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편
하와이에서 반년,
중미에서 한달, 서촌에서 반년.
어느 생계형 직장인이
1년간 놀면서 되찾은
77가지 삶 이야기.
‘불’이라는 강렬한 단어에 ‘꽃’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더합니다. 거기에 ‘놀이’라는 흥겨운 단어까지 덧붙이면 ‘불꽃놀이’라는 근사한 단어 하나가 완성됩니다. 불꽃놀이는 이름만큼이나 실물도 참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나지요.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서 8시 사이, 힐튼 하와이안 빌리지 라군에선 여러 가지 불꽃이 새까만 하늘에 터집니다. 팡팡 터지는 소리와 불꽃을 보고 있으면 마치 하와이가 마이크에 대고 “여러분! 하와이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금요일 밤마다 그 격렬한 환영을 받으러 나갔지요. 불꽃은 제 앞머리를 태울 듯 눈앞까지 바싹 다가왔다가 금세 물러납니다. 그걸 하나라도 놓칠세라 눈 깜박이는 횟수를 현저히 줄이게 되지요. 한강의 불꽃놀이에 비교하면 규모도 스킬도 단출합니다만 그래서인지 저에겐 화려한 수식어를 다 걷어내고 사랑한다 고백하는 자의 어떤 진심 같은 게 이곳의 불꽃에게서 느껴집니다(저의 편애가 덧붙여지긴 했지만요).
하와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꽃다발을 들고 저를 반겨주는 사람, 당연히 한 명도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계속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은 반년 뒤 하와이를 떠나는 날까지 계속되었지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환영'의 정체는, 골목이든 해변이든 버스정류장이든 어디든지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활짝 웃으며 “Hello”, “Hi”, “Good morning”을 건네는 사람들. 그것이 제겐 꽃다발 같았습니다.
본래 저는 어색함을 극도로 싫어해서 시선을 멀리 두고 길을 걷는 사람입니다. 행여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말이죠. 어쩌다 눈이 마주쳤을 때 재빨리 서로의 시선을 피하는 찰나가 못 견디게 민망하고 불편했거든요. 제 옆으로 연예인이 지나가도 누가 가르쳐주지 않는 이상은 몰랐습니다. 길에선 사람 얼굴을 전혀 안 보니까요. 그러던 제가 하와이에 와서는 멀리 두던 시선을 맞은편 걸어오고 있는 사람 가까이에 두게 되었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치면 상대는 시선을 피하는 대신 “Hello”를 건네니까요. 제가 “Hi”로 답례하면 환한 미소를 돌려주니까요. 우리는 일면식 하나 없는 사이지만 그렇다고 또 100퍼센트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는 느낌. 보이지 않는 가늘고 투명한 실로 서로서로 ‘연결’되어 있는 느낌. 참 편하고 따뜻했습니다. 한두 달이 지나자 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먼저 눈을 마주치고 Hi를 건네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7개월 뒤 한국에 돌아와서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추워진 날씨나 나빠진 공기가 아니라 거리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잠깐 눈이 마주치면 너와 나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선을 긋는 듯한 무표정. 저는 다시 시선을 멀리 두고 걷게 되었고 길 위의 사람들과 도로 어색해졌습니다. 하지만 저 나름의 환영 인사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조금씩 계속하고 있습니다. 버스 기사님께 “안녕하세요”, 택배 아저씨께 “조심히 가세요”, 인왕산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어린 경찰에게 “수고 많으십니다!”, 도서관 직원에게 “수고하세요~”
하와이에서 제가 받았던 수많은 환영인사, 그것이 주었던 따뜻함을 여전히 주고받고 싶어서 낯가림 많은 숙맥이 입을 떼 봅니다. 이렇게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