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창에서 ‘단호박 가루’를 검색했다. 어떻게든 야매 요리로 단호박 수프를 만들어 보이겠다는 심산이었다. 요즘은 없는 것이 없는지라 적당히 후기와 평점이 좋은 ‘단호박 100%’ 가루를 골라 주문했다.
단호박 가루를 듬뿍 붓고 우유를 적당량 넣고 냄비에서 끓이며 계속해서 저어주기. 마지막에는 처음으로 구입해 본 파마산 치즈를 솔솔 뿌렸던 것 같다. 대략 그럴듯하게 완성은 했는데 벌써 몇 년 전 일이라 결과물에 대한 인상이 제대로 떠오르지 않는다. 약간 맛이 약했던 것 같기도 하고, 가성비가 생각보다 영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생각보다 괜찮았는데 그냥 그마저도 다시 하기가 귀찮아서 그것으로 끝을 냈는지도 모른다.
직접 만들어 먹으려는 시도까지 했다는 것은 단호박 수프를 상당히 좋아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위안을 주는 음식이 있는데 내게는 단호박 수프와 호박범벅이 그것이다.
단호박 수프는 파란 그릇에 먹어야 제 맛이다. 노란색과 파란색의 조화는 언제나 예쁘다. 고명으로 연두색 호박씨까지 두 개 정도 올려주면 금상첨화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먹어보지는 못했다. 수프라서 그런가 왠지 레스토랑에도 어울리고 세련된 느낌이다. 스푼으로 떠서 입에 넣으면 달콤하면서도 녹진한 특유의 단호박 맛에 겉으로든 속으로든 ‘음~’ 소리가 절로 난다. 한 숟갈, 두 숟갈 뜰 때마다 몸이 따뜻해진다.
제대로 된 단호박 수프는 늘 엄마에게 신세져 왔다. 소분한 단호박 수프를 냉동한 뒤 ‘먹겠냐’는 연락이 오면 사양하지 않는다. 회사에서 돌아와서 편하게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라는 취식법도 꼭 한 번 듣는다. 좋다고 가져오고는 한동안 냉동실에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힘든 날 퍼뜩 생각나서 전자레인지에 돌려먹곤 한다.
너무 귀찮을 때가 아니면 가능한 예쁜 그릇을 찾아 옮겨 먹는다. 단호박 수프와 딱 맞는 파란 그릇도 있다. 특히 여기저기 치인 날에는 나라도 나를 대접해주자는 생각으로 심사숙고해서 고른 그릇에 단호박 수프를 붓는다.
엄마표 단호박 수프의 핵심은 ‘물 한 방울 없이’에 있다. 단호박을 삶아 부드럽게 한 뒤 으깨거나 핸드 블렌더를 이용해 우유와 섞어 끓여준다. 눌어붙지 않게 계속해서 저어 주어야 한다. 그날의 선택에 따라 단호박 껍질이 함께 들어가기도 해서 초록색 입자가 섞인 단호박 수프가 되기도 한다.
지친 날 떠오르는 음식으로 호박범벅도 빠질 수 없다. 역시나 직접 해본 적은 없기 때문에 레시피는 대충 짐작만 하다가 최근에서야 알아보았다. 팥과 각종 콩을 푹 삶고, 늙은 호박도 푹 익혀서 으깬다. 늙은 호박으로 죽을 만들어 삶은 콩들을 와르르 넣고 찹쌀가루도 섞어 되직하게 끓여낸다. 고구마나 밤을 넣기도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주로 콩이 가득한 호박범벅을 먹어왔다.
노란 바탕에 여러 색깔 콩이 있는 것도 예쁘고, 왠지 비 오는 날이나 추워지는 날 먹으면 몸속부터 데워지는 느낌이다. 약간 걸쭉하면서 부드러운 느낌도 좋고 여러 크기의 콩들을 알알이 씹는 재미도 있다. 단호박 수프와는 달리 한옥이 잘 어울리는 느낌. 비가 와서 처마에서 물이 떨어지는 한옥이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한겨울에 따뜻하게 데운 아랫목, 소복이 쌓이는 눈과도 궁합이 맞는다.
나에게 토닥임을 주고 싶을 때 해볼 음식으로는 이 두 가지가 1순위다. 난이도를 고려할 때 단호박 수프를 먼저 해 볼 가능성이 크다. 단호박 가루 구입보다는 좀 더 나아가 제대로 해 볼 생각이지만 그래도 단호박 수프는 좀 더 쉽게 해 볼 여지가 있다. 단호박은 유리 그릇 안에 넣고, 다시 유리 그릇으로 덮은 뒤 전자레인지에 5분 정도 돌려서 손쉽게 익혀 본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단호박 익히기 단계를 이렇게 쉽게 해결하고 나면 약간의 끈기를 같고 다음 단계를 해내면 된다.
조금 더 나이가 들고 요리 실력이 늘면 호박범벅도 도전해 보려 한다. 약간 추운 날 빨간색 강낭콩은 꼭 넣고 흰 그릇에 담아내어 봐야지. 내가 힘든 날보다, 내가 사랑하는 누군가가 지쳐 보이는 날 소매를 걷어붙이고 시도해 볼 것 같다. 내가 위로 받았듯 나 또한 온기를 선물해 보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