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달콤한 안개 속으로
사랑의 시작은 대체로 착각이다. 사랑을 촉발하는 착각들을 우리는 착각이 아니라고 착각한다. 애초에 그것이 착각임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착각에 휘말려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에게 착각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극히 드물었을지도 모른다. 아무 연고 없이 누군가를 나의 세계의 한가운데에 놓고야 마는 그런 맹목적인 사랑은 1/100,000 정도의 확률로 나타나는 돌연변이로 여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착각이 사랑의 촉발탄을 뿌리면 곧 마음의 눈이 먼다. 그로 인해 둘 사이의 어떤 사실들은 객관을 상실하고 오로지 사랑을 발화시키기 위해 작용한다. 사랑의 발화 앞에서, 논리는 착각의 재료로 위장하여 몸을 감춘다.
두 사람 사이의 사소한 공통점을 발명하여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마치 위대한 발견인 것처럼 착각한다. 자기에게 일어난 보편적인 사건의 의미를 미묘하게 왜곡하여 그것이 특수한 사건인 것처럼 착각한다. 감정적 비약을 통해 다른 누구와도 충분히 공유할 수 있을 법한 감성적 취향을 운명적 사랑의 증거로 착각한다.
착각은 그저 오해다. 인정하기 싫은 자기중심적 확대해석이면서 차마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랑의 근원 중 하나다. 두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비논리 낭만주의의 산물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착각이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달은들, 앞으로도 우리는 그 달콤한 안개에 휘말리게 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랑의 착각놀음에 적합한 어리석음을 지니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에 관한 모든 착각에서 우리는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너이기 때문 이라는 단 하나의 실마리로 모든 오해를 풀어낼 수 있다. 두 사람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착각은 점차 착각이 아니게 된다.
이것은 사랑의 서사다. 앞으로도 우리는 착각에 휘말릴 것이고, 그곳에서 사랑을 피워낼 것이고, 너이기 때문에 오해를 풀어낼 것이다.
최유수, <사랑의 몽타주> p.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