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 메고 24일간 걸어 국토 1000km를 종횡단한 58살 청년 이야기
6일 차 2017. 6. 9. 청주시 상당구 용암동-대청호-대전시 둔산대교 갑천공원 (43.5km)
대청댐 전망대는 고갯길 정상에 있기에 대청호와 금강이 만나는 오가삼거리까지는 내리막길이었다. 평상시 내리막은 좀 빠르게 걸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왼쪽 발목이 아프니 내리막이 더 조심스러웠다. 아무래도 안 아픈 오른발에 내딛는 힘이 더 들어갔다. 나는 천천히 절뚝거리며 내리막길을 걸어 내려갔다.
천천히 걸으니 길가의 풍경들이 더 자세히 눈에 들어왔다. 한적한 도로변에 버려진 묘지들. 묘지가 크다고 그 부모가 천당 가는 건 아닐 텐데 길가 버려진 묘지 하나는 예전엔 꽤나 잘 살았겠다 싶을 정도로 묫자리가 크고 비석에 갓도 씌워져 있었다. 지금은 잡풀만 무성하고 산등성이 올라가는 길조차 없어진 걸 보니 아무도 돌보지 않는 것 같았다. 조상도 자기가 먹고살만해야 돌보는가 보다. 효심이란 것도 결국 내가 먼저인가 싶은 게 내 어머니 돌아가신 지 20여 년이 지났는데 철원 어머니 묘에 요즘은 일 년에 기껏 두세 번 찾아가는 나를 보니 그런 것 같다.
2.5km의 경사진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와 오가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금강을 끼고 나란히 달리는 노산하석로로 접어들었다. 나는 그길 옆으로 흐르는 금강 위에 놓인 구름다리를 걸었다. 강위에 드리워진 구름다리 길은 나무그늘이 있고 금강의 선선한 바람까지 더해서 걷는 발걸음이 마치 신선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아쉽게도 금강 위 구름다리는 끝까지 이어지지는 않아 한참을 걷다가 나는 다시 햇빛이 내리쪼이는 금강 옆 국도 길을 걸어야 했다. 한낮 대지가 태양에 그대로 노출된 도로를 걸으려니 강한 자외선이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 나는 선캡을 고쳐 쓰고 최대한 직사광선 태양을 피하며 걸었다. 대전으로 가는 길은 두 길이 있다. 신탄진 시내를 통과하는 길과 금강변을 따라 걷는 길. 나는 신탄진 시내를 관통하는 지름길을 택했다. 오늘은 대전 갑천공원에서 야영으로 일박을 해야 하기에 저녁 일찍 도착하여 야영 준비를 해야 하기도 하고, 금강 경치 따라 걷겠다고 금강을 따라 걸어 대전 갑천으로 진입한다면 5~6km는 더 걷는 우회하는 길이기도 해서 아픈 왼쪽 발목 때문에 자신도 없었다.
금강을 벗어나 신탄진으로 진입하는 도로에 이르니 도시의 번잡함이 느껴지고 호수 유람의 기분은 사라졌다. 자연에서 인공으로 시야의 환경이 바뀌니 뇌는 바로 왼쪽 발목의 통증을 인지하는 거 같았다. 또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신탄진은 대도시는 아니라서 그런지 곳곳에 시골의 정취가 남아 있었다. 신탄진역에 도착하니 한낮의 더위를 피해 역전 버스정류장 한쪽에 한 무리의 할머니들이 금강에서 채취해온 다슬기며 뽕나무에서 딴 오디 등을 가져와 팔고 있었다. 광주리를 뒤집어 놓고 그 위에 좌판을 벌이고 손님을 맞는 모습이 애잔해보였다. 지금 시간이 오후 2시 47분, 할머니들이 오늘 다 팔고 갈수는 있을지 오지랖 넓게 괜한 걱정이 앞섰다. 청주 친구 집을 떠나 신탄진역까지 나는 지금까지 31km를 걸었다.
왼쪽 발목은 걸을 때는 참고 걷겠는데 쉬다가 걸으면 오히려 발을 디디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러다가 계속 걸으면 서서히 또 통증이 그냥 묻히고. 그래서 나는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대전시를 관통하여 흐르는 갑천으로 들어가기 위해 나는 17번 국도를 따라 대전 방향으로 걸어 내려갔다. 근데 이 도로는 보행로는 있으나 도로 좌우에 가게나 집도 없고 보행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도로 갓길이 있고 검색해 보니 이 길이 갑천으로 가는 직선도로 기에 나는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 나는 결국 경부고속도로를 밑에 두고 걸쳐져 있는 고가를 걷는 꼴이 되었다. 17번 국도는 이렇게 연결되어 차들은 이 고가를 지나 경상도 방향이다 전라도 방향이다 이곳저곳으로 잘도 달리는데 내가 딛고 있는 이곳 고가도로에서부터는 도로 갓길도 없었다. 분명 나는 17번 국도라고 한길로만 계속 걸어온 거 같은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라 조심스럽게 앞으로 걸으며 빠져나갈 길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고가 밑으로는 여전히 경부고속도로 상하행선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나처럼 걸어서 이곳에 서있을 사람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그런 길이었다. 위험하지만 기념으로 고가도로 중앙에서 아래쪽 경부고속도로 사진을 재빨리 한 장 찍고 멀리 보이는 갑천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길을 잘못 들은 건지 도로표지가 잘못된 건지 고가도로를 내려왔는데도 빠져나가는 인도가 안 보였다. 이제 보니 이 길은 자동차만 다니는 길이 분명한 듯했다. 난감해하며 2,3백 미터 더 걸으니 낮은 도로 방호벽이 나왔고 나는 무단으로 그걸 넘어서야 혼돈의 도로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다시 한적한 둑길을 하나 넘으니 갑천으로 걸어 내려가는 길이 나왔다. 어찌됐건 나는 2km 정도를 매우 위험한 도로로 걸었던 것이었다.
이제 갑천을 따라 걸으면 된다. 방금 전 혼돈의 도로 위에서 당황해하던 나는 넓고 안전한 갑천 강변길을 걸으며 우선 안도감부터 들었다. 방금까지의 긴장감에서 해방되고 보니 갑자기 또 왼쪽 발목이 아프기 시작했고 배낭도 무겁게 느껴지면서 여기저기 피로가 몰려왔다. 긴장할 땐 모르지만 긴장이 풀리면 그런가 보다. 온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듯했다. 지금까지 걸어온 거리는 37km. 왼쪽 발목의 통증을 때론 참으며, 때론 쉬며, 때론 아픈 사실을 일부러 잊으며 걸어왔다. 오늘의 야영지 둔산대교 밑 갑천공원까지는 6km밖에 안 남았는데 엄청난 피로감에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가끔씩 지나가는 라이더들의 파이팅 소리조차도 귀찮게 들렸다.
도보여행자는 몸의 신호를 잘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어떤 땐 하루 50km를 걸어도 거뜬한데 어떤 땐 20km에서도 피로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런 땐 자만하지 말고 신체의 신호를 따라야 한다. 마라톤에서 32~35km 지점을 지날 때는 신체의 탄수화물 에너지원이 고갈되기 시작하며 지방을 분해해서 근육에 에너지를 공급하는데 이때 신체 내의 밑바닥을 긁어내는 듯한 고통이 온다. 그게 경련으로 나타나는 것은 탄수화물이 고갈되어 지방을 분해하면서 발생하는 신체적 반응이고. 지금 내 몸의 상태가 몸속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긁어내면서 걷는다는 느낌이었다. 신체의 경고음을 무시하고 걷다가 더 큰 문제를 만날 수도 있는데.. 지금 나는 쉬어야 했다. 1,000km 국토종횡단에서 나의 신체를 돌볼 사람은 오직 나 한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나는 또 걸었다. 아니 목적지까지는 걸어야 했다. 갑천 원촌교 교각 밑까지 걸어서는 나는 거의 탈진 상태가 되었다. 다리만이 아닌 온몸이 쑤셨다. 왼쪽 발목을 신경 쓰며 자연스러운 보행을 하지 않고 짝 다리 발 디딤을 한 것이 피로를 가중시킨 듯 했다. 갑자기 배낭을 벗어던지고 싶어졌다. 나는 교각 밑 벤치에 앉아 배낭을 벗어 제켰다. 어깨가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배낭을 버리고 이대로 걷고 싶었다. 나는 배낭 속 물건을 하나하나 꺼내 버리기 시작했다. 우선 우산을 꺼내 버렸다. 그리고 500ml 생수 2개를 꺼내 한 모금만 마신 후 다 쏟아버렸다. 입맛이 없었지만 남은 초코바 2개는 에너지 보충 겸 해서 억지로 입에 쑤셔 넣었다. 그것도 배낭 가벼움에 일조할 듯이. 신발, 양말을 벗고 벤치에 누워 아픈 왼쪽 발목을 벤치 등받이에 걸쳐 올려놓고 한참을 쉬었다. 30분 정도 쉬고 나니 좀 나진 느낌이 들었다. 목적지는 코앞이었다. 나는 다시 걸어야 했다. 오후 늦은 시간이라지만 지는 태양의 햇빛도 따가웠다. 저 멀리 태양이 대전 시내 빌딩 너머로 기울고 있었다.
둔산대교 밑의 갑천공원은 수많은 사람들이 금요일 저녁시간을 즐기기 위해 나와 있었다. 산보하는 사람들, 운동하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사람들.. 그렇게 사람이 많은 곳은 나만의 시간이 훼방 받는 것 같아 나는 좌측으로 1.5km 더 걸어 공원 한적한 곳에 짐을 풀었다. 나만의 안락한 휴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힘든 몸을 이끌고 1.5km를 더 걸었는데 그나마 내일 걸을 방향과 같은 방향이었다. 텐트를 치고 야영 준비를 마치니 저녁 6시 반, 43km를 4.0/1h(쉬는 시간 제외)로 걸어서 6일 차 도보를 힘들게 마무리했다.
방금 걸어 지나온 둔산대교 밑 사람이 많았던 곳에는 공중화장실이 있었는데 이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텐트 안에 배낭을 밀어 넣고 인근 아파트 상가로 가서 물과 먹거리를 샀다. 다행히 상가 옆 초등학교가 있어 운동장 수돗가에서 간단히 세수를 했다. 쌀을 불리고 밥을 했다. 야영지에서 해 먹는 밥은 반찬이 필요 없는 꿀밥이다. 첫날 공릉천변에서 야영하고 오늘이 두 번째 야영이다.
35km 이후부터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걸었던 하루였다. 부은 왼쪽 발목도 걱정이지만 오늘부터 4일간 야영 계획이기에 매일 저녁마다 피로를 풀어줄 방법이 없다는 게 더 걱정이었다. 전신을 씻고 자는 것은 포기해야했다. 4일간은 목욕은 고사하고 고양이 세수라도 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내일을 걱정한들 무엇하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게 낫지.
1평도 안 되는 텐트는 욕심을 부릴 수도 없는 아주 작은 공간이다. 그저 누울 수만 있으면 된다. 작고 낮은 1인용 텐트다 보니 누우면 마치 내가 관속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텐트 높이가 1m, 누워있으면 좌우로 움직일 공간이 거의 없으니 텐트 면적이 관보다 조금 클 뿐이다. 이번 도보여행에서 텐트 속에서 잘 때마다 매번 나는 관속에 누워있는 나를 상상하며 내가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걷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함을 느꼈다.
대전 도심 속 갑천공원은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가로등이 반사되어 더욱 화려한 야경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텐트 안에서 오늘 하루의 일들을 정리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혼자만의 글을 쓰며, 오늘의 피로를 잊고 잠시 58살의 청년을 생각했다. 그 사이 나는 수첩을 베개 삼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
대전 도심 속 갑천공원은 쏟아지는 별들과 함께 가로등이 반사되어 더욱 화려한 야경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텐트 안에서 오늘 하루의 일들을 정리했다.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 혼자만의 글을 쓰며, 오늘의 피로를 잊고 잠시 58살의 청년을 생각했다. 그 사이 나는 수첩을 베개 삼아 나도 모르게 잠이 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