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는 미식천국이다. 무려 200곳이 넘는 미슐랭 별을 획득한 식당들이 자리하고 있을 정도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는 항상 도쿄의 맛집 소개 포스팅들이 넘쳐난다. 하루 종일 음식만을 즐기러 다녀도 부족할 만큼 미식의 명소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도쿄의 매력은 맛있는 요리뿐만이 아니다. 미식 문화의 중심지답게 도쿄에는 셰프들의 손길이 닿는 곳곳에 귀한 식재료와 주방 도구들이 가득하며, 다양한 식재료와 주방 용품들도 가득한 도시이기도 하다. 요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도쿄는 단순한 미식 도시를 넘어선 '식재료의 도시'이기도 하다. 신선한 식자재부터 독특한 향신료, 전통 주방 기구까지 요리에 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쿄의 작은 가게 하나에 들르는 것만으로도 일본 식문화의 깊이를 만날 수 있다. 특별한 미식 여행을 꿈꾼다면 단지 유명 맛집만을 방문하는 일에 그칠 것이 아니라, 숨은 식재료 상점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맛있는 음식 하나가 완성되기까지 쌓인 역사와 노력을 엿보다 보면, 일본 미식 문화에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다양한 영감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107-0052 Tokyo, Minato City, Akasaka, 9-chōme−7−4 東京ミッドタウンガレリア地下1階
후쿠미츠야사케 양조장은 400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이다. 이곳은 단순히 사케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사케와 누룩을 활용한 다양한 제품들을 판매라며 요리를 사랑하는 이들의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의 주력 제품은 도정률 50%의 준마이 다이긴조 사케다. 이 밝고 상큼한 사케는 일본 술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술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사케 외에도 주목할 만한 제품들이 가득하다. 특히 누룩을 활용한 조미료와 맛술은 일본 요리에 꼭 필요한 재료들이다. 일본인들은 요리할 때 맛술을 활용해 은은한 단맛을 더하는데, 일본에서는 맛술을 '단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후쿠미츠야사케에서는 이러한 정통 맛술을 구입할 수 있다. 또한 누룩으로 만든 발효 음료인 아마자케와 다양한 양념들도 판매 중이다. 이 제품들을 활용하면 일본 가정식뿐 아니라 독특한 창작 요리도 시도해 볼 수 있다. 그렇기에 도쿄미드타운 롯폰기에 위치한 후쿠미츠야사케 양조장 플래그쉽 스토어를 방문하는 일은 단순히 사케를 구매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곳에서 만난 재료들은 일본 식문화의 역사와 맛을 생생하게 보여줄 뿐만이 아니라, 요리에 대한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기 때문이다. 오랜 전통이 흐르는 작은 양조장에서 특별한 재료들을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일본 식문화를 좀 더 가까이에서 만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요리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카야노야는 특별한 매력을 지닌 곳이다. 이곳은 단순히 국물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독특한 브랜드이자, 일본 전통 다시 국물의 진수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카야노야가 자랑하는 대표 제품은 아고다시다. 참고로 아고는 아귀의 친구가 아니라 날치의 일본말이다. '아고'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국물은 구운 날치와 청어, 가쓰오부시, 다시마 등으로 정성스레 우려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고다시는 일본 국내뿐 아니라 홍콩, 대만, 싱가포르, 미국 등지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카야노야의 매력은 국물을 맛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이곳에는 제품을 시식할 수 있는 특별한 코너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친절한 직원들이 다양한 국물을 먹어볼 것을 권하고, 나아가 그 국물에 곁들일 주먹밥까지 권한다. 국물과 밥을 함께 맛보며 그 조화로운 경험을 만끽할 수 있다. 일반적인 시식코너와는 한 끗 다른 디테일이다. 이는 카야노야 매장 곁에 레스토랑이 자리하고 있기에 가능다. 단순히 시식일지 모르지만, 그 시식에서 건네는 국물 한 컵으로부터 일본 미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할 만큼 카야노야의 제품은 매우 훌륭하다. 게다가 카야노야에서는 국물을 우리기 위한 각종 도구와 접시, 드레싱 등 다양한 요리 관련 제품도 판매 중이다. 주방에서 영감이 되어줄 귀한 식재료와 기구들을 한 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셈이다. 그렇기에 카야노야를 방문하는 것은 단순히 제품을 구매하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곳에서 전통 국물 하나를 통해 일본 미식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5-chōme-9-8 Toranomon, Minato City, Tokyo 105-0001 일본
라베유는 꿀편집샵이다. 이들은 전 세계의 다양한 꿀들을 직접 채밀해서 판매한다. 기존의 라베유 매장들은 백화점이나 상업시설에 샵인샵으로 입점한 게 많아서 라베유만의 매력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꿀을 파는 가게? 이 정도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연히 라베유를 바라보는 시선도 그 정도에서 멈췄다. 하지만 라베유는 2023년 11월에 새롭게 오픈한 아자부다이힐즈에서는 단독 매장을 열었다. 원목으로 만든 장식장에 들어찬 수많은 꿀들. 우아한 갈색 나무 선반에 가득한 황금빛 꿀병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보물 그 자체다.
라베유 매장에는 벌들이 정성스레 만든 달콤한 꿀방울 하나하나에 자연의 깊은 맛이 서려 있다. 이곳에 있다 보면, 다양한 꿀의 종류와 야생화에서부터 허브까지 아주 다양한 곳에서 꿀이 나온다는 사실에 한번 더 놀란다. 매장을 둘러보면 다양한 종류의 꿀이 지닌 독특한 맛과 향을 발견하면서 새로운 요리 아이디어가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시식을 통해 달콤함 뿐 아니라 상큼함, 쌉싸름함 등 꿀의 미묘한 맛차이도 알게 된다. 꿀을 구경하러 갔다가 꿀을 공부하고 나온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라베유가 전 세계에서 꿀을 아무렇게나 가져오는 건 아니다. 프랑스에서 배운 꿀 관리법과 자체적으로 만든 엄격한 꿀관리 기준을 통해 엄선한 꿀만을 매장에 가져다 놓는다.
라베유에서 꿀은 단순한 식재료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음식을 좋아하고 식재료에 대한 애정을 갖은 이들에게 라베유는 꿀에 대한 시각을 새롭게 바꾸는 곳일지 모른다. 매장 한편에는 '미에라티에라'라는 라베유가 만든 구움 과자 브랜드 코너도 있다. 이 코너에서는 마들렌, 휘낭시에, 사블레 등의 디저트에 설탕 대신 라베유의 꿀을 사용했다. 아마도 베이킹과 디저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정신을 못 차릴지 모른다.
라베유에서의 다양한 꿀을 보는 경험은 단순한 쇼핑을 넘어 자연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달콤함을 곱씹어보는 시간이다. 달콤한 꿀의 유혹이 아닌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맛을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발견하고 싶다면? 라베유는 꼭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일본 〒150-6090 Tokyo, Shibuya City, Ebisu, 4-chōme−20−7 ガーデンプレイスセンタープラザ B1
212 키친스토어는 일상 속 주방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특히 일본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주방기구를 편하게 살펴볼 수 있다. 게다가 일본 현지인들이 어떤 스타일의 주방도구를 선호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그들의 생활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212 키친만의 장점이다. 매장 한편에는 실제 주방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탄산수 제조기, 냉장고, 오븐 등 각종 주방 기구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이 주방에 놓고, 집에서 주방용품이 어떨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제품만 보는 일과 제품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건 좀 다르지 않은가? 이 부분이 212 키친만의 한 끗 다른 디테일이기도 하다. '집에서 이렇게 사용하면 되겠네!'라는 게 아니라, 물건을 실제로 매장에서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 이것이 212 키친의 포인트다.
212 키친에서는 주방 제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식탁, 의자 등 주방 가구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매장 한편에 만들어진 쇼룸을 통해 실제 집안 주방 분위기를 그려볼 수도 있다. 가격 또한 300엔부터 시작해 구입에 큰 부담이 없다. 212 키친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점 옆에는 잡화점인 투데이스 스페셜이 함께 있다. 두 곳을 비교하면서 주방용품과 잡화를 살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만일 보다 고급스러운 212키친 스토어 매장을 살펴보고 싶다면 에비스가든플레이스점이 아닌 도쿄미드타운 롯폰기점을 권한다.
일본 〒150-0033 Tokyo, Shibuya City, Sarugakuchō, 18−12, HILLSIDE TERRACE Building G, B1
힐사이드 팬트리는 일본 맛집사이트인 타베로그 3.6점. 타베로그가 매년 선정하는 분야별 100명점에서 베이커리 부분에도 선정된 곳이다. 그런데 왜 맛집소개가 아닌 식재료가게를 소개하는 글에 있을까? 음식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팬트리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베이커리가 아닌 식재료점이다. 만일 맛집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이탈리아와 프랑스 식재료들이 빼곡히 가게 안을 채우고 있다. 발사믹 식초, 올리브유, 치즈, 건과일 등 다채로운 식재료가 가득하다. 물론 일반적인 일본요리를 위한 식재료도 판매한다. 힐사이드 팬트리의 매력은 유럽을 대표하는 수많은 식재료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스라라사소스같이 한국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들도 상당히 많다.
매장 한편에는 델리와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상점에서 취급하는 식재료로 만든 샐러드나 페스트리를 맛볼 수 있다. 물론 타베로그 맛집답게 빵은 맛있다. 그러니 타베로그에서 베이커리 부문 명소로 식재료점을 선택한 건 생각해 볼 만하다. 힐사이드 팬트리는 단순한 가게 그 이상의 경험을 제공한다. 그 경험이 타베로그 점수에 반영된 게 아닐까?
1 Chome-2-8 Azabudai, Minato City, Tokyo 106-0041 일본
아자부다이힐즈 마켓은 단순한 식료품 매장이 아닌, 음식을 통해 삶의 풍요로움을 추구하는 공간이다. '음식을 통해 생활과 미래를 풍요롭게 하고 싶다'는 슬로건 아래, 34개의 식재료 전문 상점들이 모여 하나의 작은 세상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상의 필수품부터 희소하고 독특한 기호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식재료를 만날 수 있다. 싱그러운 청과물과 육류, 신선한 생선류는 물론이고 반조리식품과 반찬, 와인과 맥주 등의 주류, 그리고 빵과 과자에 이르기까지 식탁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가게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아자부다이힐즈 마켓 안에서 정갈하게 놓인 건조 식재료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가게가 있다. 바로 다시 오쿠메다. 다시 오쿠메를 운영하는 오쿠메 상점은 1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 요리문화의 맥을 이어온 명가다. 1871년 니혼바시 수산시장에서 해산물 도매업체로 시작해, 150년 넘게 요리 전문가를 위해 최고급 해산물을 선별해왔다.
오쿠메 상점의 자랑거리는 천연 일본 식재료에 대한 집념이다. 첨가물이나 화학 조미료에 의존하지 않고, 건조와 발효 등 전통적인 방식을 통해 재료 고유의 맛과 향을 이끌어내는 데 전력을 다해왔다. 현재 오쿠메 상점을 이끌고 있는 가노 후미토시 대표는 5대에 걸친 가업을 물려받았지만, 그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바로 일본의 전통 식문화인 '다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다시는 말린 가다랭이와 다시마, 표고버섯 등으로 우려낸 국물을 의미하는데, 그는 이를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창조했다.그들의 대표 상품인 '주문 제작 다시 팩'은 이러한 철학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가다랭이, 말린 다시마, 표고버섯 등 36가지 재료를 원하는 대로 조합하여 주문할 수 있는데, 그렇게 탄생한 국물 팩 하나하나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다시국물 팩이다. 다시오쿠모는 고객들이 국물 재료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통해 36가지 식재료 각각의 맛과 특징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 일본 식문화 자체를 전파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다시오쿠모 매장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36가지 식재료들이 가득 쌓여 있는 모습이다. 마치 한 편의 조용한 정물화를 연상케 하는 이 풍경은 사람들을 단숨에 이곳에 몰입하도록 만든다. 매장에 설치된 보온통을 통해 얼마든지 국물을 시식할 수도 있다. 또한 다시 오쿠모는 국물뿐만 아니라, 식품 마이스터들이 직접 엄선한 간장, 된장, 쌀, 음료 등 일본 전역의 제품들도 판매하고 있다.
다시오쿠모의 매력은 오랜 전통에 기반한 솔직하고 건강한 식재료다. 그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매일 식탁에서 먹는 국물 한 모금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