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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jung KIM Jan 23. 2023

늘 셋이서

책에 관한 기분들


 “한편 안티포바는 그녀에게 일어난 두 가지 사건과 함께 늘 셋이서 동행했다.”


 빅토리아 토카레바의 소설 <남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를 읽다가 기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여기서 두 가지 사건이란 안티포바의 은퇴와 남편에게 버림받은 사건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꿔놓기에 충분한 사건인 셈이다. 그런데 내가 왜 기묘한 감정을 느꼈느냐고?


 “두 가지 사건과 함께 늘 셋이서 동행했다”는 표현에는 안티포바가 이 불행을 굉장히 소중하게 여겼으며,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자신이 비극을 겪은 여인임을 의식했다는 함의가 담겨 있다. 함께 늘 셋이서, 친구처럼. 불현듯 다른 감정을 느끼거나 새로운 사람을 마주하더라도, 그는 잊어버린 친구를 기억해내듯이 자신의 불행을 떠올리며 그에 맞게 처신했으리라. 이러한 자기규정이 그를 어떻게 몰고 갔을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안티포바와 정확히 같은 경우는 아니지만, 이 문장에서 내가 불에 덴 듯 화끈거렸던 이유가 있었다. 나 역시 그런 자기규정에 오랫동안 발이 묶여 지냈으니까.

 어젯밤 친구와 저녁을 먹다가 지난해를 되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한 해였고, 회복하려고 성실하게 노력했다. 돌아보니 산책과 번역과 검토를 열심히 했고, 밤의서점 첫 책 <클리마>도 출간했으며, 글쓰기 수업도 멈추지 않았다. 서점 운영은 많은 부분 폭풍점장에게 의지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 딴 짓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정신적 여유가 있어야 딴 짓도 도모할 수 있을 테니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낸 내게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는 굉장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나에 비해서도 극내향인에 가까운 그는 일 년간 실험하듯 모든 관계에 자신을 열어놓았노라고 했다. 마치 예스맨처럼 누군가 나오라면 아무 생각 없이 나가고, 무언가 해보자고 하면 아무 고민 없이 실행해버렸다고. 인생에서 작년처럼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일을 시도한 해도 없었다고 그는 밝게 웃었다. 그러한 시도가 이 친구를 인싸로 만들어주었다거나, 긍정의 힘으로 무엇이든 해보자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결국 그 친구가 깨달은 것도 그게 아니었다.) 내가 놀란 지점은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간 내가 속으로 했던 수많은 변명들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그 사건들과 동행했던 안티포바의 자리에 정확히 내가 들어가 있었기에.

 안티포바가 자신의 고통을 애지중지 여기며 자기 정체성으로 만들었듯이, 나 역시 그러한 자기규정으로 스스로 발을 묶어버렸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던 것이다. 다행히 안티포바는 한 발을 내디뎠다.


안티포바는 불필요한 초대에 응하지 않겠다는 원칙이 있었다. 하지만 약속 시간까지 한 시간이 남은 오후 5시에 갑자기 생각을 바꿨다. 바다와 책, 고독 말고 다른 게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을 하고 등이 완전히 드러나는 과감한 원피스를 입고 허리에 리본을 두를 것이다. 어디에 가는지, 누구와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마시고,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텅 빈 대화를 듣는 것도 좋으리라.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녀는 혼자가 아니고 삶은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사실이다.

_ 빅토리아 토카레바, <남이 우리랑 무슨 상관이죠> 중


 그렇다면 앞으로도 계속될 삶을 마주하고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은 충분히 만났으니 이제 조금 다른 시도를 하고 싶은 걸까?

 그때 휴대전화가 부르르 떨며 메시지를 토해냈다.

 

- 산책하실래요?

 

 그것은 뜻밖에도 평소 친한 동네친구가 보낸 것이 아니었다. 기계적으로 거절 메시지를 지우려던 손을 멈춘다.


 “지난 일 년간 살면서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예전이라면 당연히 했을 고민과 생각을 차단해버렸거든요.”

 어젯밤 친구가 준 여운이 아직 남아 있다. 사람들과 있을 때는 따뜻했지만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데는 선수. 나를 이해해줄 사람을 찾아 헤매지 않는다면 그 만남은 즐거울 수도 있겠지. 자, 앞으로 내게 따라붙을 상황에 대한 변명들은 잠시 내려놓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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