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관한 주관적 담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라고 말할 때, ‘너’는 무엇일까? 그것은 단순히 ‘너’라는 사람에게 속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가? 영혼과 육체 모두를 의미하는가? 너의 육체가 사라졌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너의 영혼만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가? 반대로 너의 영혼이 사라졌다면?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그 목적어가 되는 대상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존재인지 나는 과연 알고 있는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의 본질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는가?
모른다. 대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를 정확히 알고자 할 때, 그 질문에 맞서기 위한 여정 속에서야 비로소 사랑이라는 것의 본질에 조금이나마 다가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다음과 같이 가정해 본다. 나는 사랑한다. 주어와 동사 하나씩으로만 이루어진 이 명백한 문장이, 목적어를 붙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문법적 오류나 어색함 없이 성립될 수 있는 문장이라고.
사랑은 행위성을 지닌 명사로 규정된다. ‘사랑하다’라는 말은 동사이고, ‘사랑받다’라는 말은 피동이다. 사랑은 물리적인 무언가를 주고받는 것인가? 내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나에게서 그에게로 어떤 물리적인 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사랑은 우리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전달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내가 그에게 얼마만큼의 사랑을 준다고 해서 그만큼 나의 무게가 줄고 그의 무게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을 말할 때 반드시 목적어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라는 것을 물리적으로 주고받는다는 느낌, 또는 믿음이 존재할 뿐인 것이므로 여기에 일종의 방향성을 표출하기 위해 목적어를 붙이는 것이 아닐까?.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말함으로써 나는, 너에게로, 사랑을, 준다, 라고 체감하는 것이고 너는, 나에게서, 사랑을, 받는다, 라고 체감하는 것이다.
나는 조금 더 나아가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다. 동사는 사물의 작용이나 행위를 나타낸다. 작용은 ‘어떠한 현상을 일으키거나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고, 행위는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을 뜻한다. 사랑은 작용보다는 행위, 즉 사람이 의지를 가지고 하는 일에 속한다. 나는 여기에서 ‘의지’라는 단어에 진한 밑줄을 그어둔다.
그렇다면 사랑이라는 '행위'는 눈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니,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뛰다’라는 동사는 주체가 양발을 교차로 휘저어 빠르게 나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눈에 보인다. ‘사랑하다’라는 동사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동사라는 품사 내에서 육체적인 행위와 정신적인 행위는 구분된다. 사랑은 정신적인 행위로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 주체가 의지를 가지고 특정한 마음의 태도를 행하는 일인 것이다.
이번에는 영어에서의 ‘사랑하다’라는 동사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영어는 동사를 문법적 쓰임에 따라 자동사와 타동사로 구분한다. 같은 동사여도 객체 없이 뭉뚱그려 표현할 경우 자동사로 쓰이고, 행위의 대상이 되는 객체를 표현할 경우 타동사로 쓰인다. 문법적으로 ‘love’는 타동사로만 쓰이며 반드시 목적어가 붙는다. 어디까지나 문법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타동사는 영어로 transitive verb다. trans는 ‘움직이다, 이동하다, 옮기다’라는 뜻이다. 그렇다. 타동사는 주체의 에너지가 행위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 이전되는 동사를 의미한다. 반대로 자동사는 주체의 에너지가 스스로에게 머물러 객체에게로 이전되지 않는 동사를 의미한다.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랑은 실제로 어떤 물리적인 에너지를 전달하지 않는 행위에 속한다. 주체 내부에서 작용하는 정신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랑하다’라는 동사는 사실 자동사로 쓰여야 좀 더 정확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나는 너를 사랑한다”라고 특정 대상을 반드시 붙여서 표현하는 것일까? ‘사랑하다’라는 동사에서 대상을 명확히 밝히는 것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 중 둘 사이의 관계를 특정하기 위한 방향성을 부여하기 위함인가? 이를테면 자기 행위의 의미상 목적어로서 필요한 것인가?
어쩌면 이러한 점 때문에 우리는 사랑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정신적인 행위다. 주체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마음의 태도가 관념적으로 형상화된 것이 바로 사랑인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객체의 존재 여부와 관련 없이 주체의 내부에서 단독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사랑이란 것은, 반드시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 자체만으로 독립적인 존재로서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은 어떤 운명적인 힘에 의해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자기 행위의 방향성을 자기 의지로 표출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므로 사랑은, 전달이 아니라 발산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