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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숟가락 Nov 09. 2023

제자 결혼 축사

안녕하세요?

저는 신랑 방진수 군과, 신부 신솔 양의 중학 시절을 함께 한 교사 정태윤이라고 합니다. 축사를 부탁받고, ”솔이야! 네가 스스로 결혼식을 망칠 셈이냐?"라고 말하며 고사했지만, 신부의 조리 있는 말솜씨에 설득되어 결국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교사라는 직업을 오래 하면 이별에 익숙해집니다. 매년 1,000명의 학생과 헤어지거든요. 졸업할 때 학생들은 “선생님 꼭 다시 만나러 올게요!”라는 말을 하지만, 한두 해 연락하다 곧 서로를 잊습니다. 그런데 2011년에 고암중에서 만난 제자들은 이런 법칙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매년 11월마다 모여 전화해서 안부를 묻고 서로를 챙깁니다. 이렇게 인연이 길게 이어지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고암중 3학년 6반 반장 신솔입니다. 솔이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장착한 훌륭한 학생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 학교에서는 체벌이 허용되었습니다. 저도 학생부 교사를 3년 동안 하면서 여러 학생에게 매를 드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때 제 행동을 마음의 짐으로 갖고 있을 때 솔이를 비롯한 고암중 3학년 6반 친구들은 20살이 되자마자 만나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 전화를 받았을 때 잠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에게 복수를 하려고 만나자고 하는 것인가?’


그래서 핑계를 대며 거절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마음의 짐이 남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잘못을 사과하기 위해 그 자리에 나갔습니다. 걱정과는 다르게 제자들은 순수하게 저를 반겼고, 즐겁게 옛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마음먹은 일을 하기 위해 어렵게 과거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얘들아! 옛날에 너희들을 체벌해서 미안하다. 지금은 많이 반성하고 있으니 용서를 부탁한다!”

  

예상치 못한 저의 고백에 제자들은 놀라면서도 다행히 제 사과를 받아주었습니다. 그때 솔이가 저에게 한 위로가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때 선생님도 어렸고, 다른 선생님이 시켜서 매를 들었던 거잖아요. “

 

이렇게 신부는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습니다. 사회 구조를 파악할 줄 알고, 세상을 보는 바른 눈도 가졌습니다. ‘슬기롭고 지혜로운’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신랑 방진수 군은 어릴 때부터 예술인으로서 자질을 보인 연예인이었습니다. 그는 아역 배우로 각종 CF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끼를 표현하였습니다. 중학교에서는 3년 동안 반장을 역임할 정도로 통솔력과 카리스마를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고암중학교 축제 여장 대회에서 여성을 무릎 꿇게 할 정도로 절세의 미모를 뽐내 많은 학생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현재는 자신의 장점을 잘 살려 쇼호스트, 동기부여 전문가, 영원한 마케팅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족을 만들면 그 사람을 설명하는 단어가 많아집니다. 결혼식이 끝나면 다음과 같은 부를 수 있습니다. 신솔의 배우자 방진수, 방진수의 배우자 신솔. 신영석, 조은채 님의 사위 방진수, 방두진, 홍은희님의 며느리 신솔. 미래에 자녀를 만나게 되면 000의 아빠 방진수, 000의 엄마 신솔.


이러한 수식어들은 두 사람에게 책임감을 갖게 하고 더 깊은 사랑의 의미를 가르쳐줄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을 가지면서 둘은 더 강하게 연결될 것입니다. 두 사람의 새로운 출발을 응원하고, 지금 이 순간 축복하며, 축사를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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