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도 없는 인생 살기
나는 운동을 못한다. 그래서 군대에 있을 때 선수로 뛰기는커녕 연병장에 축구장을 그리는 것이 내가 졸병이었을 때의 임무였다.
일단 주전자의 물로 축구장의 엔드라인과 사이드 라인 그리고 하프라인에 맞게 선을 긋고 그 위에 하얀 가루를 부으면 축구장이 완성된다. 그리고 모든 선의 기준은 이미 정해져 있다. 예를 들면 외쪽에 있는 플라터나스 나무가 왼쪽 엔드라인이자 사이드 라인의 시작점이 된다.
이제 주전자의 물을 똑바로 붓고 그 위에 하얀 가루만 뿌리면 편하게 앉아서 옆 중대와의 아이스크림 내기 축구를 즐기면 된다. 조심조심 발 밑만을 보면서 선이 삐뚤 어질까 봐 조심을 하면서 똑바로 절반 정도를 그리고 허리를 펴니 엔드라인과 사이드라인의 시작점인 플라터나스 나무가 정면이 아닌 왼쪽으로 보인다.
이상하다 분명히 발밑을 보면서 똑바로 선을 긋고 왔는데 왜 플라타너스가 왼쪽으로 보이지?
나는 모든 운동을 못한다. 축구뿐만 아니라 스키도 못 탄다. 그러나 타고 싶었다.
열심히 강습을 받곤 했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슬로프에서 내려오면서 턴을 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이었다.
왼쪽으로 돌려면 오른발 스키에 에지를 주어서 양 발의 속도 차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넘어지고 구르고 스키는 자꾸 벗겨지고....
이런 과정이 지나자 편하게 턴은 되는데 짧은 턴을 하면서 내려오는 것은 역시나 어려웠다. 스스로는 멋있게 타는 것 같은데 핸드폰으로 찍어 보면 폼이 뭔가 이상하다.
같이 타던 전직 국가대표 출신의 동료가 인심 쓰듯이 던진 한마디 " 턴 할 때 아래 슬로프를 봐야지 급한 마음에 돌라고 하는 왼쪽이나 오른쪽을 보면 안 돼. 사람들은 최종 목적지인 슬로프 끝을 봐야 하는데 당장 턴하는 것에 급급해서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문제야." 턴을 하는데 도는 방향이 아니라 목표점인 슬로프 끝을 보라니 의심은 들었지만 해보니 턴이 훨씬 쉽고 자세도 안정적이다. 눈 앞에 원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는 게 아니라 궁극적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은 조준되어야 한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살고 있는 우리에게 가끔"내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구심에 안달하지는 않고 있는지? 하루하루 지내는 생활에 너무 많은 의미를 두고 " 오늘도 똑바로 살자, 하루하루 충실하게" 이런 생활 태도를 미덕처럼 여기며 살고 있지는 않은가? 하지만 오늘 하루 잠시 방향을 잃어버린다고 삶의 목표에서 멀어졌으면 얼마나 멀어졌을까?
중요한 것은 나의 목표를 항상 기억하며 그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눈 앞에 것만을 보면 내가 어디에 있는 지를 모른다. 지금은 조금 삐뚤어져도 목표를 계속 보고 나아가면 전체적인 궤적은 목표를 향해서 일직선이 된다. 여러 사정으로 잠시 돌아 가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조금 피해 가도 목표를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목표를 찾아가게 된다.
오늘은 조금 삐뚤빼뚤해도 괜찮아 , 잘 살고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