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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 Jun 23. 2020

 아내는 '산뚜벅이'

    부부, 100대 명산 완등을 마치며...


연애시절, 아내가느다란 다리를 보고 놀 적이 있습니다. 청바지가 헐렁하 품이 남아 보였습니다. 당시에 ‘스키니 진’의 유행이 있었더라면 보기가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인가  해변가로 피서를 갔던 날, 반바지 차림의 그녀의 다리를 보고 마음이 짠했습니다.

가느다란 다리에 종아리마저 밋밋하니  좀 과장을 보태면 학처럼 야윈 다리라고나 할까요. 

그때부터 아내를 놀릴 테면 '새다리'라고 불렀습니다.


그녀에게 가느다란 다리는 늘 핸디캡이 되었던 모양입니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눈치챌 수 있었습니다.

마누라는 틈나는 대로 걸었고, 주말이면 산을 탔습니다. 다리에 근육을 키워 굵게 만들려는 의지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가끔 아내는 동반 산행을 원했으나 내가 응해주지 않홀로 동네 뒷 산을 몇 바퀴 돌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산을 타거나 무작정 걷는다는 것은 지루하고 재미없는 바보 같은 운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몸집이 작고 가벼운 편입니다.

한 시도 쉬지 않고 늘 바지런 움직이니 살집이

붙을 새가 없습니다. 출근 전 아침을 준비하고, 퇴근 후 저녁을 준비하는 그녀의 손놀림은 늘 속도감이 있습니다. 연로하신 장모님의 손길이 멈춘 후에는

더욱 바빠졌습니다.


아들만 둘을 가진 집안의 풍경이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일거리가 생긴다고 하면 틀리지 않습니다.

오롯이 아내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혼한 지 1년 후부터 장모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내가 친정어머니께 아이들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몇 해 전까지 양육과 살림에 대한 장모님의 큰 도움으로 아내는 나름 시간의 여유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홀로 감당하는 시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큰 아이와 작은 아이가 독립하여

아이들에 대한 뒷 바라지는 줄어들었습니다.


아내는 늘 생각에 잠긴 듯합니다. 해야 할 일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체크리스트를 적고 지우 고를 반복하는 일상의 리츄얼이 된 듯합니다.

저녁 식단은 내 의향을 물어 사전 주문을 받는 형식을 취합니다. 퇴근 후 아내는 마트에 들러 식단의 재료를 구입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나는 마트 앞에서 차량을 대기하고 그녀를 맞이합니다. 재료를 한 아름 들고 오기 때문입니다. 당일 구입한 재료를 당일에 요리를 해야 신선하고 제맛이 난다는 확고한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아내는 요리하기를 즐기는 편이지만,

나는 퇴근 후 그녀가 자유시간과 휴식시간을 더 많이 가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가끔 외식을 제안합니다. 그녀가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직장생활로 인해 힘들고 피곤해진 표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집에 돌아 조리하랴, 가족들 입맛에 맞추랴, 짧디 짧은 휴식시간 오롯이 저녁을 준비하는데 빼앗겨 버린 그 고단한 시간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늘 아쉬운 점은 내 제안에 응하는 횟수보다는 사양하는 횟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건강을 위해 집밥을 먹어야 한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칩니다. 집밥을 해주고 싶은 아내와 어머니의 마음일 텐데...... 나도 자주 강권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녀는 평일의 스트레스와 컨디션 조절을 주말 산행으로 풀어냈습니다.

어느 하루,  전 날 내가 과음을 해서 집에서 쉬고 있을 때, 관악산을 갔다 오겠다고 아내가 말했습니다.  "혼자?"  “ 네~ ”

순간 마음이 혼란해졌습다. 함께 할 수도 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심사로 머리가 점점 더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숙취로 온 몸이 찌뿌둥하고 속이 니글거리는 후유증은 나를 붙들어

매었고, 연약한 여자인 아내를  혼자 가게 내버려 둬야 하는 자존심 상할 졸렬함이 나를 괴롭혔습니다.  ‘ 뭔 사고나 없을는지...’

갈등만으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 함께 가자! ’

아내는 배낭을 꾸렸습니다. 두 개의 배낭인데 내 배낭이 훨씬 벼웠습니다.

힘들어하는 내 모습을 보고 그녀가 택한 무게 조절이었습니다.


어쩌면 아내의 기억 되살려준 지난 학습효과의 처방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차례 산의 정상을 밟지 못하고 위화도 회군(산의 중간지점에서 돌아오다)한 나의 흑역사에 대한, 자존심 상할 일이지만, 그녀의 배려였을 것이라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그녀는 매사 ‘배려심’이 몸에 배어있습니다.

그녀의 지나친(?) 배려심은 나나 아이들에게 가끔 핀잔을 듣곤 한다. 남에 대한 지나친 관심이나 오지랖이 넓습니다.

그럴 때면 “ 그까짓 것 좀 해주면 안 돼? ”

라며 겸연쩍게 웃곤 합니다. ‘ 이를 어떻게 말리랴..’

그녀가 등산을 좋아하는 이유도 콤플렉스 극복의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 새다리 ’라는 놀림에 대한 극복 말입니다.

그녀를 위해 나만이라도 기꺼이 동참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찾게 되었습니다.  

산에 오르다 가끔 어린 학생들이나 청년들을 보는 경우

무척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 시절을 더듬어 보면 등반을 했던 기억이 별로 없다. 단 한번, 대학시절 멋모르고 당일치기로 설악산 대청봉을 찍고 설악동에 다다른 것( 당시에도 연애 중인 아내와 함께 했다) 말고는 내 기억에는 없습니다.

직장에서 단체 산행을 하다 보면 청년층인 대리 과장급들이 가장 맥을 못 추는 그룹입니다. 틈틈이 산행으로 몸 관리를 하고 있는 부장급이나 임원급들이 오히려 선수다. 이율배반입니다.

그만큼 등산은 자기 체력의 급전직하나 만성 피로감에 의한 필요성을 느끼면서 시작되는 운동입니다. 해서 젊은 층보다는 중장년층 이상의 산객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산행을 했던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가 하나 있습니다.

큰 아이 대학 시절, 아내와 함께 소백산에 올랐습니다.

온통 눈으로 덮인 기가 막힌 설산 산행이었다. 바람은 불어 재끼고 눈발이 눈을 가려 앞의 시야가 가려진 묵언의 순례 산행이었습니다.

아이는 젊음의 힘으로 성큼성큼 선두로 나아갔습니다.

‘페이스 조절해라. 오버하면 나중에 지쳐서 타기 힘들다. ’

아내도 내 말을 거들고 나섰습니다. 정상 못 미쳐 삼분의 이쯤에서 결국 아들은 지치고 말았습니다. 아내는 오르막 지형에 강했습니다.

고른 평지에서는 컴퍼스 길이 때문인지 뒤에 처지다가도 오르막에 다다르면 평지 걸음을 계속하고 있으니 앞서 나갑니다.

그날 이후 나와 아이들은 아내와 엄마를 ‘산뚜벅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산을 좋아해서도, 산을 잘 타기도 해서도 마누라는 ‘ 산뚜벅이 ’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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