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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피 Jul 25. 2022

브런치 작가? 너 혹시... 뭐 돼?

뭐 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씁니다


지인이 추천해줘서 시작한 브런치는 운 좋게 재수 한 번으로 합격했다.



호기롭게 작가 소개를 낸 후 합격했을 땐 작가의 서랍에만 남겨두지 않고 글을 공개적으로 발행할 수 있다는 자체가 좋았다.



그러다가 글을 열 개 정도 발행하고 나서는 '... 나 글 이렇게 잘 쓰는 사람이었나?' 하며 영문 모를 자신감이 피어올랐다. 그 당시 나는 생각을 글로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는 걸 글을 잘 쓰는 거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면 이렇게 용감합니다,,)



아닐걸요..?



브런치를 일 년 정도 했을 때 내게도 두 자리 숫자의 구독자들이 생겼다. 그러자 글을 더 잘 쓰고 싶어 졌고, 글을 잘 쓴다는 건 어떤 건지 호기심이 생겼다. 



브런치를 돌아다니며 글을 읽다 보면 구독자수가 1만도 훌쩍 넘기고 책을 몇 권씩 내는 작가님들도 있었다. 반면에 글을 쓴 지 얼마 안 됐더라도 구독자 수가 몇백 명이 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에 비해 내 구독자 숫자는 작고 귀여워 보였다.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고 내 글도 쌓아가면서 세상에는 책의 저자들 뿐만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어렸을 때 글짓기 상 조금 받았다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소한 일상을 드라마 한 편 보는 것처럼 생동감을 자아내는 글, 전문가 aura를 풍기며 일을 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풀어내는 글, 글만 봐도 피식피식 웃게 만드는 유쾌한 글, 해외 거주, 중년의 삶, 육아맘 등 내가 전혀 모르는 세상을 간접 경험하게 해주는 글 등 글을 잘쓰는 종류가 다양하다는 걸 브런치에서 배웠다.



다른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제야 나는 나만 사용하던 글짓기 수영장에서 냇가로, 강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 비해 내가 쓰는 브런치 글들은 대중없어 보였다. 처음에는 마케팅을 하며 배운 것들을 글로 풀어내다가, 90년대생직장 생활 시리즈를 쓰다가, 일상에서 느낀 기쁨, 슬픔, 즐거움, 속상함 등이 묻어나는 에세이를 쓰게 됐다.


쓰다 보니 비슷한 글들이 추려져서 시리즈별로 묶기는 했지만 지금도 주제가 뚜렷하거나 특별한 글을 쓰는 건 아닌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고 뭔가 큰 걸 이룬 건 아니다. 뭐가 된 것도 아니다. 출간 제의를 받거나, 강연 의뢰를 받았다던가 하는 굵직굵직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브런치 작가가 된 후 내가 얻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글을 쓰며 내 감정을 마주하는 힘을 길렀다.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그 상황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었고 다음에는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면 좋을지 배울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글쓰기가 숭고한 창작과 예술처럼 보일지 몰라도, 내가 적는 소소한 글들은 나조차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갑갑함과 답답함을 배설하는 과정처럼 보이기도 했다.


말로는 제대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을 글로 쓰고 나면 시원함과 후련함이 생겼다. 그리고 비슷한 일이 생기거나 감정을 느꼈을 때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둘째, 내가 평생 데려갈 취미 중 하나가 글쓰기라는 걸 알게 됐다. 일상에서 배우고 느꼈던 것들을 '아! 이건 브런치 글감이다.'라고 생각하고 노트북을 자연스럽게 켜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얹히는 게 습관이 됐다.



한때는 쓸모없어 보였던 생각들이 사색과 성찰을 곁들이니 한 편의 글들로 출하되어 어느덧 브런치 작가 3년 차에 글 발행 60개를 앞두고 있다. 글을 써야 한다가 아니라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든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함께 할 소중한 친구가 생긴 것 같아 기쁘다.






종종 조회수가 적고, 민트색 동그라미 라이킷 알람이 잘 뜨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좋아요 수가 적고 눈에 띄지 않더라도 좋은 글이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지금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특정한 모양으로(담백하게, 유쾌하게, 전문성 있게, 소소하게 등) 풀어내는 글을 잘 쓴 글이라고 정의한다.



특별히 무언가가 되지 못했더라도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재밌기에 앞으로도 기꺼이 글을 짓고 싶다. 가끔 정체 구간도 발생하지만 곧 뚫릴 걸 알기에 핸들을 잡은 손을 놓지 않는 것처럼 과정에서 오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



좋아하고 잘하는 걸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하다 보면 좋아하고 잘하는 걸 알게 된다 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글 쓰기를 하며 오솔길도 가고, 비포장 도로도 가고, 막힘없이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때도 있을 것이다. 그 순간순간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작가님들과 거대한 브런치라는 파도의 흐름에 맡겨 그 모든 일련의 과정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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