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건너 현재를 지나 미래는

영화 여중생A. 현실 속 판타지 게임같은 영화.

by 서영

※ 저는 원작을 보지 않고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원작을 모르는 분들이 참고하시면 좋은 후기입니다.


조용히 교실 뒷줄에 앉아 수업을 듣고 글을 쓰다 같이 급식 먹을 친구가 없어 도서실 한 쪽에서 컵라면을 후루룩 먹는다. 홀로 책을 읽으며 시간을 채우다 집으로 돌아와 내 방문을 걸어잠그고 컴퓨터를 켜 온라인 게임을 한다.

오늘 학교에서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게임 아이템을 결제하여 게임 속 친구들과 필드를 누비다 술 취해 들어오는 아버지의 소리에 후다닥 컴퓨터를 끄고 방 구석에서 덜덜 떨다 잠이 든다.


주인공 미래의 일상은 난이 꽃을 피우기 위해 땅이 갈라지는 정도의 갈증을 견뎌야 하는 고난이다. 체육시간에 같이 체조할 짝궁도 되기 싫어하는 같은 반 친구들의 무시는 그의 한껏 어깨를 움츠리게 만든다. 그나마 온라인 게임 속에서 백발명중 명사수 다크가 되면 잠시 숨을 돌릴 수 있다. 쉬이 표현하기 힘든 내면은 상상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노트 안에 꾹꾹 눌러 채워가며 표출한다. 이런 미래가 누명을 쓰면서 존재에 대한 슬픔에 빠지던 그 때, 게임 속 친구였던 희나와의 시간이 시작된다.


내용은 미래의 학교생활, 교우관계, 집안 등을 비추며 조용히 진행된다. 배경이 2005년이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 전 중학생이었던 나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반 아이들의 모습 또한 내가 만났던 아이들 같으며, 선생님의 대응도 비슷하다. 모두가 은근히 무시하는 반 아이를 보다 '쟤는 학교생활이 어떨까? 학교 오는 게 매우 싫지않을까?' 라는 의문이 머리를 스치고 사라졌던 중2 어느 날이 떠올랐다. (나 또한 살아남으려 발버둥쳤던 학창시절이었기에 말 한마디 걸지 않고 결국 방관자로 남았지만...) 그러는 한편 나의 경우는 아니지만, 신문기사로 보았던 내용이 일상 속에 녹아들어있다. 생리대 살 돈이 없어 절절매는 모습, 친구들에 의해 화장실에 갇힌 모습을 보며 내가 외면했던 학창시절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화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중학생 미래를 중심으로 같은 반 친구들인 태양, 백합, 노란이가 큰 비중을 차지하며 유명 배우 이종혁 님은 담임 선생님 역을 맡아 영화 속을 가벼이 어슬렁 맴돈다. 심지어 미래 엄마 역을 맡은 김정화 님은 몇 컷 등장하지 않는다. 중학생의 일상과 내면을 그린 영화이기에 학생 역할을 맡은 어린 배우들의 연기력과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캐릭터의 자연스러움이 중요하다. 중학생은 어린이의 순수함과 아직 여물지 않은 성숙함이 공존하는 인생에서 몇 안 되는 애매한 시기이다. 그래서 한 눈에 중학생이라 알 수 있는 외형을 가진 연기력이 출중한 배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좋은 고지를 선점 했다. 주인공 미래 역에 곡성의 김환희 양이 캐스팅 되었을 뿐만 아니라 굵직한 작품에 출현했던 10대 아역 배우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옥중화의 정다빈 양, 4등의 유재상 군) 개인적으로 가장 적절한 캐스팅은 재희 역의 엑소 수호 님이다. 극 중에서 재희가 몇 살인지 뭐하는 사람인지 정확히 묘사되지 않는다. (극 진행에 있어 전혀 필요하지 않기에) 대략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정도로만 나오는 비밀스러운 친구인데, 인기 아이돌로서 갖고 있는 신비로움은 극 중 미래에게 신데렐라의 드레스와 같은 꿈같이 함께 하는 시간을 표현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생각한다.


표현이나 촬영에 있어 재미있는 점은 우선 미래의 게임 캐릭터를 같은 친구 역할의 배우들이 연기했다는 점이다. 한때 온라인 게임을 열심히 했던 유저로서 게임 속 세상이 현실과 크게 차이나지 않음을 잘 안다. 중학생 소녀 미래가 남자 궁수 다크이고, 성인 남자인 재희가 아름다운 눈의 여왕 희나였어도 그들의 우정은 함께 게임하고 대화하며 쌓여간 시간 속에서 만들어졌다. 어쩌면 학교생활도 일종의 온라인 게임이 아닐까?!

다음으로 미래가 유서 대신 재희에게 교복을 입고 태양이처럼 적어온 대사를 읽어달라 상황극을 부탁하는 장면이다. 길거리에서 읽어달라 부탁하지만, 마치 연극무대처럼 둘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주며 상황극을 하면서 미래의 상처받은 마음을 비로소 토해내는 모습은 심리치료의 한 장면 같다. 내면에 깊이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드디어 말이 되어 눈물어린 꽃을 피우듯. 그래서 재희는 위로의 말보다는 용기의 말을 해주었나보다. 나한테 하는 건 가짜잖아. 가짜로 하지말고, 진짜로 해.


이 영화는 사실적 묘사로 시작해 판타지로 끝난다.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나의 책상만큼의 공간에서만 편히 숨쉬고 살았던 미래는 탁 트인 지하철 벤치에 앉아 편히 이야기 한다. 학창시절 절대 저리 될 수 없을 거라 여겼던 그 모습으로 엔딩을 그리며 올라가는 자막에서 나는 중학생 시절을 참으로 오랫만에 떠올려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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