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앙스포 교환학생 일기 #10
유럽에서는 종종 처음 보거나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과도 굉장히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진로, 인생, 인간 등에 대한 고민. 자유로운 유럽의 분위기 때문일까, 아름다운 풍경 때문일까, 아마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자주 볼 일이 없을 사람이라서일까, 나도 상대방도 들어줄 여유도, 말할 여유도 있는 정신이 평온한 상태이기 때문일까.
모두가 참 열심히 산다. 각자 다른 방법으로, 다른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히 산다. 이건 사실 여행에서만 느낀 점은 아니긴 하지만.
각자 다른 방법으로, 다른 목적과 가치를 추구하며 열심히 산다.
교환 오기 전 내 주변의 사람들도 그렇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의 pool은 좁다. 물론 그 안에서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은 정말 정말 많고 훌륭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도 셀 수 없다. 그렇지만 굉장히 좁은 풀이고, 그 안에 갇혀서 살다 보면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유럽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며 생기는 인연의 끈, 파리에서 만나게 되는 한국인이나 외국인들 모두 내가 만나던 사람들과는 훨씬 다양한 배경 속에서 살아왔다.
그런 사람들에게 듣는 인생 이야기, 인생 고민들은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의 고민은 다 비슷하다는 점, 그리고 너무 새롭고 다양한 고민의 방향들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어 감사하다.
누구를 만나든 첫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친밀감이나 깊이는 다르다. 첫 만남에서부터 그 사람의 살아온 과정, 현재 살아가는 방식, 가치관 등을 알 수 있는가 하면 오랜 시간 함께 있었어도 그 사람의 기본 인적사항 정도만 파악하게 될 수도 있다. 함께 하는 시간과 상관관계는 있을 수 있지만 시간이라는 변수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는 않다. 또한 한 사람에 대해 첫 만남에서 절대적으로 많이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기 전까지는 상대적으로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애초에 한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안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가까워지려면. 또, 일생에서 한 번 만난 사람을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만나게 되는 경우에 비해 훨씬 많을 것이다. 그렇기에 스쳐가는 인연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다면 할 말이 없지만, 오히려 그 많은 인연들과의 얕은 추억이 모이고 모여 특정 장소를 방문한 경우 그곳의 추억을 책임지게 된다.
누구를 만나든 첫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친밀감이나 깊이는 다르다.
그렇기에, 내가 포르투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 너무 소중한 기억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포르투를 추억할 때는 입가에 민소가 번질 것 같다.
가장 처음 갔던 레스토랑에서 hola! 를 외치며 반갑게 악수를 해준 웨이터, 와인 테이스팅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서 첫 만남에서부터 본인이 부인에게 프러포즈를 한 장소와 방식을 공유해준 우버 기사, 그리고 우리의 모습과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담아주신 두 사진작가님까지. (사진작가님들과의 인연도 참 감사하고 신기하다. 우리가 스냅사진 촬영을 부탁드린 포르투의 작가님께서 그다음 날 야간 촬영 포트폴리오를 위해 사진을 찍을 수 있겠냐고 제안하셨고, 셋째 날에는 우연히 그 날 포르투에 여행 오신 작가님과 컨택이 닿아 개인 작업용으로 사진을 또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3일 연속으로 예쁜 사진을 많이 간직할 수 있게 된 우리는 참 감사할 따름.)
물론, 포르투에 있는 동안 유일하게 날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가 함께했다는 점도 너무 감사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온갖 활동을 함께 한 친구이기 때문에 약 3년 간 보고 지냈다. 그 3년 간 차곡차곡 누적된 친밀도가 여행을 통해 더욱 두터워진 기분이다. 친구에 대해 몰랐던 점을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퀴즈를 맞힌 듯했고 너무나 행복한 순간을 함께 공유할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친구라서 더 만족스러웠다.
이 모든 사람들 덕분에 파리에서부터 큰 가방 하나 메고 온 포르투에서의 3일은 더 풍요로워졌다. 어디를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누구와 가는지,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도 참 중요하다. 타고난 인복에 감사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오래도록 좋은 기억으로 간직될 포르투에서의 기억들.
어디를 가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누구와 가는지, 가서 누구를 만나는지도 참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