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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험을전하는남자 Nov 10. 2020

드라마의 내력과 외력을 알수록 이야기 몰입도는 올라간다

드라마의 내력과 외력을 구분할수록 이야기에 대한 몰입도는 더욱 높아진다.

드라마와 영화 구조를 이해는 왜 필요할까?


우리는 언제나 이야기를 갈망한다. 매일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일도 부족해 요즘은 스스로 온라인에 자신만의 이야기를 적는다. 코로나 19로 사람은 줄었으나 여전히 우리는 카페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우리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사람 혹은 사건을 분석한다. 우리도 모르게 어느 순간 이야기 구조를 분석하고 그에 대한 의견을 머릿속으로 만들어간다. 이야기는 선명한 상상력과 강력한 사고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구성하는 일은 작가만의 경험, 통찰력, 인간 본모습에 관한 지식을 측정하는 심도 높은 작업이기도 하다.

영화와 드라마같은 영상콘텐츠는 모두 이야기입니다. 영상으로 만든 이야기요. 출처: 넷플릭스.

영화와 드라마는 영상으로 만든 이야기다. 작가가 만든 이야기를 기반한 영상이기에, 많은 이들이 공감 혹은 즐거움을 목적으로 한다. 어떤 이들은 이를 그냥 엔터테인먼트일 뿐. 그저 ‘현실 도피’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일은 지적 혹은 정서적으로 만족스러운 경험을 주는 이야기에 빠져든다는 걸 말한다. 오히려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이들에게 이야기란 강렬하고 다양한 감정들을 만족시켜 주는 정서적인 경험을 하는 경험이기도 하다.


건물은 강한 내력(철골 구조, 단단한 재료)을 기반으로 바람, 지진, 눈, 비, 무거운 화물 같은 하중을 견딘다. 건물이 견고하지 않은 경우 건물은 이러한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영화와 드라마도 마치 건축 같아서. 시나리오, 카메라, 미술, 조명, 후반 작업등 영화를 구성하는 골격이 탄탄하지 못하면 하중(외력)에 의해 무너진다.

프레임을 늘려서 촬영한 이 장면은 영화 역린의 콘티 설계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영화(드라마)에 있어서 외력은 무엇일까? 영화(드라마)에 하중을 가하는 외력으로는 배우, 날씨, 불가항력 상황(예산 문제)이 있다. 날씨는 영상 그 자체에 영향을 준다. 새벽에 찍어야 할 영상이지만, 그게 되지 않을 경우에는 가장 비슷한 저녁시간에 찍은 후에 후보정 작업을 통해 새벽으로 만든다. 예산은 캐스팅과 일정 모든 면에 영향을 준다. 그렇다면 배우는 어떻게 영화(드라마)에 하중을 주는가? 배우 그 자체다. 배우가 비주얼이 너무 강하면 이야기가 아니라 배우만 보인다. 비주얼 때문에 이야기가 다 죽어버린다. 

영화 역린은 검은색과 어두움으로 현빈 배우의 비주얼을 제어한다. 하지만 현빈 배우가 가진 비주얼이 튀어나오는 건 쉽사리 막아지지 않는다.

반면에 배우가 비주얼이 아닌, 시나리오 그 자체에 완전히 충실하게 연기하는 경우에는 외력이 아니라, 영화의 강력한 내력. 매우 튼튼한 골격이 되어 영화(드라마)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우리는 보통 이런 배우들을 '믿고 보는 배우'라고 표현한다. 배우는 분명히 외력이지만, 배우 역량에 따라 강력한 내력 혹은 외력이 되기도 한다. 종종 배우들이 체중을 증량하거나 줄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나의 아저씨는 내력과 외력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화를 보여주는 드라마다. 출처: 넷플릭스

좋은 영화(드라마)는 언제나 내력과 외력 간 균형이 좋다.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사랑 맡는 ‘나의 아저씨’를 생각해보자. 탄탄한 내력, 특히 ‘스토리텔링’이 모든 걸 이끈다. 당연히 스토리텔링을 엮는 영상도 좋다. 여기에서 영상은 ‘감각적인가?’를 말하는 게 아니다. 스토리텔링에 적합한 영상을 구사하는가를 말한다. 나의 아저씨 같은 경우 종종 통 테이크 기법도 사용하며 '이지안과 박동훈'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대화로 던지기도 한다. 또한 ‘나의 아저씨’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도 시나리오에 하중을 주는 외력이 아닌 내력으로 시나리오를 강화시킨다. 그 누구도 ‘나의 아저씨’에서 스스로를 부각하는 튀는 연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이지안’과 ‘장만 월’을 비교하는 일만으로도 드라마 정체성에 따라 배우가 가진 진폭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출처: 넷플리스, 티빙 유투브 채널.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 역을 맡았던 아이유(이지은)와 ‘호텔 델 루나’를 비교하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은 화려하지도 튀지도 않는다. 반면에 ‘호텔 델 루나’에서 장만 월을 보자. 분명히 같은 아이유(이지은)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다르다. '호텔 델 루나'에서 아이유는 그녀가 가진 보진 비주얼을 마음껏 뽐낸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호텔 델 루나' 시나리오가 장만 월을 화려한 인물로 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화려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장만 월'이라는 캐릭터를 '구찬성'(여진구)이라는 한결같은 인물이 받아준다.'호텔 델루나'에서 우리는 아이유(이지은) 가진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마음껏 볼 수 있으며, 그녀의 외력이 얼마나 큰 지를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나의 아저씨’에서의 ‘이지안’과 ‘장만 월’을 비교하는 일만으로도 드라마 정체성에 따라 배우가 가진 진폭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2. 프리 프로덕션:탄탄한 내력을 만드는 작업, 즉 영화 혹은 드라마의 설계도를 만드는 작업.


프리 프로덕션은 영화 혹은 드라마 촬영 전에 작품의 뼈대를 잡는 과정이다. 예를 들어 영화 택시 운전자는 영화 초반부는 가벼운 톤으로 시작해 점자 영화 속 인물의 감정 변화에 따라서 감정이 조금씩 무거워진다. 영화 '남한산성'은 ‘혹한’의 차가움이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한다. 영화 역린은 '어두움' 영상 질감으로 담아내 정조가 처한 분위기를 담아내고자 했다. 이러한 흐름을 ‘구상’하는 게 프리 프로덕션이다. 프리 프로덕션은 '작품 설계도'를 만드는 일이라고 보아도 무관하다. 영화 촬영 시에는 수많은 변수들. 그 변수를 대응하는 기본적인 틀을 잡는 일이 프리 프로덕션의 핵심이다.

역린은 '어두움'을 부각하며, 이를 통해 왕이지만 무기력한 정조를 간접적으로 묘사한다.

프리 단계에는 원래 영화(드라마) 시나리오를 더 세밀하게 수정하고 시각적으로 만들 모든 요소들을 구체화한다. 장소 헌팅 , 콘티 정리, 장면 설계, 미술, 조명 등 수많은 구조를 만든다. 미술감독들은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방향에 필요한 디자인들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한다. 컬러리스트는 후반 작업을 위한 영화 전체 컬러톤을 미리 잡기도 한다. 촬영감독은 질감, 빛, 영상언어, 톤을 고민할 뿐만 아니라 촬영에 필요한 모든 일을 미리 준비한다. 대표적 예가 바로 카메라 선택이다.

홍경표 감독님은 기생충 촬영에 아리 알렉사 65, DNA렌즈를 사용했다. 출처: 아리 홈페이지.

기생충, 곡성, 마더,’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등을 촬영 한 홍경표 촬영감독은 자신의 프리 프로덕션 작업 과정을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번 전했다. 그는 프리 단계에서 촬영 장소 혹은 헌팅 장소에 먼저 나가 수많은 사진을 찍고(홍경표 감독 전공이 사진학이다.), 이를 감독과 의논해 영화에 필요한 영상톤을 만들어간다고 말했다. 카메라와 렌즈는 이 과정을 거치면 자연스럽게 선택이 된다고도 한다. 특히 기생충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 중, 뮌헨에 있는 ARRI사에 방문해 렌즈를 테스트하기도 했다. 그 당시 ARRI사는 홍 감독에게 새로 출시한 렌즈를 권했고, 그 렌즈가 기생충 촬영 방향과 맞아 곧바로 렌즈를 선택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홍경표 감독은 '이미지'를 중시하고, 이미지에서 촬영 방향을 잡아간다. 출처: 아리 홈페이지.

프리 단계에서는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이 관계중심인지, 이야기 중심인지 공간이 중요한지를 검토한다. 그 이유는 영화 내용을 상영시간 동안 관객에게 확실하게 인지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배우가 시나리오 속 인물과 이야기에 스며들어간다면, 촬영감독들은 시나리오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분위기에 스며들여 이미지를 포착한다. 그 포착한 이미지를 합치고 움직이는 영상으로 구축한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비롯한 모든 걸 조율하지만 촬영감독은 시나리오가 원하는 분위기와 필요로 하는 이미지를 촬영공간에서 찾아야 한다.

대본 리딩은 대표적인 프리 프로덕션이다. 출처: 카카오 티브이.

배우들은 프리 프로덕션 작업에서 캐릭터를 구축하고 자료를 모은다. 대본 리딩은 가장 많이 알려진 프리 프로덕션 작업 중 하나다. 대본 리딩이 중요한 이유는 본격적인 촬영 전에 작품에 참여하는 배우가 모두 모여 구조를 맞추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빠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더욱 중요한 건 작품을 함께 만들어가는 팀으로서 ‘신뢰’다.


[프리 프로덕션은 영화 구조를 잡는 중요한 작업이기에 이번 글에서는 이 정도 논의로만 끝낸다. 프리 프로덕션에 대해서는 추후에 더 깊숙하게 다루고자 한다.]


배우가 구조를 이해할수록 영화(드라마) 감정을 잡는 일도 편하다. 편집력이 뛰어난 배우일수록 구조 이해력이 뛰어나다. 드라마와 영화와 촬영. 특히 영화 촬영에 관한 자료를 찾아보면, 모든 영화는 우리 생각만큼 순서대로 촬영하지 않는다. 배우마다 촬영 일정이 다르다. 최근 방영하는 스타트업 같은 경우 서달미역을 맡은 배수지 배우는 한지 평역을 맡은 김선호 배우보다 먼저 촬영을 시작했다. 또한 수지 배우는 다른 배우보다 많은 장소에서 촬영했다. 반면에 김선호 배우는 [차-사무실]을 반복하는 장면이 많다. 실제로 메이킹영상을 보면 김선호 배우는 수지 배우에게 “나는 차하고 사무실 촬영이 전부야”라고 말한다.

신과 함께 '죄와 벌-'의 엔딩장면은 신과함께 '인과연'의 오프닝장면이다.

영화 ‘신과 함께’는 2부작이지만, 촬영 일정 때문에 오프닝과 엔딩신을 같이 촬영했다. 영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신과 함께 -죄와 벌-’ 엔딩씬이 ‘신과 함께 -인과 연-’ 오프닝 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배우 입장에서는 ‘앞 감정’들이 쌓이기도 전에 엔딩을 촬영하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시나리오에 담긴 서사와 감정 결을 하나하나 집중력 있게 표현하는 건 배우들 몫이다.

우리가 배우를 보는 시각을 더 올릴수록 배우들의 수준도 올라간다. 문화는 관객과 시청자가 만든다. 출처: 넷플릭스.

우리가 스크린으로 보는 배우와 직업으로서 연기하는 배우는 그 모습이 ‘전혀’ 다르다. 사실 우리가 연예인 혹은 배우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들을 함부로 말한 ‘권리’와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견지해야 할 태도는 ‘배우의 연기가 영화(혹은 드라마) 얼마나 기여했는 가다. 더 건설적으로 할 수 없는지에 한 ’ 격려’와 ‘비평’이 담긴 긴 메시지여야 한다. 이는 배우에 대한 아첨도 비판도 아니다.


배우가 아무리 연기를 잘한다고 해도 ‘관객’이 없으면 배우는 존재할 수 없다. 훌륭한 관객이 없으면 배우들도 역량을 더욱 키울 수 없다. 동시에 훌륭한 배우들이 없다면? 관객들은 보다 더 좋은 감정과 이야기를 들을 경험을 할 수 없다. 결국 판을 키우고 그 안의 질를 높이는 건 관객인 우리에게 달려있다. 배우는 ‘휘발성’이 가득한 사회에서 단순한 ‘오락거리’로 얼마든지 치부될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배우를 휘발적으로 대할수록 우리가 마주하는 영화와 드라마는 어떨까? 결국 토대를 만드는 일은 결국 관객, 시청자, 배우 몫이다.


배우: 외력과 내력 중간에서 끼인 존재.


앞서 말했듯이 배우는 본인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영화 속에서 내력 혹은 외력이 될 수 있다. 배우는 영화(드라마( 내력과 외력을 조율하는 가장 큰 위치에 있다. 중간지대에 있다고 보아도 무관하다. 하지만 배우는 언제나 시나리오가 추구하는 감정. 즉, 영화(드라마)의 내력에 최우선으로 집중해야 한다. 때때로 배우 그 자신이 ‘강한’ 아우라로 인해 작품 균형을 무너뜨리는 강한 하중(외력)이 되기도 한다.

연극에서 부터 탄탄하게 편집력을 다진 이재명배우는 나이마저도 통제하는 완급력이 뛰어난 배우다.

균형감 있는 배우들. 특히 편집력이 뛰어나 영화(드라마)의 구조를 이해하는 배우들은 언제나 이를 잘 통제한다. 보통 연극에서 기본기를 철저하게 다진 배우들은 내력과 외력을 조율하는 능력들이 탁월하다. 영화와 드라마와 다르게 연극은 '실시간'으로 배우의 날 것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연극 공연기간 동안 매일 같은 '인물'을 연기해야 하기에, 자신이 맡은 배역의 결을 균질하게 유지해야 한다. 배우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은 배우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를 통한 인신적인 공격은 배우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큰 상처가 된다.

드라마 ’ 김비서가 왜 그럴까’와 ‘이태원 클래스’의 박서준배우는 내력과 외력을 정확하게 해석한 사례 중 하나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서 자아도취형 부사장인 ‘이영준’을 맡은 박서준배우는 자기가 가진 강력한 외력을‘이영준’이라는 캐릭터에 녹아낸다. 특히 1화에서 ‘아우라~’하고 외치는 장면은 박서준배우가 같은 외력을 강력하게 끌어낸다. 

중간 샷에서 클로즈업샷으로 이어지는 '아우라!'장면을 통해 시청자들은 이영준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자아도취 캐릭터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장면에서는 배우 외력이 오히려 폭발해야

이 ‘아우라~’라고 외치는 장면은 드라마 전체에서 ‘이영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러한 장면에서는 오히려 배우가 자신의 아우라를 적극적으로 발산해야 한다. 오히려 이 장면에서는 외력이 강해야 그 외력이 드라마 ‘내력’으로 들어가 균형을 맞춘다.

박서준은 최대한 줄이고 박새로이를 드러내는 일. 배우는 언제나 외력과 내력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반면에 ‘이태원 클래스’에서 박서준배우는 말투, 옷, 헤어스타일까지 모든 걸 박새로이에 맞춘다.’ 이영준’과 다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걸 ‘박새로이’라는 캐릭터에 맞춘다. 이태원 클래스에서는 박서준배우는 자기 자신이 가진 외력을 찍어 누르고 박새로이를 묘사한다. 

박서준, 유재명 배우가 마주하는 장면. 두 배우는 자신의 모든 역량을 드라마 내력을 위해 쏟아붓는다. 이 장면에서 박서준과 유재명은 없고 박새로이와 장대희만 있다.

특히 이런 면은 박서준과 유재명 배우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장면에 자주 볼 수 있다. 유재명 배우가 맡은 자주 성가 한 사업가인 '장대희'는 강력한 아우라를 발산한다. 박서준배우는 이를 무난하게 흡수해 스토리텔링에 맞는 장면을 만든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박서준배우가 박새로이를 위해 외력을 모두 눌렀기 때문이다.   

배우는 종종 자신의 룩, 외력을 극대화해 시나리오를 끌고 가야 한다. 이럴 경우 시나리오 골격을 세워줄 상대배우가 있다면 외력은 적절하게 통제된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는 서예지와 김수현 배우는 각자 가진 강한 비주얼(외력)을 잘 배분한다. 극 안에서 아우라를 마구 폭발시켜야 하는 입장인 서예지 배우는 낮음 음색의 딕션, 의상, 표정으로 ’ 고문영’이라는 캐릭터를 극대화한다. 반면에 김수현 배우는 이 같은 서예지 배우 연기를 전부 흡수해 ‘문강태’라는 인물을 묘사한다. ‘사이코이지만 괜찮아’에 대한 몇몇 기사들에서는 이 같은 김수현배우의 연기를 보고 비중이 ‘낮다’, '돋보이지 않는다’라고 적기도 했는데, 이는 오히려 정확한 묘사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김수현,서예지배우는 각 배역을 능숙하게 소화한다. 그덕에 고문영, 문강태라는 인물이 모두 살아난다. 출처: 넷플릭스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김수현 배우는 스스로 충분히 외력을 들어낼 수 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작품 내력으로 스며들어 작품을 지탱하는 기둥이 된다. 그 덕에 고문영(서예지)과 문상태(오정세) 캐릭터는 돋보인다. 만일 김수현배우가 특유의 ‘아우라’를 뿜어냈다면?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시나리오가 쉽게 무너졌을 것이다.

청춘기록에서 박보검이 가진 뛰어난 비주얼은 그에 걸맞는 배역을 맞아 드라마를 거의 삼킬정도로의 강한 외력을 선보인다.

청춘 기록도 마찬가지다. 박보검 배우는 사혜준이라는 ‘배우’를 연기한다. 박보검은 본인이 가진 비주얼을 사혜준에 완전히 넣어버린다. 이는 뷰티 인사이드에서 서현진배우가 '한 세계'를 묘사할 때와 유사하다. 문제는 청춘 기록 ‘시나리오’다. 박보검이 아니다. 하명희 작가의 작품은 항상 부드러움을 지향하기에, 박보검이 묘사하는 사혜준은 지나지게 부드럽다. 박보검 배우는 빛나지만, 그에 반해 시나리오가 지향하는 방향이 종종 뭉개진다. 내력과 외력이 너무 강해 아슬아슬하게 충돌한다. 반면에 박보검의 상대배우인 박소담 배우가 이 아슬아슬함을 잘 눌러준다.

기생충보다는 한 톤 정도 높은 딕션을 선보이는 박소담 배우는 박보검 비주얼을 이야기로 끌어당겨온다.

청춘 기록에서 박소담 배우는 ‘박보검’의 아우라를 빛나게 하며 드라마 구조를 안정시킨다. 이 덕분에 청춘 기록이 ‘박보검 영상화보집’이 되는 걸 억누른다. 오히려 청춘 기록에 사용한 라이카 주 밀러스 C렌즈와 색감이 지나치게 박보검을 부각해, 종종 드라마의 내력과 외력 간 균형이 무너질 듯 말 듯하며 드라마가 흘러간다.

이 장면에서 서달미보다는 배수지 아우라 혹은 룩이 돋보인다.  출처: 티빙.

스타트업도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지만 장면마다 배우 배치를 통해 이를 해결한다. 본인 ‘아우라’가 너무 강한 배수지 배우가 나오는 장면들을 남주혁, 김선호, 강한나 배우가 잘 커버한다. 강한나배우는 하이톤 딕션과 차갑고 매서운 눈초리로 배수지 배우의 아우라를 눌러버린다. 그 덕에 배수지가 아닌 ‘서달미’가 캐릭터가 충분하게 나온다.

강한나배우의 눈빛과 연기는 배수지배우 연기를 제어하고 서달미를 끄집어낸다.

김선호 배우도 연극에서 시작한 탄탄한 기본기로 배수지 배우가 가진 아우라를 극 밖으로 튀지 않게 만든다. 배수지 배우가 가진 강한 아우라를 김선호 배우가 흡수해 내력을 만들어 서달미가 나타나도록 하는 셈이다. 남주혁 배우도 마찬가지다. 언제나 주눅 들어있는 ‘남도산’을 연기함으로써 극 중 서달미가 가진 긍정적인 캐릭터성이 돋보이게 한다. 이건 ‘스타트업’에서 배수지 배우가 ‘서달미’ 캐릭터 묘사가 부족한 게 아니다. 오히려 ‘배수지’ 본인 아우라가 크기에 언제든지 서달미가 배수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게 문제다. 이건 배수지 배우 본인 '아우라'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드라마 스타트업은 상대적으로 내력이 강한 배우들을 배수지배우와 배치시켜 그녀의 강한 아우라가 튀어나오는걸 막는다. 출처: 넷플릭스.

오히려 배수지 배우는 서달미를 살리기 위해 스스로 아우라를 죽이려고 한다. 제작진은 라이카 주 밀러스 C렌즈도 이러한 면을 염두에 두고 사용한다. 라이카 주 밀러스 C가 가진 특징을 주로 배수지 배우 아우라를 끌어낼 때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특히 7화 마지막 옥상신에서 키스와 대화 신은 주 밀러스 C렌즈, 남주혁과 배수지 두 배우의 외력과 내력을 모두 극대화한다.

이 장면에서 서달미보다는 배수지의 에너지가 더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 앞뒤 장면으로 서달미를 묘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장면은 드라마 전개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배우자체가 비주얼이 너무 강할 경우, 영상 샷 설계를 통해 이를 완화시킬수 있다는걸 스타트업 촬영팀은 잘 보여주고 있다. 출처: 넷플릭스.


8화에서 머리끈을 묶는 장면을 보자. 조리개 1.4 정도로 한 후, 초점을 눈에서부터 입까지 잡았다. 그 나머지는 아웃포커싱 한 미들 샷으로 촬영했다. 또한 수지 아우라를 끌어내려고 황금비율까지 사용했다. 이 장면에서는 라이카 주 밀러스 C렌즈와 배수지 배우가 가진 아우라를 극도로 끌어내는데, 배수지만의 아우라가 충분히 나와도 괜찮다. 이 장면이 나오기 전 ‘서달미’가 놓인 상황을 이미 잘 묘사를 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는 수지 배우가 가진 아우리(외력)가 스타트업 스토리텔링에 오히려 기여한다.

엄효섭 배우는 갈등을 유발하거나, 짜증을 유발하는 역할을 매우 잘하신다.. 이야기를 보는 입장에서 엄효섭 배우는 밉다. 하나 그의 현기는 극을 살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배테랑 중견배우들은 스토리와 스토리 간 필요 간 각종 접착제 역할을 하며 탄탄한 구성을 뒷받침한다. 스타트업에서 김해숙, 엄효섭, 서이숙, 송선미, 김희정, 김원해 같은 베테랑 배우들은 외력과 내력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는 배우들이다. 이 세 배우는 외력이 상대적으로 강한 4명의 주연배우들의 연기를 언제나 드라마 내력으로 끌고 온다. 완충 장치하고 할 수 있다.

이 장면에서 엄효섭 배우는 극 안에서 이야기 흐름을 능숙하게 조율한다.
엄효섭배우가 중심을 잡고 장면을 이끌고 다른 배우들이 그 흐름을 타고 간다. 이를 통해 배수지배우 아우라는 줄어들고, 서달미가 확 살아난다. 출처: 넥플리스

예를 들어 8화에서 배수지 배우가 가진 아우라를 강한나, 남주혁, 엄효섭 배우가 연기로 누르고 '서달미'만 드라마 안으로 끌고 온다. 특히 엄효섭 배우가 이 장면에서 이야기 흐름을 단단하게 잡아주는데, 이 덕분에 '서달미' 캐릭터 묘사가 보다 돋보이게 된다. 시청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장면들은 이야기 플롯이지만, 이 같은 배우들 배치는 극이 안정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한 연출 장치다.

한진희, 박수영, 하희라 같은 배테랑 배우들은 비주얼이 강한 배우들이 드라마 톤 앤 매너에서 튀어나가는 걸 막고, 스토리텔링을 안정시킨다. 출처: 넷플릭스

청춘 기록에서도 비주얼이 돋보이는 배우들이 나오는 장면에서 하희라, 신애라 같은 배테랑 배우들이 주축이 되는 장면으로 바뀌면 드라마 흐름은 '차분'해지고 안정된다. 이와 다르게 JTBC ‘슬기로운 의시생활’와 ‘비밀의 숲’은 모든 배우들이 내력과 외력 간 균형 잘 맞추는 배우들이다. 이 두 드라마에서 배우들 간의 아우라는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오직 드라마 스토리텔링만 돋보인다.


4. 내력과 외력을 생각하며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이야기를 더 깊이 볼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물 와 스릴러물을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수 없다. 드라마는 각 장르에 따라 추구해야 한 톤 앤 매너가 다르기에, 방향을 설정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스토리텔링보다는 비주얼을 좀 더 앞세운 경우도 있고, 스토리텔링을 위해 비주얼을 모두 죽이는 경우도 있다. 혹은 드라마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배우 비주얼을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메이킹 장면 당시 주변 풍경과 배우들. 출처: 네이버 티브이.
카메라, 후보정, 오디오 작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영상은 시청자를 위한 '경험'으로 바뀐다. 출처: 티빙.

배우들을 드라마 시나리오 안에서 어떤 ‘디자인’ 요소로 접근하는 일. 배우들 간 연기 배치는 결국 드라마의 내력과 외력 간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이는 브랜딩과도 같은 선상에 있다. 브랜딩은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경험을 위한 설계 작업이자 정체성을 구축하는 일이다. 배우들을 시나리오에 맞도록 장면을 설계하고 그에 맞는 영상 질감을 만드는 일은 시청자들의 경험으로 이어지고, 이 경험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만든다.


우리가 막장드라마를 보고 ‘막장이다. 총체적 난국이다’라고 표현하는 건 영상 콘텐츠의 골격인 스토리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드라마 골격인 스토리가 무너졌는데 배우들 연기가 정상으로 보일 리가 없다. 같은 건물이라도 설계도대로 다 지어져 있으면 멋지지만, 짓다 말면 그대로 흉물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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