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프롤로그

by Andy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만드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지시한 땅, 즉 가나안으로 가라 명하셨고, 그곳에서 후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겠다 축복의 약속을 하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과 동행하시며 하나님을 경험케 하시고 신뢰할 수 있게 하셨다.

그 신뢰함 가운데 아들 이삭을 주셨고, 하나님은 이삭에게도 함께하시며 좀 더 발전적인 관계로 이끄신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후손들로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 축복의 약속을 하신다.


그리고 야곱, 야곱에게는 마냥 함께 하시고 위험을 제거하시며 돌보시고 축복하지 않으셨다.

바라는 바를 얻기 위해 궁리하고 시도하고, 더 나아가 고생하고 극복하는 야곱의 기질을 극대화해 발현시키되 결국에는 하나님을 붙잡는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사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신다.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과 그중 요셉이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망나니 같은 삶을 사는 아들들 가운데 요셉이 있다.

이 망나니 같은 아들들과 요셉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주시며 어떤 삶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의 모습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신다.


특별히 요셉을 통해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는 다른 차원의 함께하심과 형통케 하심을 보여주신다.

망나니 같은 형들에 의해 노예의 신분으로, 하나님의 뜻을 지켜 따르다 죄인의 신분으로 추락하는데 그 상황이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고 하나님의 형통케 하심이라 하신다.

요셉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했다. 그 결과가 노예이고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히는 것이어도 원망함이나 불평함도 없이 늘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이런 요셉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이 내재되어 그 말씀을 지켜 사는 삶임을 가르쳐 주시는 것이라 보여진다.

즉 하나님나라의 백성은 나의 바람이나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따르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체가 목적이고 만족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요셉을 통해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원형을 완성하셨다.


의아한 것은 이렇게 아브라함을 선택해 관계를 맺고 대를 이어가며 그의 자손들을 가르치시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점진적으로 만들어 가시고, 마침내 완성시키듯 요셉을 만드셨고, 이어 요셉과 같은 자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싶은데, 갑자기 약속하신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이주시키시고 그곳에서 400여 년을 살게 하신다.

과연 이 기간은 왜 필요했을까?


이집트에서의 모든 시간이 이해가 안 되지만 한 가지 더욱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들이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국가를 이룬다는 점이다.

세상 어떤 민족과 국가의 형성 배경이 한 나라의 노예로부터 시작되는 경우는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오히려 대부분의 민족의 형성 스토리는 대대손손 자긍심을 고취할 수 있도록 없던 일도 만들어 대단한 무엇으로 포장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노예들이 섬기던 나라를 탈출해 세운 나라’, ’ 노예들의 나라‘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싶은 것이다.


심지어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로 살 것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축복하신 시점에 말씀하셨다는 점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창세기 15장 13절)


미리 계획된 일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분명 필요한 일이었고, 심지어는 중요한 부분이기에 이렇게 미리 계획하시고 실행하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궁금하다.

하나님의 백성을 만드시길 원하셨는데,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아브라함부터 그의 자손들을 훈련시키시며 마침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의 원형과도 같은 요셉을 만들어 내셨는데,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땅은 가나안이었는데, 거주하고 있던 그 땅에서 굳이 애굽으로 이주시켜 노예로 살게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무려 수백 년의 시간을 노예로 추락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유말이다?


궁금하다.


아마도 출애굽기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지 않을까 싶다.

그 과정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 그 나라의 백성에 대해 좀 더 분명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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