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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보다홍차 Sep 21. 2021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하고 싶다면 말이지

영화 '그린북' 리뷰, 2019, 피터 패럴리


나는 영화 줄거리를 잘 보지 않고 영화를 보는 편인데, 그래서 영화 포스터만 봐서는 내가 상상했던 이미지와 완전히 반대인 경우가 종종 (아니 자주) 있었다.(아주 당연한 것ㅋㅋ. 줄거리를 보고나서도 생각했던 느낌과 다를 수 있으니.) '그린북'도 그 중에 하나였다. 요즘은 작가주의 영화에 조금 질린 편이어서 받아들이기 쉬운 영화를 고르고 싶었다. 그린 북이 워낙 명작이라고들 하니, '명작'이란 단어가 주는 왠지 모를 거부감과 어려움이 내게 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클릭하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단 말씀. 감동적이고, 엄마와 미드 소마를 볼 것이 아니라 그린 북을 봤어야 했군,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근데 어머니는 이미 그린북 예~전에 봤다고.. ㅎㅎ아직도 안봤냐며 한마디 하셨다.) 아무튼, 뻔하지 않은 인종이야기, 그린북을 꼭 후기로 남기고 싶어졌다!






1. 작품 정보


개봉 : 2019.01.09

장르 : 드라마

러닝타임 : 130분

감독 : 피터 패럴리

출연 : 비고 모텐슨, 마허셜라 알리




2. 줄거리


1) 한줄 요약 : 아직 인종차별이 남아있던 1960년대 미국, '백인' 토니가, 천재 피아니스트이지만 '흑인'인 돈 셜리의 운전기사로 일을 하면서 벌어지는 각종 인종차별 에피소드와 그를 극복해나가는 실화 기반의 우정이야기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 구체적 줄거리 : 허풍만 믿고 살아가던 이탈리아 출신 '백인'인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일하던 클럽이 잠시 휴업에 들어가 급하게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지인의 소개로 천재 피아니스트지만 '흑인'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의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뜻밖에도 고급 가운을 걸친 흑인, 돈 셜리. 그는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그가 운전기사를 고용한 이유는 위험하기로 소문난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투어 기간 동안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도 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셜리의 첫 제안은 온갖 시중까지 들어줄 운전기사를 구하는 것이었고, 그에 자존심 상한 토니는 가격을 올려 부르고 절대 시중따윈 들지 않겠다고 화를 내며 돌아간다. 토니의 일하는 방식을 익히 들어온 셜리는 다시 전화하여 아내의 허락을 받고 (8주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 금액도 원하는 만큼 주기로 하며 그를 섭외한다.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와 교양과 기품을 지키며 살아온 돈 셜리 박사. 생각, 행동, 말투,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 흑인을 위한 여행 안내서 '그린 북'에 의존하여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총 12곳의 투어를 계획해 둔 돈 셜리. 생각보다 여정은 쉽지 않다. 토니의 모든 말투와 습관까지 고치려드는 셜리 때문에 토니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하지만 투어가 시작되고 셜리가 당하는 수모를 지켜보면서, 토니는 셜리에게 조금씩 마음을 연다. 처음엔 돈 때문, 그다음은 동정심 때문이었을지 모르겠으나 셜리와의 진솔한 대화가 쌓여갈수록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이 쌓여간다. 그렇게 여러 우여곡절을 거치고 마지막 투어날, 공연장에서 여전히 셜리를 대하는 태도가 불손하다. 낡아빠진 창고를 대기실이라고 안내해주고, 식당에는 들어오지도 못하게 한다. 그에 열받은 셜리는, 친구 토니의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낸다. 자신을 이곳에서 식사하지 못하게 하면 자신도 공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포한다. 결국 지배인은 끝까지 들여보내주지 않았고, 그들은 공연을 포기하고 돌아간다. 크리스마스 이브까지 토니를 집으로 보내주기로 약속했던 셜리는 눈보라가 치는 도로를 교대로 운전하며 토니를 가족의 품에 보내준다. 쓸쓸히 이브를 맞이하던 셜리는 용기를 내어 다시 토니의 집으로 방문하고, 토니 가족들의 따뜻한 위로와 함께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며 영화가 끝이 난다.





처음엔 무슨 종교계 종사하는 사람인줄 알았던 의상(ㅋㅋ)




3. 감상평


1) 뻔한 인종차별 클리셰를 깨뜨리다


사이가 나쁜 백인과 흑인이 우정을 쌓아가며 흑인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의 영화들이 이미 많이 있지만, 이 영화는 꽤나 특별하다. 그동안의 영화들이 백인은 잘나가는 사람으로 표현되나, 어떤 모종의 이유로 가난한 흑인과 마주치고 흑인을 도와주면서 우정을 쌓는다는 뻔한 스토리 구조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영화 그린북은, 백인을 대표하는 '토니'는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으로 표현되고, 흑인을 대표하는 '셜리'는 잘 배우고 돈도 많은 천재 피아니스트로 표현된다. "대표한다"라는 말을 쓰기는 했지만 사실 두 사람 다 백인과 흑인의 대표성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신선하다. 이 대표성은 사실 으레 가지고 있는 우리의 편협한 사고-백인,부자/흑인,가난-을 벌써 깨뜨려주고 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흑인들이 농장에서 일하는 길을 지나가다가 잠시 차가 멈춰섰을 때이다. 같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다른 그들. 셜리는 비싼 옷을 빼입고 백인이 운전해주는 차에서 내린다. 일하던 흑인들은 그것을 신기하게, 신기루처럼 한없이 바라본다. 한마디 대사 없는 씬이었지만 그 장면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굉장히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또한 셜리는 흑인, 하면 떠오르는 재즈음악도 전혀 모른다. 하지만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는 흑인들만 가는 식당에서 재즈를 연주하며 셜리 역시 흑인의 삶을 이해해간다. 셜리는 그동안 자신이 피부색만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아왔다는 것에 대해 분노했지만, 그 역시 자신을 일반 흑인들과는 다른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흑인 음악으로 대표되는 '재즈'를 연주하는 돈 셜리


2) 우정이란,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겨주는 것 : 토니는 성깔을 버리고, 셜리는 원칙을 버린다


잘 나가는 흑인이지만,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 투어를 하기 위해서는 일 잘하는 백인이 필요하다. 반대로 허세 좋고 흑인을 무시하던 백인이지만 그는 도둑질도, 길바닥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아하는 양아치 인품이다. 너무나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필요로 하게 되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과정이 너무 따뜻했다. 생전 치킨을 먹어본 적 없는 셜리는 치킨을 찾는 사람이 되고, 길거리에 닭뼈 정도는 시원하게 버릴 수 있게 된다. 게다가, 흑인이니까 당연히 그래야지 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토니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줄 아는 사람으로 바뀐다. 토니 역시 흑인이 쓰던 물컵을 버릴 정도로 흑인을 혐오했으나, 친구 셜리가 당하는 인종차별을 보고는 정의감에 눈이 뒤집힌다. 또한 셜리의 러브레터 강의를 통해서 부인에게 로맨틱한 편지를 써주는 남편으로 거듭난다. 서로서로 그들의 모습을 존중하고 닮아가는 모습이 진짜 우정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모습 역시 그러하겠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흔적이 쌓여 나의 모습이 되었으리라. 또 누군가는 나의 흔적을 지니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함께 서로의 삶에 흔적을 남겨주는 것, 그것이 진짜 우정인가보다.



KFC를 먹고 즐거워하는 두 사람(치킨은 언제나 옳다)



공연 주인공인데 식당 이용은 안된다고? (열받)


3) 기타 내 생각


-토니의 일처리 방식


셜리가 토니를 왜 그렇게 뽑고 싶어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거친 남부 여행에 있어서 다소 터프하지만 확실한 일처리를 하는 토니가 정말 필요했고 적재적소에 들어갔다고 생각한다. 때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손찌검부터 나가는;; (아마 그 시대여서 가능했을까..) 그렇지만 확실하게 스타인웨이를 준비해오는 모습에.. 초보 직딩은 조금 감동했다. (ㅋㅋ)




-그래서 돈은 못받은건가?


그래서..!! 음반회사 돈 줬어 안줬어?!! 갑자기 결말로 와서 당황. 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든가, 남부투어를 한번 더 했다든가,, 마무리를 잘 보여줬으면.... 하면서 부들거리는 한국인이 여기 있습니다.




-KFC 먹고싶다


여담이지만 KFC 버켓째로 먹는거 너무 맛있어보인다...... 츄릅 ..

10월 1일을 기다리며........ (매월 1일 KFC 버켓 1+1 행사..^^)




-떠버리 토니 역할을 맡으신 비고 모텐슨 배우는 바로바로바로바로바로


반지의 제왕 아라곤 ^^느님

미드소마 비요른 안데르센 배우에 버금가는 놀라운 반전!

이 사람이 여기서도 나왔네?하고 찾아보는 것도 영화를 보는 또하나의 재미인 듯하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그냥 휘발되어버리는 영화들이 더 많다. 그리고 러닝타임 2시간 동안에 어떤 장면이 있었는지도 잘 남지 않는다. 그러나 그린북은 특정한 몇몇 장면이 계속 마음 속에 꽂히듯 박혀있는 것 같다. 아, 나 이런 영화 좋아했지. 라고 오랜만에 느꼈던 영화 감상이었다. 올 추석은 가족들과 함께 #그린북 을 관람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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