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브리시티 프렌즈 (에필로그)
머나먼 이국에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2018년 8월의 마지막 날.
영국 땅에 처음 발을 디디기 전까지는 해외 살이 경험이 전무했다. 여행이나 출장으로 해외에 다녀온 경험은 있었지만 교환학생이나 어학연구 등을 해보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외국에서 일하는 기회를 얻어 본 적도 없었다. 마음 한켠에 해외 유학의 꿈을 늘 가지고 있었지만 실현할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좋은 (?) 남편을 만난 덕에 기회를 얻어 영국에 건너가고 꿈만 꾸던 해외에서의 유학생활도 시작할 수 있었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해외 살이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는 큰 부담이 없었다. 워낙 낯가림도 없고 처음 만난 사람들과 대화도 곧잘 하기 때문에 걱정보다는 새로운 친구들을 만날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영국 브리스톨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거기에 살고 계신 한국분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고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여기서 영국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싶어요!"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아.. 그런데 영국 친구 사귀기 힘들어요.. "
"맞아요. 진심을 나누기는 좀 힘들더라고요"
"진짜 친구는 만들기 어려울 거예요"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말들에 잠시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었지만 오래 산 분들이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말이니 맞을 확률이 높겠지 생각하며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영국에서 친구 만들기가 힘들고 어려운 건 사실일 수 있겠지만 아주 불가능 한건 아니지 않을까?'
동시에 친구가 뭘까? 진짜 친구는 뭘까? 그냥 아는 사이, 자주 보는 사이가 아니고 내 진짜 친구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어때야 하는 걸까? 질문이 잔뜩 쏟아졌다. 당시 대화를 회상해 보면 '영국인 친구', 즉 '영국 사람'인 '친구'를 만들기 어렵다고 콕 집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2024년인 현재, 영국 땅을 처음 밟은 지 햇수로 6년. 영국에서 살기도 하고 영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기도 하는 동안 나는 몇 명의 영국 친구를 사귀게 되었을까? 그 친구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이며 우리는 서로를 진짜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어떤 추억을 쌓아왔을까? 내가 친구라고 부르는 나의 영국 친구들이 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정확히 알 길은 없다. (직접 물어보면 어떠한 답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만 적어도 내게는 친구인 나의 영국 친구들과의 첫 만남, 에피소드, 그 친구들에게 내가 배운 점,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는 이유 등을 글로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꺼내보면 그날의 추억을 불러올 수 있는 사진첩처럼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도 잊지 않고 불러올 수 있는 글 저장소를 하나 마련하고 싶었나 보다. 어쩌면, 잊지 않고 싶을 만큼 만남과 추억들이 너무 소중해서 일지도. 한국에서는 대개 누군가를 도와주는 역할을 많이 도맡았었다면 영국에서는 셀 수도 없는 도움을 받으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영국에서 만난 친구들이 도움을 준 주역들이기에 더 특별히 기억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첫 번째 영국 친구는, 나의 첫 영국 친구이기도 하다.
용감하게 말을 건 덕분에 친구가 된 루비 할머니와의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마이 브리티시 프렌즈' 한 명 한 명을 소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