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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 Dec 13. 2021

어떻게 쓰지?

방향성을 잃어버리다. 그리고 이승윤의 들려주고 싶었던

내가 감히 작가가 될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심하고 고민하던 나날이 있었다. 인터넷 초록창에 이러한 나의 고민이 여러 단어로 채워지길 여러 번. 그중 한 줄기 빛과 같았던 답변이 있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진행한 정유정 작가님께서 대중의 질문을 받아 답변했던 내용 중 하나였다. 질문은 이제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소설 쓰기 연습방법이었으나 작가님의 답변은 나의 내면에서 스스럼없이 결정을 내리고 남들에게 글을 공개할 수 있게 용기를 주었다.                                                                                                    

첫걸음은 자신이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죽음에 직면한 인간에 대해 평생토록 이야기했습니다.
디킨즈는 가족에 대해 썼고요. 스티븐 킹은 인간 심연에 도사린 공포에 대해 반복적인 변주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고 싶은 말’이란 작가의 테마입니다.
그것을 먼저 알아내야겠죠. 할 말이 없는 작가는 쓸 말도 없기 때문입니다. (후략)

-N사 지식in 공개된 정유정 작가님의 답변 중 일부 발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나?

글이 두서없이 쓰이고 있었다. 폭포처럼 쏟아내리는 온갖 생각들을 문장으로 옮겼으나 전체를 읽어보면 하고자 하는 말이 너무 많아 맥락 없이 나열된 문장의 연속일 뿐이거나 어느 날은 감정이 폭주하여 쓰고자 했던 방향이 확 틀어져버려 처음 의도와는 다르게 쓰인 글이 되기도 했다.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생각과 정서의 나열이 열거되는 문단에 압사되고 있었다.


글에 여백을 두자며 열심히 삭제 키를 누르면서 아까운 자투리 문장을 모아두며 퇴고하던 지난날이 무색해진다. 마치 방망이를 깎는 노인같이 신중히 깎고 깎아 다듬질하기 좋은 두툼함과 손에 착 감기는 손잡이를 깎아내고 싶었다. 그런 장인이 되고 싶었는데, 그냥 생각이 많아 정리되지 않은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엉켜 있는 가시 넝쿨들이 많긴 해
뒤얽혀 있는 가사들을 꺼내야 해
그리고 불러야 해
네가 들을 수 있도록

-이승윤, 들려주고 싶었던


신나는 멜로디에 맞춰 액셀을 밟다 가사에 귀에 들어왔다.

엉켜 있는, 뒤얽혀 있는 

지금의 나를 드러내 주는 서술어였다. 동시에 부끄러워졌다. 가사 쓰는 이가 찾아낸 저 동사를 지금의 나는 시의적절하게 끄집어내어 문장에 넣을 수 없다.

글을 쓰고 싶다며. 꼴랑 그거밖에 안 되는 어휘량으로 글을 쓰겠다고?! 소재가 없어서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했다. 맞춤법, 띄어쓰기를 정확하게 구사한다 할 수 있나? 단어랑 어휘가 풍부한가? 어느 앱 프로필에 '단어채굴가'라 적어놓고는 실제 채굴량이 거의 0에 가까웠다.


글쓰기는 진실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기본을 놓치고 있었다.

읽다만 책의 더미에 먼지가 쌓여 있었다. 물티슈로 묵은 먼지를 훔치고 뭘 읽을지 보았다. 짧게 짧게 읽을 수 있는 단편이 모여있는 젊은 작가상 수상집을 집어 펼쳤다. 재미있었다. 글이 재미있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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