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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ami Jun 02. 2024

[서평] 익숙한 것과의 결별

꾸역꾸역 삶을 살아내고 있는 당신에게

언제나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제 내가 되고 싶다. 일상을 살아가면서 늘 더 좋은 존재가 될 수 있으며, 늘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리고 항상 지금의 자기 자신보다 나아지려고 애쓰다 보면, 나는 언젠가 나를 아주 좋아하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후기에 누가 써놓은 이 글귀 때문이었다. 최근 내 삶에 많은 변화를 경험하고 있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졌기에 더더욱 이 글귀가 마음에 와닿았던 것 같다. 


위 문장만 보면 이 책이 자기 계발서라 생각하겠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책 초반엔 기업 경영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뤄 나 또한 계속 읽어야 할지를 고민했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가 아닌 경영서이다. 다만 기업에서 개인까지 그 범주가 넓을 뿐이다. 


이 책은 1998년에 출판되었다. 외환위기로 사회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을 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건, 책의 내용이 지금 읽어도 전혀 이질감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실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가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개인은 1인 사업자 입장으로 일을 하며 자기 경쟁력을 늘려야 한다는 점, 자기 일만 잘하는 것이 아닌 여러 부서의 일을 경계 없이 알아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이는 경제 침체로 실업자와 희망퇴직자가 증가하고 AI로 인해 일자리가 대체되고 있는 지금 상황에도 맞는 조언이라 생각한다. 이 책이 초판 된 때도 외환위기와 함께 IT기술 발전으로 실업자 수가 늘어난 때였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이런 상황은 앞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 책이 지금까지 롱런하며 10주년 개정판이 나올 수 있었던 이유다. 


실업에 대한 사회적 해결은 매우 어려운 과정을 거칠 것이다. 이에 대한 총체적 해결은 아마 환경 문제만큼이나 풀기 어려울 것이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이 경쟁의 어려움을 들어 감원을 결정하였다 하자. 노동조합은 기업의 감원 조치에 반발한다. 기업은 곧 차선책으로 임금의 총액을 동결하는 입장을 취할 수 있다. 

1990년대 동안에만 미국에서는 3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줄어든 것으로 집계되었다. 일부는 국제 경쟁의 격화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술에 의한 실업이었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경기 순환적인 일시적 실업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들은 경기가 좋아지더라도 재고용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내가 눈여겨본 것은 "기술에 의한 실업이 경기 순환적인 일시적 실업"이 아니라는 부분이다. 지금도 그렇다. 경기가 좋아진다고 기술에 의한 실업자가 다시 재고용되긴 어려울 것이라 본다. 그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적으로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변화를 인정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창출해 가는 것이다. 이것은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기계는 당신보다 수십 배 수백 배 힘이 세다. 기계와 경쟁해서는 승산이 없다. 당신이 창조하는 가치가 유일한 것이고, 전문적이며, 노동의 대체가 어려울수록 당신은 안정적이며, 더욱 윤택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 특징을 '지식 사회'라고 규정하는 이유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변화를 인정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사실 이는 우리 주변에도 이미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회사를 다니면서 유튜브를 한다거나 글을 쓴다거나 개인의 취미를 살려 투잡을 하는 일이다. 다만 그전에 이 책에선 회사에서 내 업무 변화를 이야기한다. 


현재 많은 기업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회사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개인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주어지는 체계가 정착될 것이다. 즉 특정 그룹의 직원을 모두 집합시켜 그 그룹에 기여한 가치에 따라 서열을 정한다. 이 가치를 결정할 때 각 직원의 일은 고려되지 않는다. 주어진 일이 무엇이든 그 그룹 전체에 대한 총체적 기여도를 기준으로 서열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대안이다. 


이 책에선 "부서 조직이란 사람을 관리하기 위한 것이지 일을 하기 위한 구조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일을 수행함에 있어 부서적 연대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범부서적 연대와 협력이라는 것이다. "나는 나의 일만 하면 된다."는 애덤 스미스의 분업 원칙은 산업 혁명 시대 초기의 원칙이지 지금 시대와는 맞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나 또한 이에 크게 공감했다. 최근 채용 시장에서 자격 요건을 보면 코로나 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걸 실감한다. 서비스 기획자 영역에선 여러 부서와 협업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PO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마케팅 영역 또한 하나만 잘하는 것이 아닌 여러 부서와 협력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그로스 마케터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기업은 앞으로 더더욱 부서와의 구분을 없애고 여러 부서와 협력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중요시할 것이다. 


사라져 가는 직장에서 끝까지 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는 것은 자신을 크랙 속으로 자꾸 밀어 넣어 바위틈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겁먹은 암벽 등반가와 같다. 위험해 보이지만 자신의 손과 발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바위의 바깥쪽으로 나오지 않고는 바위를 기어오를 수 없다. 


무조건 직장을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다. 관점을 달리하여 일을 하라고 한다. 내가 1인 사업가가 되었다 생각하고 회사와 1년 계약해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라는 것이다. 회사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기 위해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신용이 깊어지면 회사와의 계약이 연장되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 해도 상관없다. 퇴사해서 1인 사업가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작정 직장을 뛰쳐나오라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들은 결코 경솔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준비를 서두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활용할 수 있는 수요를 찾아내는 일에 부지런하다. 스스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떠한 상황에 놓이든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란, "주도적인 성향의 사람"일 것이다. 수동적인 사람이라면 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안 되는 이유를 열거하며 합리화하고 불평할 것이다. 그들은 그저 변화가 두려울 뿐이다. 나는 이런 류의 사람을... 정말 많이 보아왔다. 이런 사람들은 10년 뒤에도 똑같은 자리에서 투덜거리고 있을 것이다. 이 책에선 중요한 건 "개인의 주도권을 회복하는 것"이라 말한다. 자기 주도적으로 인생을 설계하는 것이다. 이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익숙한 것과 결별할 용기"를 갖게 된다. 


이 책의 중반부터는 개인이 어떻게 해야 될 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내가 느끼기에 좀 모호하고 추상적인 부분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종이에 좋아하는 것을 써보자, 여행을 가서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돌아보자 등이다. 그런 부분들을 여기에 쓰진 않겠다. 나 또한 회사를 다닐 때 혼자 만의 시간을 가져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써보기도 했지만 그게 변화가 시작되거나 재능을 발견한다거나 미래 계획을 세우는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나는 변화의 시작점은 각자 다 때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다만 공감됐던 키워드는 "욕망"이다. 욕망이란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또는 그러한 마음이다. 책에서 마지막에 나에게 쓰는 시간을 2시간이라도 오롯이 가져보라고 한다. 내 욕망을 키울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나는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내가 가진 자산이 여유로워야 내 마음도 여유로울 수 있다 생각하고 이는 내 가족, 내가 정말 아끼는 사람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런 나의 욕망을 위해 경제 공부를 하고 투자를 한다. 투자는 투기가 아닌 건강한 투자를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하루에 평소보다 조금 일찍 일어나서 2시간은 경제기사를 보고 지표 추이를 확인하고 경제에 관한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공부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욕망이 "타인으로부터 나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강조하는 부분이다. 예를 들어 타인이 정하는 좋은 기준, 좋은 직장을 나오고 비싼 차를 사고 등등이다. 이는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타인이 아닌 나로부터 나온 욕망, 그리고 이를 위한 나만의 시간과 성장은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타인의 기준에 따른 욕망과 다르다. 


보잘것없던 사람들이 어느 날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자신이 그동안 오리가 되고 싶은 한 마리의 백조였음을 발견할 때부터이다. 다른 사람과 자신의 다른 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 상냥하게 대하면서부터 그는 더 이상 오리가 되지 못하는 미운 오리 새끼이기를 그만두게 된다. 


우리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현재의 시간을 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누군가는 속에서 무언가가 움트는 것을 느끼며 조금은 설레길 바라는 마음이다. 처음 시작한 것과 같이 책을 읽으며 와닿았던 구절을 쓰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삶은 '그저 생존하는 것' 이상의 것이다. 생존이 우선적 문제가 될 때 우리는 비참해진다. 진정한 실업은 청춘을 바친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은 평범한 사람인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사람 역시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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