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대전시-옥천군] 문학이 있는 발걸음(1)

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by 김쫑

제 7장 문학이 있는 발걸음(1)

7일 차 2017. 6. 10. 대전시 둔산대교 갑천공원-옥천읍-옥천군 이원면 학생야영장 (37.5km)



어젯밤 나는 꿀잠을 잤다. 극도의 피곤함도 나를 깊은 잠에 들게 했다. 자연과 가까이 있다는 건 수면에도 절대적인 안정감을 준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보니 날은 이미 훤하게 밝았고 아침 햇살이 살갑게 나를 반겼다. 방금 일어났던 텐트가 나의 잠자리가 아닌 듯 쳐다보면 잠시 멍 때렸다. 그만큼 0.8평 텐트 안에서의 나와 그 밖으로 나온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공원 너머 저 멀리 자동차들의 출근길 모습이 보였다. 나도 출근해야 한다. 그들은 차를 타고 가지만 나는 걷으며 매일 출근한다.

어제저녁 먹다 남은 밥에 김 싸서 먹고 출발 준비를 마쳤다. 야영에서 아침에 남은 것을 먹어치우는 건 배낭의 무게를 줄일 뿐만 아니라 때론 간단한 아침 대용으로 유용하다. 야영에서는 모든 걸 간단히 처리하는 게 좋다. 장거리 도보여행에서 간단하다는 것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전에서 옥천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는 듯했다. 대전 시내 지도를 검색해 보면 대전 시내를 어떻게 빠져나가든지 길은 다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한 길은 대전 IC 앞을 지나 비래공원 고개를 넘는 코스였다. 갑천공원 야영장을 나와서부터 길을 물어보는데 사람들마다 말이 다 틀리다. 대개는 내가 걸어서 옥천으로 간다는 사실을 모르고 차편을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걸어갈 거라고 하면 그제야 다시 한 번 나를 쳐다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떤 사람은 의아해서 되묻기까지 했다. 못 믿겠다는 듯이 진짜 걸어갈 거냐고. 그래서 이미 임진각에서부터 여기까지 걸어왔다고 말하면 그제야 믿는 눈치였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까운 거리도 자동차로 이동하니 그런 반응도 이해는 되었다.

대전 한남대학교 정문


암튼 내가 걸어서 갈 거라고 말하면 그때부터 사람들은 자기들이 더 당황해서 어떻게 길을 가르쳐줘야 할지 머뭇거렸다. 하긴 그들도 한 번도 걸어서 대전에서 옥천까지 가본 적이 없었을 테니까.. 몇 번을 묻고 물어 걷다 보니 대전 시내를 갈지자로 관통한듯했다.

번잡한 대전 시내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로 밑 가양비래공원 산 고갯길을 넘어 고개 정상에 닿으니 대전터널이었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 터널로 무수히 많은 차들이 다녔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차량도 적고 터널 안은 곳곳에 도로가 파이고 터널 벽은 페인트가 벗겨져 지저분했다. 하긴 여길 누가 걸으면서 보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겠는가. 터널은 아직 차량이 다니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걷는 내가 보기에 좀 지저분해 보일 뿐이었다. 터널 안은 매우 시원했다. 오래된 터널에서 느끼는 서늘함이라고나 할까. 도보여행자는 이런 느낌이 더 좋다.

대전 비래공원에서 본 경부고속도로 교각


터널을 빠져나와서는 4차선의 넓은 도로가 계속 이어지고 내리막길이라 그런지 가끔씩 다니는 화물차들은 시속 80km 규정 속도를 초과해서 무척이나 빨리 달렸다. 어떤 차들은 길가로 걸어가는 나를 보고 자기 영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맹수의 포효처럼 경적을 울려대고 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갓길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기에 나는 차량과 같은 방향의 갓길을 걸어가는 중인데 갑자기 뒤에서 울리는 화물차 경적소리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해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거에 너무 신경 쓸건 없었다. 나만 손해니까. 나는 걸으며 나쁜 기분은 되도록이면 빨리 떨쳐 버리려고 노력했다.

운전하면서는 보이지 않던 광경을 걸으면서 만나는 것 중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한적한 도로인데 웬 쓰레기가 이렇게 많은지. 도심 한복판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갓길 쓰레기들이 제 발로 걸어 여기까지 오지 않은 바에는 아마도 운전자들이 창밖으로 버린 거겠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양심을 지키는 게 진정한 의미의 양심일 텐데 길가에 버려진 양심을 내가 다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이런 쓰레기는 오랫동안 이곳에 나뒹굴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씁쓸했다.

도로가 쓰레기들


14km를 걸어오니 신상교차로. 여기서 나는 우회전해서 옥천로로 걷기로 했다. 대전터널을 지나서 옥천로로 이어지는 도로는 왕복 4차선 도로로 걷는 재미는 덜했다. 신상교차로 도착 전 길가 가게에서 물어봤더니 신상교차로에서 옥천로로 가지 말고 직진하여 꼬부라지면 구 길이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검색을 해 보니 길이 나오질 않았다. 구 길이 걷기는 훨씬 낫다는 생각은 들지만 혹시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라도 할까 봐 조심스러웠다. 하룻밤의 휴식으로 부은 왼쪽 발목의 통증이 완전히 가신 게 아니기에 나는 오늘 목표거리 내에서 최대한 안정적으로 걸음을 해야 했다. 지금 나는 국토종횡단 목표인 1,000km의 1/3도 안 왔기 때문에 2~3일 내에 부어 오른 왼쪽 발목을 걸으며 자연적인 치유를 해야 했다. 그래야 남은 일정도 문제없을 테고.

옥천로 왕복 4차선의 넓은 도로는 곧게 시원스레 뻗은 길이라 걷기에는 좋으나 마땅히 쉴 곳이 없어 뜨거운 태양을 그대로 받으며 걸어야 했다. 갓길이 넓게 확보되어 있어 걷기에는 안전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몇 km를 걸어 간이 휴게소 매점이 있어 백반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먹는 물도 더 샀다. 본래 이 길은 예전에는 오래된 가로수가 있는 아름다운 길이였는데 확장하면서 구부러진 길이 일자가 되고 이렇게 넓어졌다며 차들은 좋을지 모르지만 걷는 데는 재미가 없을 거라는 간이 휴게소 주인의 말인데 딱 맞는 말이었다. 그래도 지금 나의 신체 컨디션으로는 모르는 길로 들어 헤매는 것보다는 아는 길로 똑바로 옥천 방향으로 걸어가야 했다. 특히 오늘도 야영이기에 부은 발목이 더 심해져서 야영지에 도착한다면 어찌할 방법이 없기도 했다.

다리만 건너면 옥천읍


옥천역에 도착하니 오후 2시 반이 넘고 있었다. 오늘 계획에서는 정지용 생가는 꼭 들러야 하는 곳이었다. 나는 옥천로 4번 국도를 잠시 벗어나 옆길로 걸어 옥천읍내로 들어갔다. 정지용 생가까지는 2.5km. 그러니 다시 돌아 제자리로 온다면 왕복 5km를 걷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지용 생가는 꼭 답사할 지역으로 이미 일정에 포함되어 있었다. 옥천읍은 시인의 마을처럼 내게 다가왔다.

정지용 시인은 납북, 월북, 피폭 등의 여러 설 속에서 이 땅에서는 잊힌 시인이었다. 그러던 중 1988년 정부로부터 그의 작품이 해금되었고 뒤이어 가수와 성악가가 그의 시 “향수”에 곡을 붙여 듀엣으로 불러 유명해지면서 정지용 시인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해방 40년 만에 그의 시 세계가 우리들에게 돌아왔고 그것도 대중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가깝게 다가왔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었던 그였기에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정지용 시인 밀랍 인형
정지용 시인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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