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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Jan 16. 2022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강아지는 사람에게 수많은 행복을 안겨준다

이 따수한 몽충미가 귀엽다


강아지를 오랫동안 키우고 싶은 소망이 있었던 나는 길을 걸을 때마다 강아지와 사람이 함께 산책하는 모습을 보면 많이 부러워했다. 내 강아지도 아닌데 어찌나 귀엽던지 그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 하루의 고단함이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나를 마주하는 방향에서 걸어오는 강아지의 얼굴을 보는 것도 좋았고, 뒷모습만 보여서 엉덩이만 씰룩씰룩 거리는 강아지들을 보는 것도 무척 행복했다. 언제 어디서나 강아지가 작은 점처럼 멀리 보여도 발견하는 탓에 친구들은 강아지 탐색기 아니냐며 사람보다 강아지를 잘 찾는 것 같다고 놀리기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부터 약 5년 동안 사부작사부작 부모님에게 강아지를 키우자고 설득했는데, 그때마다 아빠는 털 날려서 안 된다고 완강히 거절했다. 어차피 거절할 걸 알았기 때문에 아빠가 잊어버릴 때쯤이면 "아빠, 여기 작고 귀여운 강아지가 옆에 앉아있으면 정말 귀여울 것 같지 않아?" 허공에 대고 강아지 등을 쓰다듬는 손짓을 하며 대답도 없는 아빠에게 혼잣말을 하곤 했다.



5년 동안의 길지만 스며들게 하는 전략이 성공했는지 아빠는 어느 날 강아지를 키우는 걸 허락해준다고 했고 갑자기 취소하기 전에 그 길로 곧장 집 밖으로 나가 털 잘 안 날린다고 소문난 갈색 푸들 새끼 강아지를 데려왔다. 너무 작은 나머지 팔 사이로도 빠지고, 허벅지 사이로도 빠지는 정말 작고 아담한 새끼 강아지였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그 귀여운 얼굴로 졸랑졸랑 나를 따라다니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마음 속에 모락모락 따스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가족들이 이름을 뭐라고 짓고 싶냐고 하여 나는 당연히 전부터 생각해놓은 "해피"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건 엄마 어릴 때 바둑이 같은 아무 개한테 붙여주는 흔하디 흔한 강아지 이름이라고 촌스럽다고 했지만, 나는 강아지가 기억하기 쉬운 두 글자 이름에다가 우리 집에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라며 이름을 "해피"라고 지어줬다. 처음에 가족들은 강아지 별로 안 좋아한다며 관심이 없는 듯 했지만 지금은 나보다 강아지를 더 찾고 좋아한다. 그렇게 해피는 우리 가족으로 스며들었다.



한창 해피가 어릴 때는 교육도 잘 시키고 행복하게 키우고자 강형욱 세나개 영상을 많이 봤는데, 그중 중요한 건 분리불안 교육이었다. 사람이랑 떨어져있을 때 강아지가 불안해하는 행동을 교육하는 거였는데, 분리불안은 우리 가족이 있는 듯 하다. 어디 멀리 나가있으면 엄마랑 나랑은 둘 중 누구 하나가 집에 있으면 해피 사진을 실시간으로 보낸다. 긴 외출을 하거나 멀리 여행을 가면 해피가 보고싶은 마음이 몽실몽실 피어오른다.



해피는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만 6살이 되어가고 있고, 지금도 내 옆에서 이불에 고개를 파묻고 자고 있는데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다. 이 작은 생명체가 내게 온 것은 은혜이고, 축복이고, 사랑 그 자체이다.



내가 기쁠 때나 힘들 때나 우울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울 때나 언제 어디서나 나와 동행해주고, 내가 문 밖으로 나가면 나를 배웅해주고, 내가 집에 도착하면 한결같이 마중해준다. 한 생명체가 나만 보면 꼬리를 흔들고, 사랑스러운 눈망울로 바라봐준다는 것은 일상에서 얻는 소소하지만 빈번한 아주 소중하고 중요한 행복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는 강아지 특유의 발바닥 꾸릿하면서 살짝 고소한 꼬순내가 그리워서 상상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진짜로 고소한 냄새가 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겸사겸사 위로를 받았다. 회사 일이나 소통에 있어 조금 힘이 들 때는 아이를 가진 분들이 애기 사진을 보고 힘내듯 강아지 사진을 보며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했다.



나는 동생 없이 자란 둘째이자 막내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오롯이 보호하고 조건 없이 사랑해주고 아껴준다는 걸 강아지를 통해 배웠다. 어렸을 적 키우던 강아지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고 다른 집에 보내게 되는 걸 보지도 못한 나는 상처가 있었고, 해피를 데려와서도 이 작은 동물이 눈을 감을 때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지금은 내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강아지를 지키고 보호할 힘이 있고, 이 아이에게 좋은 걸 줄 수 있는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가끔 몇몇 사람들은 강아지는 동물일 뿐인데 무슨 그런 사랑을 주느냐고, 사람보다 소중하냐고라고 이야기하지만, 강아지를 키워보면 이 작은 동물이 얼마나 많은 행복과 기쁨을 안겨주는지 알 것이다. 강아지는 가족이다.



가끔 웃긴 건 내가 강아지를 하도 좋아해서, 동물농장 유튜브를 보면서 다른 강아지나 동물들을 귀여워하고, 노견이 아프거나 세상을 떠난 기록을 보면서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면서 내 강아지의 작은 몸뚱이를 쓰다듬고 있다는 것이다. 강아지는 사람보다 수명이 짧기에 나보다 먼저 갈 것을 알고 있고, 우리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내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걸까 의심이 들면 속절없이 슬퍼지고 미안해진다.



특히 노견의 일상을 기록하거나 그의 마지막을 남긴 영상을 보고 있으면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폭포수처럼 흐르는데 그건 내가 이 강아지와 함께할 앞으로의 미래가 어느 정도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고, 지금은 건강하더라도 강아지가 나이가 들면 사람처럼 아프고 치매에 걸리거나 백내장에 걸리는 등 강아지가 아파하는 시간을 지켜 봐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때면 아무 이유 없이 강아지에게 다가가서 "우리 해피가 그래쪄요?" 라며 강아지를 안고 있고는 하는데, 정확히 표현하자면 내가 안고 있다기보다 내가 강아지에게 안겨있는(?) 희한한 그림이다.



내가  있음에 감사한 , 아침에 배고프다며 자고 있는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며  달라고  없이 쳐다보는 , 문을 살짝 열어놓고 있으면  틈새로 내가  하고 있는지 감시 아닌 감시를 하는 , 산책을  때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세상  가진  톨톨톨톨 걸으면서 귀엽게 귀를 팔랑거리는  보는  등이다.



바둑알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도 너무 귀엽고 콧잔등을 씰룩거리면서 음식 냄새를 맡는 것도 사랑스럽다. 검은 입술이 조금 짧아서 제대로 안 다물어져서 이빨이 살짝 보이는 것도, 내가 뭐 하는지 껌딱지처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내가 스마트폰을 오래 보고 있으면 자기 좀 보라고 팔로 쳐서 떨어뜨리는 것도, 긴 외출이나 여행을 다녀오면 궁둥이를 내 옆에 찰싹 붙이고 있는 것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등을 보이며 앉아있는 것도, 할 일도 없으면서 앉아서 꾸벅꾸벅 졸면서 가족들을 쳐다보는 것도 너무 귀엽다.



그래서 그럴 때면

나는 오늘도 나 개 있음에 감사하오,

해피 있음에 감사 하오를 되뇐다.



푸들치고 조금 크지만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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