엉켜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꿈을 실행하는 과정으로서의 자위와, 몽상은 몽상으로 남겨둬야 할지에 대한 냉철함을 구분해야 하는 순간은 분명히 찾아온다. 포기하는 것도 곧 도전이라는 것을, 내 안의 연약한 나 자신을 보듬어 주는 데도 지난한 용기와 냉철한 자기확지가 필요하다는 것에 대한 깨달음은 실행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다.

당장의 큰 몫을 바라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체급이 있고, 우선 집중해야 할 눈 앞의 경기가 있다. 남은 것은 눈 앞의 사각 링에서 잘 다듬어온 근육을 어떻게 유려한 일격으로 승화시키느냐의 고민이지 않을까.

희망과 두려움의 진자운동 속에서 Self-equilibrium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곧 삶의 귀착이라고 생각하면 짐짝 같은 세속적 고민의 중량은 한결 가벼워진다. 꿈을 좇는 걸음마다의 희로애락이 순간의 감정일지, 머무는 마음일지는 겪기 전엔 쉬이 알지 못하지만 누가 알랴, 진정성으로 운을 모으다 보면 또 새로운 목표의 중쇄를 찍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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