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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쫑 Sep 04. 2023

순천만울트라마라톤 102km 생생 기록 (1)

미친 짓을 왜 할까?

   16시간을 달린 몸은 엉망징창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걷는데도 쩔뚝쩔뚝. 폭우로 젖은 옷과 배낭으로 쓸려 난 어깨와 사타구니 상처 자국이 선명하다.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102km를 어떻게 달렸나 싶다. 그리고 뿌듯함. 사실 어제 골인점에 도착해서 나는 '이건 미친 짓이다' 혼자 중얼거렸다. 200m가 넘는 고개를 네 개나 넘어야 하는 코스는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거기다 밤 두 시부터 내리기 시작한 빗줄기가 3시부터는 폭우로 변해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로등이나 민가도 없는 깜깜한 산길 도로에서 폭우는 혼자이기에 더 공포감을 자아냈다. 이번 대회는 한마디로 산악마라톤이었다. 나는 코스도를 자세히 봤어야 했다. 고개 정상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이 짧게는 4km 길게는 10km였다. 이런 오르막은 아무리 1등 주자라도 걷는다. 나는 당연히 걷고. 지루한 오르막 걷기... 이런 고개가 네 개...

   

코스 고저도

**출발 전**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아침 여덟 시 반 버스를 타고 순천에 내리니 한시. 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대회장에 도착하니 세시. 이미 많은 참가자들이 와 있다. 마라톤동호회로 참석한 사람이 많기에 그들끼리 준비운동을 하며 인증샷을 찍고 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발에 꼼꼼히 테이핑을 하고 배낭 안 물품을 점검했다.

   오후 4시에 출발하여 밤새 뛰는 거라 헤드랜턴과 경광등 부착은 필수며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기에 우비와 겉옷, 모자를 챙겼고 그리고 핸드폰 보조배터리(핸드폰으로 러닝맵을 켜고 달릴 예정이라 배터리 소모가 많음). 바셀린은 필수. 뛰기 전 겨드랑이와 사타구니, 젖꼭지에 듬뿍 바르고 뛰면서도 흐르는 땀으로 인해 중간중간 발라야 한다. 테이핑은 운동화 착용감을 안정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물집 잡히는 걸 방지하기도 한다.


**드디어 출발**

   이번 출전자는 153명이라고 소개하며 모두 완주하기 바란다는 사회자의 말과 함께 오후 4시 출발 신호에 주자들이 일제히 앞으로 달려 나갔다. 대회를 신청하고 나는 102km를 몇 시간에 뛸 수 있을까 생각하며 넉넉하게 15시간 안으로만 들어오자고 했다. 52km까지는 6시간, 나머지 50km는 9시간 이런 계산이다. 나의 러닝 기록으로 보면 52km 6시간은 비교적 무난한 예상이다(하지만 이건 네 개의 고개를 감안하지 않은 거, 그리고 폭우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주로 환경 때문에 결과적으로 계산 착오였다).

   순천 동천변을 끼고  달리면 측에 순천만국가정원이 보이고 더 달리면 순천만 늪지대의 비포장도로에 닿는다. 처음에는 다 같이 달리지만 이제 곧 주자들은 자기 페이스대로 늘어져 혼자 달리게 된다. 그리고 몇십 킬로미터 넘기면서는 앞뒤로 주자가 안 보이고 혼자서 고독한 러닝을 하게 된다. 그 가운데는 중도에 포기하는 주자도 나온다(완주 후 대회장에서 이번 대회 중도포기자가 40여 명이며 그들 대부분이 40km를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다)

처음에는 같이 달린다

   올해 나는 소소하게 일하며 바쁘게 살고 있다. 하지만 내년, 내후년의 시니어 삶에 어떤 계획은 없다. 나는 주어지는 삶에 순응하듯 사는 모습이 늙어가는 자신인 거 같아 싫다.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늙어간다고 생각까지 늙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강한 동기부여를 통해 정신이 바짝 드는 전환점이 필요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순천이 제2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사위의 고향이기도 하고 사돈댁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이라 순천이 맘에 든다. 그래서 달릴 바에는 순천에서 달리며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들어 보자고 대회 참가를 결정했다.

   순천만 늪지 비포장도로에 들어서니 경치가 장관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숲이나 물이 빠진 늪지. 황홀한 풍경에 상쾌함이 느껴져 참가의 의의를 더해준다.

순천만 늪지

   핸드폰으로 촬영하는 시간이나 러닝앱으로 시간을 점검하면서는 잠시 뛰던 동작을 멈춰야 한다. 어차피 그런 시간엔 물도 한 모금 마시며 잠깐 쉬는 거니 102km 거리에서 시간 때문에 초조해할 건 아니다. 하물며 내가 등수에 들 정도 실력도 안되고 시간 좀 당기겠다고 아등바등 뛰려는 건 더더욱 아니다.

   15.8km 첫 번째 급수대에 도착하여 물과 이온음료를 채우고 서서히 걸으며 다시 출발. 06:18/1km. 6분대 초반은 예상대 시간이라 무난한 달리기다.

    두 번째 급수대는 30km 지점. 지금과 같은 페이스로만 달리고 싶지만 25km 넘으면 페이스가 떨어지는 걸 알고 있다. 102km 뛰어야 하는 상황에서 오버페이스는 더더욱 아니기에 욕심부리지 않는 페이스로 달렸다. 30km 두 번째 급수대까지 걸린 시간은 3시간 30분. 시간은 7시 반, 이미 어둠이 짙어졌다. 06:58/1km.

   마라톤 시작하던 50대 초반 장거리 후반페이스가 약해 기록이 좋아지지 않아 고민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런 고민을 하지 않는다. 답은 간단하다. 등수를 외면하면 된다. sub4도 하고 하프코스 1시간 45분에 뛰어 봤으면 된 거다 만족하며 혼자서 꾸준히 달리는 것만으로도 시니어 인생에 충분한 활력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급수대에는 음료 외에 바나나, 초코파이, 떡이 준비되어 있다. 물과 간식은 당장이 아닌 앞으로 뛸 거리를 생각하며 먹어야 한다. 그래서 목이 마르지 않더라도 배가 안 고파도 억지로라도 마시고 먹는 것이다. 울트라마라톤에서는 중간에 식사를 제공한다. 이번 대회는 48km, 84km 지점 두 곳에서 식사가 제공된다. 일단 48m까지를 1차 목표로 파이팅을 외치며 두 번째 급수대를 출발했다. 뛸수록 힘들다는 느낌이 든다. 아직 반도 안 왔는데... 이런 때 기록을 의식하면 독이 된다. 어차피 17시간 안에 들어와 완주는 할 수 있을 거라며 편하게 생각하자고 했다. 주로 앞뒤로는 아무도 안 보인다. 헤드랜턴 불빛이 길잡이다.

칠흑 같은 도로

    240m 높이 6km 이어져 있는 첫 번째 고개인 바람재 고개도 그럭저럭 넘었다. 이런 고개가 뒤에 세 개가 더 있다는 걸 오르막을 걸으면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첫 번째 CP인 47km까지 예상보다 30분 정도 더 걸렸지만 그 정도면 큰 차질은 아니다. CP에 도착하니 앞에선 보이지 않던 주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다들 힘든 게 역력해 보이지만 표정은 밝다. 나도 그렇고. 6시간 12분을 달렸다. 52km를 6시간 안에 달리자는 목표는 어긋났지만 이렇게 달린 것만으로도 나 자신을 칭찬해주고 싶었다. 장이 흔들려 속이 미싯거리고 입맛이 없지만 그래도 먹어야 남은 거리를 뛰기에 억지로 밥을 우거짓국에 말아 입에 쑤셔 넣었다.

국에 말아먹는 밥

   첫 번째 CP에서 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걸어서 출발하는 데 또 오르막의 시작이다. 지겹도록 길게 이어진 빈계재고개. 고개 정상이 300m로 이번 주로에서 가장 높은 오르막이다. 코스도를 자세히 기억하지 않고 달리던 나는 또 고개구나 싶었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고개에 질리기 시작했다. 어두움이 그 지겨움을 배가시켰다.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을 많이 하게 하던가 사람을 단순하게 만들던가 둘 중 하나다. 식사를 일찍 마치고 먼저 출발한 주자의 경광등이 저 멀리 보이고 나도 뒤따라 걸었다. 아무 생각 없이...

빈계재 고갯길

   지치고 지루하니 몸도 가라앉는다. 내가 도전하고 느끼고 싶었던 게 이제 시작이구나 중얼거렸다. 반을 넘었으니 이제 반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포기하지 않고 걷는다. 이 순간 괜히 참가했네 싶으면 꽝이다. 절대긍정의 힘이 필요한 게 어려움에 닥쳤을 때고 지금이 그때인 것이다. 긍정을 되새기며 그렇게 한 시간 반 오르막을 올랐다. 내리막이라고 쉬운 건 아니다. 빨리 달려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미 다리가 천근만근인데 빨리 달리겠다고 그렇게 되지도 않지만 다리에 하중을 주어 쿵쿵 내딛다가는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 낭패다. 나는 2017년 100km 불교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이런 낭패를 경험해 본 적이 있다. 울트라마라톤 첫 참가였던 그 당시 나는 호기롭게 13시간을 목표로 삼고 오르막 산을 빨리 내려온다고 뛰어내려왔는데 그 충격으로 70km 지점부터 허벅지에 경련이 일어나 걸을 수가 없어 남은 20km를 다리 질질 끌며 겨우겨우 걸어 16시간을 넘겨 골인한 적이 있다.

   빈계재고개를 천천히 달려 내려와 다시 오치고개와  방치고개를 넘었다. 칠흑 같은 밤 가로등도 없는 산길 도로가를 걸으니 이게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알 수도 없다. 산길에 이정표가 없으니 오르막이 좀 계속되면 고개인가 보다 그렇게 느껴질 뿐이다. 오치고개와 방치고개는 산중에 이어져 있는 고개로 오르막이 길지는 않지만 지루하긴 마찬가지였다. 워낙 산중이라 그런지 산길 도로 서너 시간 동안 지나가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지금 내 앞뒤로는 90여 명의 주자들이 흩어져 있다. 앞뒤로 아무도 안 보인다. 길게 늘어진 주자들은 아마도 몇 킬로미터에 한두 명씩 늘어져 있을게다. 경쟁은 경쟁이다. 완만한 오르막에서는 뛸 수 있으면 뛰었다. 반계재, 오치, 방치 세 개의 고개를 몇 시간째 산길 헤매는 중이라 어플을 봤다. 시간은 두시가 되어 가고 평균 페이스는 08:49/1km. 평균 페이스 9분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평균 페이스 9분의 의미는 15시간 안에 들어온다 걸 말한다. 잠시 고민을 했다. 하지만 순위는 중요하지 않다. 완주면 내가 원하는 거 다 이룬거다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의 시간이라면 천천히 뛰다 걸어도 17시간 안에 골인이 가능하기도 한 기록이다. 이런 고민도 잠시, 나는 눈앞을 볼 수 없는 폭우로 인해 시간을 잊고 해탈의 경지에서 뛰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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