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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Jul 09. 2024

어느 날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면

[독서기록] 나는 오늘부터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편석환

저자는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교수다. 어느 날 목건강이 안 좋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목 건강을 되찾는 법은 다름 아닌 묵언.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말을 못 하게 되었다. 이 책은 43일 간 묵언하며 느낀 저자의 일기 모음이다.



묵언을 하면 뭔가 거창하게

인생철학을 고민할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그저 말 없는

또 다른 일상일 뿐이다.

아직은 그렇다.

다만 다른 점을 든다면

묵언을 하기 전에는 나보다 남이 먼저 보였는데

이제는 남보다 내가 먼저 보인다.

나를 먼저 보니 남이 훨씬 더 잘 보인다.

이 간단한 것을 왜 몰랐을까.


말로 누군가를 상처 줄 때가 있다. (솔직히 많다!) 후회하며 말 수를 줄인다. 결국 다시 말을 많이 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적어도 말을 줄이는 동안은 내 생각을 곱씹을 때가 더 많았다.


다양한 의도로 말을 하는데, 내 의도를 오롯이 잘 전달한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마 내 생각을 좀 지켜보고 정리할 시간, 다시 말해 침묵의 시간이 부족해서인 건 아닐까. 글을 쓰는 오늘 하루라도 말을 줄여보며 진짜 나를 들여다봐야겠다.





평소 우리가 말을 하고 살아가는 것 같지만 실제는 말의 지배를 받고 있다. 뱉은 말에 대한 책임부터 타인과의 말 경쟁, 스스로의 말꼬임까지 가만히 있으면 벌어지지 않을 일들이 말을 함으로써 벌어진다. 내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한 말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면 말로부터 자유로워져야겠다.


못 지킬 약속은 하지 말자. 어제도 되뇐 다짐이다. 내가 뱉으면 주워 담아야 한다. 내 신용도 그렇게 쌓인다. 지킬 수 있는 말을 예쁘게 잘 전달하고, 책임지는 삶. 지금 내게 너무나도 필요한 자세다.





말은 뱉는 것이 아니라 수렴하는 것이다. 말은 욕망의 창끝과도 같아서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내가 뱉은 말이 어떤 이에게는 뾰족한 창이 되어 상처를 낼 수도 있다. 때론 말은 무한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위안과 상처의 경계에서 말을 뱉어 찌르기보다 수렴해서 위안을 주는 법을 잘 배워야겠다. 


모든 화火의 근원은 말에서 나온다. 화를 다스리고 지키는 최선의 방법은 말을 아끼는 것이다. 말을 안 한다는 것이 쉬울 듯하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요즘 들어 성숙함을 판단하는 척도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는지에 달렸다는 생각을 한다. 책에 쓰였듯, 말은 창 끝과도 같다. 뾰족해서 언제든 누군가를 찔러 상처낼 수 있다. 사업의 성공, 우정, 대의 등 의도가 합의되었고 아름답더라도 말은 늘 상처를 줄 수 있는 무기다.


특히 화. 화를 내고 후회하지 않은 적이 있던가. 참으라는게 아니다. 그 순간 말을 줄이자. 그뿐이다.




지자불언 언자부지知者不言 言者不知.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말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아니하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절제하고 덜어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이하고 싶어도 줄이고, 더 먹고 마시고 싶어도 참을 줄 아는 사람. 일도 마찬가지로 늘여놓기보단 현명하게 선택하고 집중하는 사람이고 싶다.


2024년 하반기가 시작됐다. 굉장히 변화가 더 많을 하반기를 앞두며 어제보다 말이나 행동을 삼가고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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